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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애증의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by 선인장


얼마 전, 대표2로부터 연락이 왔다.


힘들더라 고생했다그동안.png 대표2의 연락 카톡



얼렁뚱땅 시작하게 된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는 여러모로 실험적이었다. 하는 업무는 행복감과 고됨을 매번 아슬아슬하게 저울질하게 만들었고, 대표들은 첫인상이 워낙 좋지 않아 ‘명품 판다고 지들도 명품인 줄 아나’라는 진부한 문장을 바로 연상케 했다.


하지만 하루 두 시간의 포장 일은 마지막까지 질리지가 않았고, 투박하고 낯선 대표들과 이 만큼이나 친밀하게 대화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새삼 신기하다. 나는 이 아르바이트에 애증을 느끼고 있었다. 증오보다는 애정이 쪼끔 더 큰 것도, 새삼 신기하다.





대타 마지막 날로 돌아가서.


익숙한 버스에 올라 회사로 향하는데, 문득 창밖 푼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행색이 아르바이트 초반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어느새 계절이 두 개나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그렇게나 많이 포장했던, 두툼한 패딩을 꺼내 입을 타이밍이었다.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는 언제나처럼 스타카토식 인사를 건넸다. 대표들 역시 언제나처럼 "오셨어요"하고 맞아줬다. 아르바이트 초반엔 인사는 무슨, 의자에 앉아 거들떠도 안 보던 대표들이었다. 이제는 나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가끔씩은 미세하게 웃는다.


그날따라 주문량이 소박했다. 나는 겉옷을 대충 벗어던지곤 바로 포장을 시작했다. 여태껏처럼 면밀히 검수하고, 반듯이 각을 맞춰 최대한 예쁘게 포장지를 두르고는, 물품을 택배박스 안에 곤히 넣었다.


주문 물품을 전부 포장하고 나니 박스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스테이프가 영 지저분하게 붙여져 있어 괜히 찝찝하게 만드는 박스였다. 나는 새 박스를 꺼내 다시 깔끔하게 테이핑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뒷정리까지 끝내고 시계를 봤는데 40분 밖에 안 지나있었다. 나는 어쩐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어 재포장을 한 번 더 고려해 봤다. 하지만 다시 또 관두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냥 빨리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바삐 일하고 있는 대표들에게 찾아가 업무 종료를 알렸다. 급한 일이 또 생겼는지, 대표2는 전화통화를 하느라 정신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표1에게만 가볍게 목례했다. 그런데 대표2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바와 다르게, 대표1는 처음으로 깍듯함 대신 어색한 친근함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 고생했다."



날대의반말.jpeg 듣기 힘들다는 대표1의 반말
지원자만족도2.png 대표2가 남겨준 아르바이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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