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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Oct 07. 2023

늘 좋은 꿈을 꾼다는 그가 부러웠다

일곱 번째 불면일지


잠에 들면 늘 좋은 꿈만 꾼다는 친구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싫다던 그 친구는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괴로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꿈으로 도피하고 싶다며 하루 15시간 이상씩 자곤 했다. 심지어는 20시간까지도 무리 없다고 다소 자조적인 웃음을 띤 채 내게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는, 물론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그가 몹시나 부러웠다. 그의 아침은 적어도 ‘피로한 우울’이 아닌 ‘개운한 우울’ 일 테니.


사람은 수면 중 여러 에피소드의 꿈을 꾸지만 일어났을 때 이를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꿈을 안 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푹 잔, 이상적인 수면상태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앞서 말한 친구와는 반대로 대개 좋지 않은 꿈이다.


자주 꾸는 꿈 중 가장 치가 떨리는 꿈은 치아가 모조리 빠지는 꿈이겠다만, 피의 서바이벌에 참가자로 피투 된 꿈에서 느끼는 공포와는 비할 바 없다. 풀숲, 해안가, 격투장 등 각양각색의 환경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늘 사냥을 당한다. 참가자들이 쓰는 도구도 매우 다양한데, 그중 제일 끔찍했던 건 화살이었다. 화살이 종아리에 관통하는 느낌은 꿈속에서 생생히, ‘정말 미친 듯이 아프다’고 느껴, 흔히들 ‘꿈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총알이 난무하는 서바이벌 도중 언젠가 중간에 소리를 지르며 깬 적이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꿈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안도했다. 그래서 이내 다시 잠에 들었더니 글쎄, 다시 그 격투장 안이었다. 그리고는 직전에 나를 공격하려 했던 상대가 따지듯 묻는 거다.


어디 갔다 이제와?


나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희번뜩거리며 말하는데 어찌나 공포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황당하던지. 그렇게 다시 치열히 싸우고, 또 도망 다니며 한 판의 악몽을 끝냈던 밤이 있었다.





나는 왜 꿈에서까지 지독한 불안과 싸우는 걸까.


나는 무서운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가 주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공포의 원천에 맞닿는 순간 내 정신을 자해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하여 가학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이 공포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가 나는 늘 의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무서운 영화를 찾아보는 심리 중 하나는 오히려 안도감이라고 한다. '영화'와 '나' 사이에 스크린이라는 큰 벽이 있다는 안도감. 화면 속 유혈이 낭자해도 이는 저 멀리 다른 세계일 뿐이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다시 자연스레 지극히 평범한 현실로 돌아온다는 순리.


혹시 내가 꾸는 무수한 악몽들도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있는 건 아닐까. 악몽을 꾸고 난 뒤에 잠에서 깰 때면 지금의 현실에 크게 안도하게 되니까. 괜히 삶이 고되게 느껴지고 자기 연민에 찌든 날,  정신 차리고 감사하라며 자꾸만 더 절망적인 악몽을 던져주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만약 그래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다면, 이는 매우 잔인한 처사라고 하늘에 말하고 싶다. 꿈과 현실 한 군데라도 도망칠 곳을 좀 줘야 되지 않나. 현실이 마뜩잖으면 꿈에서라도 숨 쉴 곳을 줘야지. 그 곳에선 말도 안 되게 즐거워야지. 이를테면 하늘을 난다던가.


역시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역시, 공포영화가 싫다.


문득 스무 시간을 잔다고 말하던 그 친구가 어젯밤엔 몇 시간을 잤는지 궁금해졌다. 짧은 대화 이후에도 그 친구의 지친 눈과 수차례 마주친지라 더 이상 그를 부럽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 역시 치열하게 우울과 싸우고 있는 과정이었음을 안다. 나와는 다른, 어쩌면 더 깊은 절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현실이 괴로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도 어쩌나. 나는 그가 오늘도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 단지 깨어난 현실은, 꿈보다 덜할지라도, 적당히 평화로운 상태이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나의 현실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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