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따뜻한 위로

[첫사랑] by 색시

by 선인장


주간 <시선> 이번 주제는 '첫사랑' 입니다.



내 오랜 친구 선장에게


B와 처음으로 단둘이 식사를 했던 건 스물다섯 늦봄의 끝자락이었어. 군말 없이 터덜터덜 나오길래 보통 날인 줄 알았건만 본인 생일이라길래 적잖이 놀랐던 기억. 일터와 회식자리에선 조금 무서운 인상의 친구였는데 작업실이 같은 동네라길래 밥이나 한 번 먹자 하고 만났을 땐 꽤 편하게 잘 해주더라고. 큰 키에 마른 몸, 느린 움직임, 몇 개 없어뵈는 표정과 살짝 거만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말투, 나 숫기 없어요 온몸으로 외치면서도 내 모든 얘기들에 기분 좋게 반응해 주던 정성. 회식자리에서 몇 마디 나누어보니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는데, 그 몇 마디가 정말 얼마 안 됐거든.


B는 일찍이 성공궤도를 달리기 시작한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나보다 두어 살이 어렸지만 충분히 멋지다 생각했고 큰 키 탓인지 동생 같단 느낌은 없었어. 이런저런 장비들로 가득하던 작업실이 신기해 자주 놀러 갔고 어느새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전 연인과 갓 이별한 터라 기분전환이나 하자 싶어 운전면허학원엘 등록하고 꼬박꼬박 다녔는데, 학원에서보다 B에게 더 많이 배웠던 것 같아. 혀를 내두를 극강의 인내심으로 화 한번 안 내고 빡빡한 서울서 도심 주행 및 평행 주차를 해낼 수 있도록 집중 마크해 준 덕에 지금까지 큰 사고 한 번 없었어. 나처럼 공간지각 능력이 평균 이하인데다 성질머리까지 더러워 두루두루 모자란 사람 운전 가르쳐주다 정 떨어졌을 법도 한데… 무언갈 잘하는 데엔 인간성도 중요하다고 봐, 멋진 친구였어.


카페에서 가만히 마주 보며 앉아서는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있기도 하고, 서점 가판대 앞에서 군말 없이 안겨버리기도 하니 그때까지 이성과의 교제 경험이 전무하던 B에게 이 누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을 거야. 물론 이것도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당시의 나는 어지간히 아둔했어, 멍청하고. 모르는 게 많으면 대개 타인에게 폐를 끼쳐.


꽤 선선하던 여름밤 여느 때처럼 데려다주던 길, 집 앞에서 B가 고백을 했을 때 나는 대뜸 울어버렸다. 그때 울며 했던 내 망언들이 하도 기가 차서 여태껏 잊히질 않는데… 어차피 처음에야 좋아하다 금방 식어버릴 거 책임지지도 못할 고백을 뭣 하러 하냐 정말 못됐다 이기적이다, 감정이 격해져선 험한 말도 몇 튀어나왔던 것 같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고 또 울었던 기억. 자기 좋단 엄한 사람한테 저딴 반응이나 해대는 인간에게 되려 고백해서 미안하다며 울음 그칠 때까지 토닥여주던 착한 사람이었어. 찌질하게 지난 연애에 발 묶여서는 서러운 감정들 오물들 쏟아내며 상처만 한 트럭 주었던 어린 날의 내가 못 견디게 창피해.


그렇게 멀어질 줄 알았는데, 중반의 우울하던 내 모양새가 위태롭고 안타까워 보였는지 고백한 날 내가 쏘아댔던 내용 그대로의 인간이 되긴 싫었는지 다 떠나서 내가 첫사랑이어서 그랬는지. B는 계속 내 주변에 있어 주었다.


첫사랑,이라고 했다.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해 본 게 처음이라고. 왜? 나라면 분명히 이 질문을 했을 테고 B라면 솔직하게 답했을 텐데 어디 적어놓을 걸 그랬어. 꽤 퇴색되었을 지금 와서 다시 물어보기도 뭐 하고.


