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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Oct 16. 2023

불면증 있다는 사람이 무슨 커피를 마셔?

불면의 원인

아침에는 늘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불면증 있다는 사람이 무슨 커피냐 싶겠지만 밤에 복용하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에서 깨어나기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은 필수다. 카페인이 없다면 몽롱하고 의욕 없는 상태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오후 열 시쯤 돼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다시 곧 잘 시간. 겨우 한 시간 남짓 멀쩡한 시간을 가진 뒤 약을 먹고 누워야 한다.


그렇다. 저녁약을 먹은 다음 날, 커피의 도움 없이 하루를 버텨본 적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날들은 온종일 뿌옜던 기억뿐이다. 옹심이의 물그릇을 갈아줄 의욕조차 없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하루 같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욕심이 많은 나는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러질 못하니 고역이었다. 이상 속 할 일을 척척 해내느라 바쁜 나와 현실 속 졸음을 쫓느라 바쁜 나 사이에 괴리감이 컸다. 이는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아무나 붙잡아 묻고 싶었다. 잠을 푹 자고 난 뒤 맑은 정신으로 맞는 세상은 어떤 기분인지. 그렇게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면 부러움에, 억하심정에 따지는 듯 한 뉘앙스였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오전에 마신 커피 한 잔으로 그 세상을 쉽게 엿봤다. 그러니 마실 수밖에. 아메리카노는 내게 오전 약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말하겠다. 커피를 마시는 대신 정신과 약을 조절하면 되지 않겠냐고. 잠이 오게 하는 그 효능이 다음날 낮까지 영향을 주지 않도록 용량을 줄이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수면의 질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얕은 잠만이 이어져 1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예 약을 먹지 않고 자는 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밤을 보내야 했다.


사실 지금 약도 용량이 많은 편이 아니다(정신과 선생님 피셜).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밤에 여러 차례 깬다. 그렇다고 통잠을 위해 용량을 늘린다면 다음날 잠에 취해 아무것도 못할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다. 그 피로는 커피 한두 잔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성분의 약도 여러 차례 시도해 봤다. 그러나 약을 바꾸는 건 지난하고 두려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약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고 부작용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약은 복용 한 지 30분쯤 지나자 깊은 숨을 쉴 수 없어 필사적으로 헐떡였다. 그 끔찍한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 새로운 약을 시도하는 일이 점차 꺼려졌다.


그래서 택한 나름의 타협이었다. 약의 종류와 용량을 여러 차례 바꿔가며 시도해 본 끝에 그나마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능동적인 하루를 가능케 했다. 그렇게 나는 현재의 처방에 정착했다.


< 적당한 용량의 저녁약 + 아침커피 = 중간에 서너 번 깨는 얕은 수면 + 다음날 적당히 개운한 상태로의 일상생활 >


단점이라면 위에 말했듯 조금의 용량 차이만으로도 잠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 상태가 나아지는 듯해도 약을 쉽게 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작은 성취들이 가능해졌다. 그런 하루들이 하나 둘 늘자 자존감 역시 켜켜이 붙어갔다. 사람 다웠고, 하루 다웠다. 그렇게 약 복용에 안주하니 시간이 어느덧 많이 흘러버렸다. 조금 많이 흘러 버렸다.



불면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데도 불안은 지속됐다. 약에 내성이 생기자 복용량을 자연스레 늘렸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계속 약을 늘리며 살아도 되나? 경각심이 커진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친한 언니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테이크 유어 필스: 자낙스의 경고>를 추천해 줬는데, 내가 먹고 있는 약과 동일한 종류였다. 아. 나는 그 약을 너무 오랜 기간 먹어왔다. 그제야 ‘이건 아니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약에 의존하지 않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약을 안 먹고도 숙면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몇 년 전 대학병원 수면센터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음에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 교수님은 나의 뇌 구조에서의 특이점을 찾았지만 이는 그저 “그렇게 태어났으니 받아들이라”는 기운 빠지는 선고에 불과했다. 현재 의학으로는 그 구조를 바꿀 방법 또한 없었고, 말 끝을 흐리던 교수님은 정말 이로부터 내 불면이 비롯된 건지 어딘가 불확실해 보였다.


결국 후천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원인을 찾는 게 답이었다. 뇌는 어쩔 수가 없으니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걸 바꿔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불안이 증폭된 계기를 찾아야 했다.


사실 뇌 구조가 그 모양 그 꼴로 태어났더라도 불면이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언젠가 꼭 나타날 증상이었더라도, 이 정도로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불면에 트리거가 된 어느 한 시점이 분명 있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결국 정신과와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불면의 원인에 앞서 불안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불면의 원인은 마치 불륜의 이유와도 같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강윤희 역의 이지아가 말했다. 불륜은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원인 같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무엇도 원인 같지가 않다고. 십 수년째 불면증의 원인을 찾아 헤맸던 사람으로서 내게 그 대사가 퍽 절절했다. 불안의 기저에는 탓할 대상이 너무 많다. 엉킨 채 혼재되어 있어 어떨 땐 이게 원인 같고, 다른 땐 저게 원인 같다.


그럼에도 굳이 불면증을 일으킨 하나의 계기를 꼽자면 어떨까.


앞서 말했듯 나는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렇다면, 불면의 원인이 커피에 있을까? 카페인도 불면증에 지분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그리 많은 역할을 하진 않을 것 같다. 답은 현재가 아닌 불면증이 발현되기 한참 전 과거에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어릴 적부터 나는 사실 툭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몸도 아픈 거라고 대충 결론짓고 살았다. 그럼에도 사실 계기라 칭할 수 있는, 짐작이 가는 사건이 있긴 하다. 학창 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들이다. 단언하지 않고 회피해 온 이유는 그 엉망진창인 기억을 어떻게 다시 꺼내어 곱게 포장할지 막막해서였다. 굳이 끄집어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의 나 자신에게 지금의 나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성숙해진 뒤에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겁 많은 나는 원인을 다른 데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불안은 지속되었고 나아지는 건 당연히 없었다. 저 깊이 묻혀 있던 가장 큰 나의 불안의 원천을 마주해야 했다.


역시, 2007년 텍사스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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