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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민 HEYMIN Sep 02. 2021

퇴근길에 젤리 한 봉지 어때?

젤리편 2


우리가 젤리를 좋아하는 이유 두번째

스트레스 제로



 회사에서도 젤리를 떠올리는 순간이 잦았다. 이상하게 일을 하다가 집중력이 바닥나면 마음속으로나 겉으로나 당 떨어진다는 말을 자주 뱉곤 했다. 그때마다 지친 나를 달래고 부족한 당을 충전해주는 건 마이구미였다.


‘아 안 되겠어. 이따 밥 먹고 사와야지.’


 그날은 며칠 내내 숫자 가득한 엑셀만 보고 있자니 눈이 시린 날이었다. 오전부터 당 생각이 밀려왔다. 원래 지하에 구내식당이 있어 매번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문을 닫으면서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도시락을 챙겨야 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 근처에 살고 있는터라 집에 가서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밥은 대충 해결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밥보다 더 땡기는 젤리를 사올 때가 잦았다.  

 

 역시나 그날도 편의점에 들러 마이구미를 샀다.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는데 당을 쪽쪽 빨아먹던 엑셀창이 그대로 떠 있었다. 에잇. 곧장 손에 쉬고 있던 봉지를 뜯었다. 익숙한 향이 올라왔다. 마이구미는 뜯을 때 풍기는 진한 포도향이 있는데 화학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가짜 향인 걸 알면서도 그게 진짜 포도향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무척 달달하다. 봉지에서 포도알을 하나 꺼낸다. 절대 한 번에 넣지 않는다. 앞니로 똑똑 끊어 여러 번 나누어 먹는데 젤리를 뜯어내는 순간 느껴지는 쫀쫀한 반동이 좋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저작운동.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또다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90을 넘나들던 스트레스가 점점 0을 향해 내려간다.


‘아니, 벌써?’


 봉지 안을 몇 번이나 더듬거리는 손가락. 더 이상 잡히는 포도알이 없다. 아 이런. 순식간에 한 봉지를 해치웠다니. 방금 먹은 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아껴두었을텐데. 아쉬움이 들지만 그래도 이제야 당이 차오른 기분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두 눈과 키보드 위의 두 손이 아까보다는 조금 빨라진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지금. 최근에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젤리 좋아해?’, ‘젤리가 왜 좋아?’라는 질문을 주변에 뿌리고 다녔다. 덕분에 평소에는 전혀 관심 없던 지인들의 젤리 호불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주로 주식, 집값, 결혼 이야기를 핑퐁 치던 우리들 사이에 나름 신선하고 흥미로운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젤리가 왜 좋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을 헤아려보니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중 마음에 쏙 드는 답이 하나 있었다. 미운 상사를 씹지 못해 젤리를 씹는 거라고 했다. 라임도 완벽했다!


그런데 그 얘기가 맞다. 씹는 것. 우리가 젤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애초에 사람은 말랑말랑한 무언가를 씹기 좋아하도록 태어난다고 한다. 씹는 일을 하는 동안 몸속에는 같은 시간 동안 흐르는 혈액의 양이 더 늘어나는데, 그 덕에 평소보다 많은 산소가 뇌에 공급되면서 피로도 줄어들고 집중력도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코티솔'이라는게 분비되는데 이 녀석은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얄미운 녀석이다. 이때 젤리를 씹으면 코티솔 분비가 줄어들면서 우울감과 불안감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다.


 오호라. 집중력 향상과 불안감 해소라니. 그렇다면 앞으로 젤리를 더 열심히 먹어서 집중력도 높이고 더 행복해져야지라는 무식한 생각이 드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당충전을 위해 고를만한 건 젤리 말고도 많다. 그렇다면 왜 유독 젤리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 이야기 하나 꺼내볼까 한다.


 실험의 주인공은 초파리. 여름철이면 가장 보기 싫은 불청객인데 연구소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신기하게도 초파리는 음식의 굳기와 맛에 대한 감각을 알아보는 데에 좋은 실험대상이라고 한다. 어느 대학 연구팀에서 초파리 40마리를 데려다 음식 선호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음식의 굳기’가 부드럽다 혹은 딱딱하다 정도의 기계적이 자극에만 그치지 않고 음식에 대한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예를 들어 같은 단맛의 음식이 말랑한 상태, 딱딱한 상태로 나란히 놓여있다고 치자. 그럼 딱딱한 쪽에서 느낀 기계적 자극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데 이때 ‘이거 생각보다 딱딱한데요?’라는 굳기 정보도 함께 전달된다. 그럼 단맛을 느끼는 뇌의 신경세포는 단맛을 전달하는 신호기능이 떨어져 음식에 대한 선호도까지 떨어뜨린다. ‘딱딱하다고? 그럼 달아도 별로 안 땡기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굳기가 선호도를 결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결국 똑같이 달다면 딱딱한 사탕보다는 말랑한 젤리를 택할 확률이 높다는 걸 말해준다.


 이쯤 되니 일에 집중이 안될 때 마이구미를 떠올린 이유, 씹을 때 느껴지는 쫀쫀한 반동을 즐기는 이유, 빈 봉지를 더듬으면서 아쉬워했던 이유, 상사를 씹지 못해 젤리를 대신 씹은 이유들이 이해가 간다. 이 모든 게 ‘젤리를 좋아하는 이유’라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젤리가 땡기는 이유'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몸이라는 게 세상 밖에 나오기를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무언가를 씹기 좋아하도록 설계되어있으니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고개를 돌려봤을 때 혹은 지인들을 떠올려 봤을 때 일로 지쳐있거나 시무룩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손에 마이구미 한 봉지를 슬쩍 쥐어주는 건 어떨지. 아, 만약 본인이 지금 그런 상태라면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스트레스 해소에 마이구미 한 봉지! 이 정도면 충분한 가성비가 아닐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0에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운 상사를 씹지 못해
젤리를 씹는 거라고 했다




젤리를 좋아하는 이유 1편도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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