그래서였을까 내 모든 고민과 질문들에 정성껏 답해주었고 필요하면 두 팔 걷고 도와주었다. 검색엔진 지식인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나한텐 늘 B가 정답이었어. 대학로에서 술이 떡이 되어 습관처럼 B에게 전화를 걸면, 단숨에 달려와 화장실 구석에 쓰러져있는 나를 둘러업고 내 일행들 술값까지 계산해 줬다고 들었다. 나는 취하면 곯아떨어지곤 했는데, 데리러 오느라 빌린 렌터카 시간을 거듭 연장해가며 동틀 녘까지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못난 취객 깨어나길 기다려주던 친구였어. 내가 현관문 열고 갈지(之) 자로 휘적거리며 들어가는 뒷모습이 사라지면 밤새 밀린 작업들을 해결하러 피곤한 몸 이끌고 들어가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었던.




덕분에 살만해졌는지 내가 또 연애를 하더라, B와는 아니었지만.


이듬해 또 그 이듬해 내가 연인이 생겼다 바뀌고 그 연인들 탓에 속상하다 징징거리면 얼마 동안이고 전화기 붙들고 위로해 주던. 언젠가 울적한 마음에 바다나 보고 싶다 하면 일 끝나고 늦은 시각 밤바다로 훌쩍 데려가 주던…


스물여섯 초봄, B가 아끼는 곡 하나를 발매할까 하는데 자기 노래에 연주를 부탁해도 되느냐하여 단숨에 승낙했다. 사실 감사한 일이었지. 내 미천한 음악적 소양들 전부 끌어모아 양손 악보 짱짱하게 만들어 연습을 거듭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핫팩 두 개 양손에 꼭 쥐고 녹음실로 갔다. 내 첫 스튜디오 녹음작이기도 했으니까. B는 나를 입봉까지 시켜준 거야.


그 곡 제목이 ‘위로’다. 말마따나 B의 사랑은 내게 가장 크고, 깊고, 또 단단한 위로였어. 그 작업물의 존재가 이렇게 두고두고 따뜻할 줄이야.

2년이 다 되어가도록 B와 매일같이 주고받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 건, 내가 소개해 준 사람과 B가 연애를 시작했을 때였다. 그 친구는 첫사랑의 소개로 첫 연애를 했어, 묘하지.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내내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는데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이렇게 괜찮은 친구가 내 예쁜 동생과 만난다니 괜히 든든하기도 했고. 그 연애의 이별 후 커다란 애가 덩치에 안 어울리게 쳐져 있는 모습 못 보겠기에 불러내 영화 한 편 보여줬는데. 그때 등은 한번 토닥여주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지금의 나라면 그럴 텐데… 받기만 했던 위로를 나도 준 적이 있었나 싶어 죄스러워.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면 어떤 기분일 것 같냐며 역시나 철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첫사랑 결혼한 이상한 기분?’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덕분에 내가 첫사랑인 걸 알았던 것 같기도.


벅차다. 하도 이기적이어서 이런 말 할 자격은 있을까 싶지만 B를 대할 때 애정이 덜하거나 없던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범주의 설정값에 따라 나 역시 사랑을 했구나 명명할 수도 있겠어. 세월이 흐르며 B에게 받은 것들이 축적되어 그걸 몇 배로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 또한 팽창하데. 분명 첫사랑은 그 친구가 했는데 그 못지않게 나에게도 소중한 첫 사람이 되어있어. 6월 중순이 넘어갈 때면 달력을 스윽 봐, 곧 생일이네 싶어 올해엔 무얼 선물할까 고민해.

선장. 첫사랑은, 사랑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모든 타이밍까지도 미숙하고 어긋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걸까. 물론 미숙하기 그지없던 나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했던 B였지만… 당시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던 그 친구가 새삼 대단해. 번복 않고 몇 년이고 품어주던 모습은 더 대단하고. 그러고 보니 상대의 첫사랑 덕에 내겐 첫 경험, 첫 감정이던 것들이 천지였네, 꽤 묵직해 뵈면서도 몽글몽글했던 기억들로 배도 기분 좋게 불러.


그런데 선장, 이제 내가 결혼을 했으니 B는 그 ‘이상한 기분’을 정말 느꼈을까? 이건 도무지 못 물어보겠다.



추천 음반 : [The Art of the Trio, Vol.One]

1번 트랙, Blame it on my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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