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딸에게 주는 음악 레시피 #1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op.18
기억나니? 네가 한창 공부하느라 힘들던 고등학교 시절, 이어폰 한쪽을 엄마한테 건네주며 음악을 같이 듣자고 한 적이 있다. 너랑 같이 들었던 음악은 아이유 신곡이었어. 엄마는 그때 너와 다시 탯줄로 이어진 느낌이었어. 그리고 한없이 눈물이 나더구나. 너랑 따뜻하게 연결된 느낌과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였던 것 같아.
그때도 어김없이 너와 나 사이엔 음악이 있었지.
이제 너와 물리적으로 꽤나 오랜 시간 떨어져 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주 연락해서 너의 생활을 훤히 내 일상처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떨어져 있는 건 떨어져 있는 거니까. 하는 일이 잘 풀리고, 하는 일이 바쁠 땐 오히려 괜찮아. 하지만 살다 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인데. 엄마랑 들었던 음악들, 엄마가 소개해준 음악 들으면서 너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지혜로운 여성이 되길 바란다. 네 안에는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 기억하고.
음악은 때때로 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거야. 네가 듣는 음악이 곧 너고, 너는 음악 속에서 너를 찾을 수 있어. 음악이 끝나는 순간, 네 몸이 움직일 거다. 춤추듯. 리듬을 타게 될 거야. 음악은 너를 끊임없이 시작하게 하고, 지속하게 하고, 될 때까지 하게 하는 힘을 줄 거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비비안 그린-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Vivian Greene-
엄마가 오늘 너랑 나누고 싶은 음악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야. 라흐마니노프는 24살에 교향곡 1번을 작곡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엄청난 혹평을 받았어. 리허설 부족과 지휘자의 무성의한 지휘 탓에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지만, 온 마음 다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혹평을 받았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존재, 뿌리가 흔들렸을 것 같아.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작곡을 다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아.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3년간 우울증으로 작곡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단다.
깊은 수렁에 빠져있던 라흐마니노프는 친구의 권유로 최면요법의 권위자였던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을 만나고 그로부터 1년 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세상에 내놓았단다. 촉망받던 청년이 우울증의 나락에서 긍정 요법을 통해 다시 펜을 들고 1년간 하루 최소 7시간씩 작곡에 몰두하며 세상에 다시 내놓은 음악. 라흐마니노프를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사랑받게 해 준 곡이지.
니콜라이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매일 진료실에서 이 문장을 암시해줬데.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우린 흔히 성공한 사람의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지. 24살의 라흐마니노프를 상상해볼래? 금기된 사랑 - 사촌을 사랑해서 인정받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 악평을 받았고,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렸고, 귀족 출신의 가문이었지만 명망을 잃었어.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고통의 깊이만큼 전달되는 감동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엄마는 네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너 자신의 니콜라이 달 박사가 되어주면 좋겠어. 믿음의 말을 너 자신에게 언제나 셀프로 해 줄 수 있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그보다 든든한 일은 없겠지? 달 박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줬다 해도, 라흐마니노프가 스스로를 믿지 않았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믿음. 너를 향한 믿음. 너에게는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너에게 보낸다.
엄마가 딸에게 음악으로 전하는 인생 지혜
협주곡(Concerto)은 선율을 따라가며 들어보렴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을 들을 때는 솔로 악기의 선율을 따라가며 음악을 들어봐.
때론 피아노를.
때론 오보에를.
때론 바이올린을.
너무 의식하지는 말고, 그냥 힘 빼고 들어.
듣다 보면 가장 잘 들리는 소리가 주선율이니까.
들리면 듣는 거고, 안 들리면 오케스트라 소리 전체를 들으면 되는 거야. 악기들이 사이좋게 소리를 주고받는 연결이 느껴지니? 주 선율이 가장 드러나도록 다른 악기는 잔잔하게 반주의 역할을 하고 있어.
드러나는 게 훌륭한 게 아니고.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게 훌륭한 거다.
모든 악기가 서로 "내가 주 선율이야!!" 라고 자랑하듯 연주한다면 어떨까? 균형이 깨져서 결코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 거야.
그룹 프로젝트할 때,
팀 플레이를 할 때.
너는 너의 역할을 잘하고 있니?
음악처럼 조화로운 사회의 일인이 되길. 잘난 사람이 잘난 게 아니고,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네 역할을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