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해수욕장의 어느 의인께

by 윤지WORLD

서점에서 핑크 표지로 물든 매대에 시선이 갔는데

그게 무려 정해연 작가의 신작이어서 얼른 펼쳤다.

홍학의 자리를 읽은 나는 이제 정해연 작가의 책을 펼치면 인물 이름부터 확인한다.

홍학을 읽은 독자 중에 나같은 사람 또 있을 거라 생각하는 바 저자 역시 집필중에 그럴 독자들을 상상하며 미리부터 즐겁지 않았을까

나도 상상한다.


흥미롭게 서문을 읽다가 물에 빠진 아이의 내면 묘사가 구체적이라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때는 내가 고1이던 시절,

가족여행을 간 하조대해수욕장에서 난 가족구성원 중 유일하게 바다에 입수했다.

혼자 신나게 바다와 놀다가 문득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인지했고 내 몸뚱이만한 튜브를 잡고 있

던 손에 힘이 빠져 가는 걸 느꼈다.

멀리 아빠가 보였다.

이것이 그때에 관한 내 기억의 전부고 그 이후 시점은 가족들의 기억에 근거해 충격과 공포의 우리집 괴담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내 기억엔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수영 능력을 보유한 어떤 아저씨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살아 있는 나를 육지로 날라다 놓으시고 바람처럼 사라지셨다고.


덕분에 살아 숨쉬며 썰로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그런 사연이 있음에도 워터파크와 바다에 환장하는 30중반이 되어 있는 걸 보니 PTSD로는 안 남았나 싶다.

또 그날 우리가족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세상 가장 낮은 자세로 그저 감사하며 아주 작은 축복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갈 것을 기도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 부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30이 넘은 지금까지 홧김 반 진심 반으로 그때 죽었을 것을 하고 생각하며 키우는 날도 종종 있었으리 나는 짐작한다.


다른 생명체와 구분되는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의 나는

참 많은 순간이 운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피한 줄도 모르고 피한 불행이 얼마나 많았겠으랴.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

작은 것에 크게 분노할 나를 안다.

해서 오늘이 가기 전에 세상 가장 낮은 곳의 인간 나부랭이가 되어 때 늦은 기도를 드려본다.


신이시여,

제가 하루쯤 못 살아도 되니 하조대해수욕장 의인님의 어느 하루에 축복을 몰빵으로 내려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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