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후임자는 태교여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녀와서 몇 주 뒤에 근무 종료 의향을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 내 기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3일 휴가를 내는 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태교 여행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임자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휴가란 언제나 가능한, 당연한 권리'라며, 대표들이 반대하면 그만둘 각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대표들은 뜨뜻미지근하게 휴가를 허락했고, 그렇게 3일간의 아르바이트생 공백이 생겼다. 대표들이 대타를 찾아 헤맬 타이밍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내게 연락이 왔다. 사실 대표1에게 연락이 오기 전에 후임자가 먼저 부탁을 해왔다. 그녀는 나와 대표들에게 몹시 미안해하며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 올 테니 제발 도와달라 간청했다. 사실 예상보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그녀의 부탁 없이도 언젠가 대표들을 도울 의향은 있었다. 묘하게 마냥 싫어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거의 한 달 만에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사무실을 찾았다.
...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대타 첫날. 출근하기도 전부터 후회가 밀려왔다. 아. 마냥 싫어할 수 있다. 역시 대표들에게 도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전 아르바이트생들의 손절은 합리적인 걸 넘어 당연했다. 나는 마치 데자부와 같은, 한 달간 잊고 있었던 스트레스를 버스 안에서 다시 마주했다.
4시 출근을 24분 앞둔, 3시 36분. 막 버스 오른 내게 대표2가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 포장 알바를 위해 약속도 미뤄뒀는데 지금 뭐 하자는 건지 오랜만에 열이 올랐지만, 앞으로 3일 뒤면 보지 않을 사람 훈계해서 뭐 할까. 나는 더 이상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으며 "알겠습니다" 하기엔 성질머리가 안 따라주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연락이 늦은 건 네 잘못이니 만 삼천 원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발길을 굳혔다. 그렇게 사무실에 발도장이라도 찍어서 한 시간어치의 시급이라도 받아야 성에 찰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대표들은 바쁜 와중에도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웬일이지 싶었다. 처음 두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투명인간 대하듯 인사도 없이 쌩 지나갔었는데. 어지간히 대타가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밝게 웃으며 맞아주는 대표들이 나는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니 조금 반갑기도 했던 것 같다. 한 시간의 시급도 마땅히 줄 것 같고.
대표들은 늘 그렇듯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해 왔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내가 대타로 도와주러 온 첫 번째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틀이 더 흐르고 대타 마지막 날을 앞둔 밤, 후임자로부터 뜻밖에 연락이 왔다. 복귀하면 몇 주는 더 일하다 그만둘 거라던 후임자의 몸에 갑작스런 이상이 생긴 것이다.
후임자는 여행지에서 자궁근종통이 심해져 급히 입국했다고 한다. 응급실 신세를 지다 지금은 대학병원에 입원한 후임자는 한동안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미리 계획한 시기와는 다르게 그녀는 즉시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만 했다.
후임자는 대표1에게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죄송한 소식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며, 아이가 생겼는데 문제가 생겨 입원하게 됐다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이런 식으로 그만두게 될 줄 몰랐는데 당장 입원하라고 하더라, 퇴원하고 언제든 대타 필요하면 연락 달라, 언제든 도움드리러 가고 싶다]등의 내용이 담긴 장문의 메시지였다.
갑작스럽게 생긴 공백으로 대표들은 비상이었다. 이리 바쁜 와중에 당근알바 공고까지 허겁지겁 올려야 되는 상황이었다. 대표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스트레스받았을지 너무나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품은 후임자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스트레스받고, 미안하고, 아프고, 무서울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공백은 천재지변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퇴사는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대표들은 후임자가 아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후임자와 그나마 라포를 형성한 대표1조차 그녀의 장문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대표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법하다 싶다가도, 후임자로부터 일련의 입원 사진들을 받고 그녀의 상태를 자세히 들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대표들은 나에게 또다시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이미 운동과 다른 아르바이트로 스케줄을 꽉 채운 상태였다. 대표2는 이전 아르바이트생들 모두 답이 없거나 거절했다며 몹시 곤란해했다. 하지만 사실, 간단히 해결될 일 아닌가. 그저 시급을 13,000에서 20,000으로 올리면, 돕겠다는 전 아르바이트생이 한두 명은 나타날 거다. 요즘 물가가 얼만데, 지금처럼 단 하루 26,000원 벌기 위해 대타를 자처하는 건 쉽지 않다.
마음을 안 쓰려면 돈을 써야 한다. 이미 그만둔 알바생이 대타를 승낙한다면 이는 일터에 정이 들어서 진심으로 돕고 싶거나, 아니면 일당이 정말 필요해서일진대, 대표들은 전자에서 이미 탈락해 버렸다.
후임자에겐, 형식적인 짧은 답변도 힘들었던 걸까? 너무 바빴던 걸까, 아니면 괘씸했던 걸까? 대표들이 더 멀리 봤다면 좋았을 것이다. 읽씹에 상처받은 후임자는 대타 요청이 와도 절대 안 해줄 거라고 마음을 바꿨다. 결국 대표들은 하나밖에 없던 대체 인력을 잃었다.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마음을 잃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