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4주 만에 후임자로부터 온 첫 연락은 대표의 번호를 묻는 문자메시지였다. 그간 번호도 모르고 어떻게 소통했는지 의아해하는 내게 후임자는 말했다. 당근 채팅으로 소통하고 있었다고… 맞아, 이거 당근 알바였지...
후임자는 처음부터 대표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말했다면 일할 때 지장이 있지 있지 않을까 대표들이 염려했을 것 같다. 후에 여러 일을 겪고 나서 이제와 돌아보면, 아무래도 미리 말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지만.
후임자에게 대표들의 번호를 알려준 뒤, 나는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표2가 뿌듯하게 자랑했던 바와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대표들과의 사이도 그닥이고, 일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서 늦어도 한 달 안에는 그만둘 거라는 것이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2-3년, 그리고 극한의 키즈카페 아르바이트도 1년 가까이 견뎌냈던 후임자였다. 그런 후임자가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은 첫 번째 이유는 우선 담배연기와 먼지, 그리고 박스 정리였다. 공고에는 ‘포장’ 아르바이트라고만 명시해 놓고, 무거운 택배박스들을 옮기고 치우는 일이 반 이상이었다. 포장을 넘어 다소 까다로운 검수까지 해야 되는 건 수긍 가능한 정도였으나, 마지막 과정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박스의 잔해들을 모을 때면 제대로 종종 현타가 오곤 했다. 후임자 역시 박스를 나를 때마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빠졌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여전히 지나치게 유동적인 업무 시간이었다. 후임자는 내가 대표2에게 따지듯 썼던 단어를 그대로 써 나를 놀라게 했다. 스케줄이 너무 시시때때로 바뀌어 마치 ‘일용직’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출근 시간이 고정됐으니 업무 환경이 나아졌겠거니 생각했는데, 일거리가 없을 때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출근 한두 시간 전에 보내오는 것도 여전했다. 대표들이 급한 일 때문에 도무지 짬이 안나 미리 말해주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것까지 그대로였다. 그날의 물류량은 오전 일찍 파악 가능한 걸 알고 있는데, 얼마나 바쁘길래 문자를 보낼 30초 정도의 시간도 못 내는지는 아직도 의아하다. 그만큼 정신이 없어, 대표들이 늘 시시때때로 피워대던 담배는 정말 한 개비도 피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공감대가 생긴 우리는 여태껏 꾹꾹 눌러온 불만들을 서로에게 토해냈다. 막혔던 게 일순 뻥 뚫려 콸콸콸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대표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과한 걸까'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곤 했는데, 후임자와 서로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나누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하는 안심이 됐다. 사실 '센스 없다'는 말 6번 강타 이후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조금 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속 시원한 후임자와의 대화는 적시에 찾아온 위로였다.
역시 친해지는 데에는 공동의 적을 두는 것 만한 게 없다.
후임자와 나는 대표들을 잔뜩 욕하다, 깔깔 거리다를 반복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내겐 이미 끝난 아르바이트였지만, 나는 일름보처럼 그동안 거슬렸던 말들, 이를테면 대표2가 “벌써 일한 지 그렇게나 됐어요? 하는 거 보면 6일도 안된 것 같은데.”라며 줬던 장난스런 핀잔 등을 후임자에게 전부 토로하며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편의성을 위해 날씬한(?) 대표1을 '날대', 건장한 대표2를 '건대'라고 칭하게 된다.)
후임자 역시 대표1의 무뚝뚝함과 대표2(건대)의 사회성 부족에 학을 뗐다. 마흔이 넘는 사람들에게 내가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을 해봤자 애초에 통할 리가 없었다. 후임자가 가족상으로 아르바이트를 못 가게 되자 철 없이 투덜거리기만 하던 대표의 모습 하며, 후임자가 하지도 않은 실수를 지적하기 위해 걸려온 이른 오전 전화까지. 그나마 대표1과 원만히 소통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나, 무신경한 대표1이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대표들의 불분명한 잣대에도 불구, 후임자는 업무에 있어 완성도와 속도의 타협점을 금세 찾아갔다. 적당히 느슨하고 빠르게 업무를 해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후임자도 대충대충, 설렁설렁의 끝을 보여주는 대표들의 태도에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들을 따라 힘을 빼고 일하면 또, 대표들은 더 꼼꼼히 포장하고 자주 물어보길 종용해 오니 말 그대로 "어쩌라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후임자는 서서히 그곳에 질려갔다.
하지만 불만이 생기면 넘기지 못하고 따박따박 따져댔던 나와는 다르게 후임자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나는 인간적인 대우를 반강제로 받아냈지만, 그녀는 혼자 삭히거나 쌓아두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를 퇴사로 몸소 실천했다. 아니, 실천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