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의 조건] by 색시
주간 <시선> 이번 주제는 '끌림의 조건'입니다.
선장아, 나는 이성의 무엇에 끌려왔을까 정확도 높은 통계를 내기 위해 그동안 호감을 가진 적이 있던 모든 이들의 인적 사항과 그 당시 끌렸던 이유들을 전부 열거해 보고 오는 길이야. 몽글몽글한 순간들 한 데 모아 약 20년 치를 반추하고 나니 심장에 살짝 무리가 온 것 같아, 템포가 느린 음악들 들으며 혈액순환을 정상화시키는 중이다.
분석 결과를 먼저 얘기하자면 나는 ‘얼빠’야. 물론 부연 설명이 꽤 필요한 ‘얼빠’.
첫인상이라는 게, 사전적 뜻풀이에서도 보다시피_인상: 사람 얼굴의 생김새. 또는 그 얼굴의 근육이나 눈살 따위_첫눈에 느껴지는 얼굴의 생김새를 얘기하는 거잖아. 그리고 첫인상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저런 판단을 하곤 해, 보기 싫든 좋든 상대방의 첫인상을 마주하게 되고 우리의 뇌는 활동 중이니까. 이때의 판단을 높은 지분으로 하여 사랑에 첨벙 뛰어드는 이들을 우리는 주로 ‘얼빠’라고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얼빠’에 대해 꽤나 동물적이고 가벼운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지만 결코 첫인상에의 판단을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어. 인상을 포함한 사람의 외모는 단박에 정말 많은 걸 알려주니까. (그리고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은 그간의 경험치들로 인해 나날이 날카롭게 단련되지)
내가 끌렸던 이들의 공통점 하나는 ‘단정함’이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는 교과서적인 단정함을 포함해 사람의 평소 습관이 드러나는 이목구비, 표정, 자세, 손톱 등에서 느껴지는 단정함. 정갈함. 그리고 나만의 유의어 ‘차분함’. 유난스러운 표정과 요란한 패션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는 연막 같아, 평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이상적으로 여기던 나는 가급적이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에 반응했어. 딱히 상대에게 잘 보이려 용쓰지 않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 말투. 그러면서도 자기검열을 게을리하지 않는 듯한 단정한 외모는 사람을 고상하게 보이도록 하는 힘이 있어. 소위 말해 ‘잘 배운 티 난다’라는 느낌 있지? 더하여 ‘잘 배운 티 나려고 노력 중이다’ 역시 좋아했어.
두번째 공통점은 ‘눈빛’.
무언가를 열망하고, 그래서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말이야, 사람을 훅 잡아당겨. 그런 자세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있는 이들은 이미 크고 작은 결과물들을 내며 살아온 경우가 많았고 아직 그런 것들이 딱히 없더라도 눈빛만으로 어째 든든했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아. 상대의 눈을 잘 피하지 않는 당당함, 초점이 분명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면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의외성’.
‘얼빠’의 당위성을 완성해 주는 필요조건의 부분인데 말이야, 짧은 만남 속 의외의 모습에 혹하고 나면 ‘이렇게 생긴 사람에게 요런 면이?’라며 이내 제곱이 되어있는 흡입력의 첫인상으로 회귀하곤 했다. 내 본능적인 판단 속 얄팍한 허점을 건드려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야. 저 눈빛으로는 얼마든지 오만할 것 같은데 의외로 겸손하다거나, 깔끔한 인상과 매너에 이성 경험이 차고 넘칠 것 같은데 의외로 뚝딱거린다거나. 정적일 수 있는 ‘인상’ 자체에 동적인 요소가 가미되니 나는 한층 ‘입체적인 얼빠’가 되었다.
왜, 그런 말 있잖아. 대부분은 상대의 첫인상만으로도 내가 사랑에 빠질지 아닐지 알 수 있다는 말.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해.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돌다리를 거듭 두드려보는 조심성이 본능의 영역에까지 침범한 케이스 아닐까? 혹은 유해한 캐릭터에게 끌리는 패치 덕에 혼쭐이 몇 번 났지만 아직 업그레이드 전이라 자신의 판단을 불신하려 하거나.
‘얼빠’의 사전적 의미는 [본질에는 관심 없고, 얼굴이 잘 생긴 이에게만 열광하는 팬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는데 얼굴 속에는 그 사람의 본질이 숨어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조금만 눈 여겨보면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 강한 사람인지, 그래서 타인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는 중인지 아닌지, 총명하고 중심이 잡힌 사람인지,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졌는지, 센스가 있는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등 많은 것들이 외모에 담겨 있어. 나이를 먹을수록 선명히 드러나고. 게다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취향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잖아. 결국 ‘얼빠’는 저 사전적 의미보다 넓게 쓰일 수 있다고 봐. (참고로 몇십 년 같이 산 가족도 그 사람 속을 파악하기란 어려우니 지내 보아야만 아는 것들은 첫인상의 판단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별개의 난제라고 생각해.)
우리 ‘얼빠’라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왕이면 현명한 ‘얼빠’, 고찰하는 ‘얼빠’로 거듭나 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선장, 나는 L 외모 보고 반했다가 결혼했어. 알고 있었나?
추천음반 : 장연주 [Something Special]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해’라는 곡을 첫 트랙으로 앨범이 시작한다. 얼굴이 못생겨서 미안하다며 동시에 자기 예쁘단 소리 들었다고 자랑하는 인지부조화 상태의 화자가 타이틀곡 ‘Something Special’에선 자신 없는 태도 대신 사랑은 대담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기발전적인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