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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Oct 30. 2022

사랑받고 있는 아이를 위한 음악

아이는 자기답게 잘 자란다. 엄마가 걱정을 해도, 안해도.

에게 주는 음악 레시피 #8

차이콥스키 '사계' 작품번호 37a 중 6월 뱃노래 (Barcarolle) 


사랑하는 나의 첫사랑. 


내가 너를 낳았던 6월은 장마 기간이었는데. 18년 전, 비가 와도 엄마는 상관없었다. 산후조리 중에 에어컨 틀면 안 된다는 소리는 살짝 내려놨고. 기저귀 찬 네가 땀띠라도 날까 싶어 에어컨 살짝 켜놓고 지냈거든. 너랑 실내에서만 있었으니 장마기간이라고 안 좋을 것도 하나 없었고 그저 좋았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맑으면 맑아서 좋았어. 너를 순산했으니까.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3대 발레곡이라고 불리는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모두 작곡한 19세기 러시아 대표 작곡가인데. 발레곡은 이미 많이 들어봤을 테니 평소 차이콥스키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피아노 소품 ‘사계’를 같이 들어보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네가 태어난 6월, 뱃노래(Barcarolle)가 12곡 중에 가장 인기가 많단다! 


차이콥스키는 1875년, 출판업자이자 잡지 발행인이었던 니콜라이 베르나르드에게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음악잡지 누벨리스트(Nouvelliste)에 피아노곡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 출판사는 1년 열두 달이 갖고 있는 분위기를 묘사한 시를 차이콥스키에게 전달하고 차이콥스키는 매달 자연이 주는 특별한 계절적 감각을 음악으로 그려냈단다. 훗날 12개월의 12곡이 ‘사계’로 출판되었어.


해변의 잔잔한 파도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묘사하며 낭만적인 여름을 그림처럼 표현하는 플레시에프의 시를 읽으며 음악 들어보렴. 유유자적한 방랑자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이 곡을 들으며 네가 사랑받았던 순간들도 떠올려보렴.


해변으로 가자,
우리들의 밤에는 파도가 입맞춤을 할 것이며
수심에 찬 별들이 우리들 머리 위에서 빛나리라


-알렉세이 플레시에프-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6월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프랑스 영화 ‘베어(L'Ours, The Bear)’의 메인 주제곡으로도 들을 수 있단다. 영화 ‘베어’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동물들이 야생의 환경에서 주요 스토리를 끌어가는데, 프랑스에서 꽤 성공을 거둔 영화야.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고, 희망이 느껴지는데. 너에게는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하다. 


영화 이야기를 살짝 해주자면.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아. 초입부에 엄마 곰이 산꼭대기에서 굴러온 돌에 깔려 죽는다. 아기 곰 두스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고 큰 바위를 옮기려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죽은 엄마 곰 옆에 누워서 흐느낀다. 그때 나오는 음악이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6월, 뱃노래야. 피아노곡이 아닌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된 뱃노래의 주제 선율은 영화의 중요한 장면마다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영화 '베어' 엄마가 죽은 장면(5분경)


여기에서부터가 중요해. 야생에서 엄마를 잃고 고아로서 살아가면서, 처음 본 개구리조차도 두려워했던 어린 곰 두스가 살아가는 중요한 여정 길마다 영상미를 채워준 음악이 바로 차이콥스키의 뱃노래다. 엄마는 사실  차이콥스키의 뱃소래가 처음엔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슬프기만 했는데 영화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희망가처럼 느껴지더라.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차이콥스키의 성장 배경과 아기 곰 두스를 연결 해서 곡을 선정했던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떠나보냈고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음에도 후세에 길이 남을 명곡을 남겼다. 아기 곰 두스도 야생의 거친 환경 속에서 두려움과 싸우며 살아남았고 엄마 없이도 훌륭하게 성장했고.


여기에서 귀한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엄마가 일거수일투족 따라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란다는 것을.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잘 자란다.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할 뿐이다.


엄마 역시 우리 딸 걱정 하나도 안 하는 거 알지?


‘사계’를 떠올리면 비발디의 사계가 먼저 떠오를거야. 비발디는 사계절을 각 3악장으로, 총 12곡을 썼다. 차이콥스키는 1년을 12달로 나눠서 총 12곡의 소품집으로 사계를 작곡했고. 그 외에도 하이든(Haydn), 글라주노프(Glazunov), 피아졸라(Piazzolla)도 ‘사계’를 작곡했으니 하나씩 차근히 들어보며 계절끼리 비교해보렴. 


네가 생각하는 각 계절의 의미, 계절마다 느낄 수 있었던 추억들. 

음악과 함께 풍성하게 다시 기억해보길. 


너는 사랑받고 있고, 

소중하단다.


Bacarolle (임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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