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Oct 07. 2022

딸에게 주는 음악 선물

너와 내 사이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랑하는 나의 첫사랑. 

대학생이 된 너의 첫 시작을 축하한다. 


시간이 자꾸 흐른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이리저리 발만 구른다. 

고작 18년을 키웠는데 벌써 내 품을 떠난다니.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즐겨 부르던 동요의 제목처럼 이 세상에 제일 좋은걸 주고 싶은데. 그게 뭘까.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거 말고. 언제나 네 마음을 단단하게 채워줄 특별한 걸 주고 싶은데. 너는 소중하고. 너는 특별한 엄마의 첫사랑이니까. 결국 엄마는 브런치 글쓰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너에게 음악을 선물하려고 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 방에 혼자 들어갔을 때
네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치일 때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문득 먼 곳에 있는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


음악이 필요한 순간. 너랑 나랑 같은 음악을 듣자. 덜 외로울 거야. 


너 혼자 고스란히 감당해 내어야 할 수많은 감정들을 생각하면 엄마 마음이 아린다. 대신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깝고. 물론 다양한 감정들을 견뎌내면서 너는 너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하겠지만. 




부모는 네가 선택하지도 않은 인생을 선물한 사람이고. 나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네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를 부족한 듯이 키우며 독립성을 키워주고 싶었다. 희로애락이 존재하지 않는 인생이란 없는데, 요즘 부모는 자식이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겪으면 그 부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얼른 달려가서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 같았거든. 문제 해결력을 길러준다거나, 자기 주도 학습력을 길러 볼 틈도 주지 않고 사교육을 바로 적용시키는 것도 사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에서야 고백하는데. 엄마가 너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너는 존재 자체로 귀하지만, 작정하고 너를 부족한 듯 키웠다. 엄마가 말하는 부족함이란, 정서적으로는 넉넉하지만 많은 선택과 결정. 그에 따른 책임을 네가 온전히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일 하면서 너희들 셋을 키우느라 어렵지 않게 너를 부족한 듯 키울 수 있었는데. 당시에 너는 힘들었지? 서운했을 것이고, 불만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거다. 결국 너는 너 답게 해냈구나. 건강한 결핍 에너지가 네 성장 에너지가 되어줄 줄 알았다. 너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탁 집어내는 너의 솜씨에 엄마는 요즘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있단다. 


요즘 MZ 세대 아이들을 부족한 듯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어. 사실 엄마도 전쟁을 경험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비하면 어려움이라곤 모르고 자랐는데. 너희들은 더 하잖아. 부족함을 경험하려면 무슨 박물관 체험관 부스에 들어가서 놀이 체험하듯, 어려움을 경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세대라고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이 전쟁을 경험했다고 더 힘들고, 21세기에 태어났다고 덜 힘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번, 자기 인생만 살아보니까. 그저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내 인생이 가장 귀하고, 가장 고되고, 가장 애틋할 뿐이지.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즐겨라. 

어차피 희로애락은 번갈아가면서 온다.


좋은 게 늘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늘 나쁜 게 아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릴 테니
닫힌 문을 걱정하지 말고, 
기대하며 새 문을 찾아라. 

다 괜찮다. 
엄마 아빠에게 좋은 소식만 전해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남보기 좋은 곳 취업하고
좋은 성과를 얻는 것 만이 좋은 게 아닌걸
엄마 아빠는 이제 안다. 

너 다운 게 가장 좋은 거다.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봐라. 

어떤 일이든
너에게 일어난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믿으렴.

어려움이 없는 인생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어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 힘을 가진 널 위해 엄마가 기도할게. 
평범한 순간에 감사하자.



부족한 듯 키웠다 해도, 그래도 집은 온실이었지. 정글에 너를 혼자 내보내는구나. 


브런치 북에 엄마는 음악 소개만 하려고 해. 감히 연주를 평가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연주를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연주자가 쏟은 시간과 땀을. 바흐는 글렌 굴드의 연주가 정석이고,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호로비츠의 마지막 연주가 최고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모든 연주자는 위대하다. (행여나 연주회장을 나서며 가벼운 입방정 떨지 말길) 듣는 이의 취향이 있을 뿐이지. 겸손한 마음으로 작곡가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연주자의 음악을 경청하길 바란다. 


온전히 네 마음이 닿는 대로 느끼고, 

네가 가진 경험치만큼 상상하고, 

음악 그 자체가 주는 생생한 에너지와 충분한 위로를 받길. 


다행이다. 너와 내 사이에 음악이 있어서. 


사랑한다. 내 첫째 딸. 엄마 첫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