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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민 HEYMIN Aug 10. 2021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의 하루가 더 궁금해

브이로그편


피시방 알바 브이로그,

조회수 14만회, 3일 전.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추천영상에 올라온 브이로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평범하고 단조로웠다. 노래로 치면 마치 후렴구나 지르는 구간 없이 잔잔한 노래랄까. 유튜버가 알바를 꽤 오래한 솜씨였는데 주문받은 인스턴트 음식을 끊임없이 만드는 게 전부였다. 화면에 나오는 건 능숙하게 요리하는 손과 라면처럼 냄새를 상상시키는 자극적인 음식들 뿐.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건 왜 였을까. 평소에 브이로그를 즐겨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이 영상은 끝까지 봤다. 한 2분 쯤 봤을까. 잘 튀겨진 추억의 피카츄가 등장한다.


 ‘오 피카츄! 진짜 오랜만이다. 어릴 때 분식집에서 많이 먹었는데...’


귀가 살짝 모자라 애매하게 생긴 그 모습이 너무 반갑고 귀여웠다. 15년 전 마지막으로 먹은 맛이 떠올랐다. 알바생은 피카츄를 여섯조각으로 나눠 용기에 가지런히 담는다. 그리고 그 위에 일정한 굵기로 물결치는 케찹을 능숙하게 짜 올린다.


‘아, 배고파! 나도 먹고싶다...’


 계속 냄새만 상상하고 있으니 배가 고파진다. 이제 저 피카츄 친구는 손님자리로 가는구나 싶었는데 끝이 아니다. 그녀는 머스타드 소스를 집어들어 두 눈과 입을 그려넣는다. 피카츄가 나를 보고 웃는다. 내가 그 피시방 손님이라면 한번만 먹지는 못할 거 같았다. 다시 보고 싶은 아주 깜찍한 모습이었으니까. 영상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짜파구리 위로 이런 자막이 올라온다.


‘저는 일을 4개나 하고 있었는데 평일에 하던 카페는 얼마 전에 그만뒀고’

‘피시방은 사실 계속 할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

‘열심히 산다고 살긴 살았는데 번아웃 왔나봐요.’

‘한두 달만 푹 쉬고 오고 싶어요.’


 자막을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일렁였다. ‘피시방 알바생’이라는 짧은 수식어 대신 그녀를 설명하는 말에 살이 더 붙었다. ‘알바를 4개나 할만큼 열심히 살아가지만 번아웃에 빠져 휴식이 필요한 대한민국 청년 중 한 명’ 그리고 그 설명은 곧 ‘나’이기도 했다. 두 달 전, 퇴사결정을 앞두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번아웃은 아닐까. 출근이고 뭐고 제주도로 떠나고 싶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생각을 찍어냈다. 그녀가 영상을 편집하며 적었을 5초짜리 자막 너머에는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와 고민을 감당하고 있을 또다른 일상의 장면이 있겠구나 싶었다. 마음이 일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까. 이제 나와 그녀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내게 위로를 건네듯, 그녀에게 쉬어가라는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곧장 댓글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이미 많은 위로의 글과 영상을 계속 기다렸다는 팬심 가득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 힘들지 말아요. 우리 다 행복하자고 일하고 그러는거니까... 무엇보다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마음이 일렁였다. 피시방 알바생이 처음 영상을 올린 건 4개월 전. 전체 영상도 6개 밖에 안되는 초보 유튜버. 그래서일까. 방금 찍은 듯한 영상, 가끔씩 등장하는 장난끼 어린 자막. 그게 그녀의 영상을 채우는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140,000번이나 보고 갔다. 물론 그 중에는 여러번 보러 온 사람도 있겠지. 그렇다면 왜 여러번이나 봤을까. 그건 아마도 그녀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거꾸로 우리가 그녀에게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군가의 일상. 그건 일한 값을 돈으로 돌려받고 있는 수많은 아르바이트생 혹은 직장인의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영상을 소비하는 그 경험만으로도 위로를 얻는다. 그녀처럼 똑같이 일 하고 돈 받고 그러다 한번씩 번아웃이라는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한달을 채우고 일년을 넘긴다. 나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그 위로가 브이로그를 보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로의 형태가 꼭 어깨를 토닥이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모양일 필요는 없었다.



위로의 형태가 꼭 어깨를 토닥이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모양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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