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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Nov 05. 2021

파도 자국

우리는 이제

어쩌면 나는 예전 일을 빨리 잊는 사람인지도 몰라. 나는 그냥 그런 여자야. 서율은 자조하듯 병실 안에서 되뇌었다. 일종의 자기 확언 문구와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나를 지켜온 거야. 세상 그 무엇부터라도.’


… 근데 그 이외에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그녀가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맞았을까? 

기댈 수 없는 부모가 있었고, 그녀의 성공을 시기 질투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혼자서 개척해 나가야만 했던 스물몇 살의 그때를. 눈을 감아 보면 아직도 서율은 지율을 낳고 병실에 누워 회복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몸뚱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편,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한 두 사람이 마주했다.


-잘 지냈어?


은빈을 보며 지우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은빈은 지우를 쏘아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 사람은, 내가 잘 지냈길 바라는 건가? 그 순간의 준철은 또한 자신이 가졌던 은빈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오늘 밤이, 할머니가 마련해 준 관혼상제의 장이, 미진하고 지리멸렬한 그녀의 첫사랑의 감정들을 끌어내어 폭발해 주길. 준철은 바랬다. 


-…네?


안부를 묻는 지우의 말에 은빈은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수많은 시간 속의 자기 방어로 세워진 견고한 마음의 성 속에서 은빈은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은빈은 마른 입술을 떼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뚜껑이 열릴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선배. 할. 말. 이. 이 씨. 어. 요.’


준철은 그렇게 상주 완장을 찬 남자와, 하얀 옷을 입은 은빈이 함께 복도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제발 은빈아, 차라리 그 남자의 뺨이라도 후려치면서 마구 울고 풀어버리길. 그래서 내게 다시 돌아와 주길. 만신창이가 되어 우는 너라도, 온전히 내게 와 주는 거라면 나는 모두 묻고 너랑 함께할 거야. 그렇게 우리 함께 살자. 살아가자. 살아남자. 


-  할머니, 고마워요. 차라리 이런 밤을 저희에게 주셔서요.


준철은 눈물을 머금고 소주 한 잔을 더 따랐다. 장례식장이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서율은 계속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보려고 애썼다. 링거 주사 바늘이 꽂힌 손목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가습기가 있고 냉장고가 있는 작은 방, 보호자는 없고 밖에는 비가 처연하게 내린다. 아직도 꿈같은 안갯속을 헤매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독백이 이어졌다. 


-      누군가 짓밟고 지나가는 매트가 아니라, 오롯이 나 혼자서도 빛나는 박서율이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스스로 괜찮다고 자위하는, 지독한 거짓말쟁이는 아니었을까? 날이 서있었던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어. 자다가도 생각나는 피붙이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닿을 수 없는 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용기 내어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그들은 있었고, 나는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잃는 것이, 한없이 두려웠다.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는 주말 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주말 밤이 되면, 서율은 내리 생각했다. 위스키 따위를 마시면서. 그녀가 무엇 때문에 살아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했다.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그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엄마이기보다는 그녀가 챙겨주어야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열두 살 무렵에 내가 실수로 고무줄을 튕기다가 그녀 얼굴에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아빠에게 울면서 쟤가 나를 죽이려고 해, 하며 울었다. 그때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서율은 많이도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에게 착한 딸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에게 돌보아야 할 딸이 있는 걸 버거워했던 것 같다. 자신이 제일 우선이었던 사람에게 자식이 생긴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율은 엄마의 인생을 이해해 보려고 부단히 애썼을 때도 있었다. 엄마가 뒷바라지해야 했을 남자 형제들과,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다던 외할아버지와, 그녀를 살림밑천처럼 다뤘던 외할머니와.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서율을 보살폈다. 엄마는 자기 인생을 살고 싶어 했지만, 그만큼 강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었다고 했다. 따라서 결혼한 그녀 또한 서율의 아버지에게 비슷한 것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지만, 서율이 어렸을 때 목도한 건 그녀의 외도였다. 그것도 서율의 선생님 중 하나와. 그녀는 서율이 그 순간을 보았던 걸, 지금까지 기억하리란 걸.. 그게 서율이 엄마에게 거리를 두게 된 계기라는 걸, 그녀는 알까.. 서율은 그때부터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일들에 대해 대화의 계기가, 물꼬가 트였다면 어땠을까. 서율은 그녀에게 서율에게 일어났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대학교 졸업을 하고 한참 지났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사건의 범인이 밝혀졌음을 알았다. 그 사건의 범인은 초범이 아니었고, 그녀가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또한 아니었다. 서율은 해외를 돌다가 서울에 돌아와 취직을 하고 나서, 동창생 모임 차 그녀가 졸업했던 학과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다가 학과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범인의 이름을 듣고 구역질이 올라와 화장실에서 꽤나 토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 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꾸역꾸역 채워나가는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나. 


네 사람이 우연히 조우했던 장례식이 끝나 발인까지 한 뒤, 관객 없는 몇 번의 모놀로그를 마친 서율이 퇴원하던 날, 그녀는 입원했던 병원 담당 주치의의 소개로, 정신과 진료를 추천받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과 외래로 약물 치료와 함께, 연계된 외부 상담소의 상담치료도 받게 되었다. 서율은 자신이 먹는 게 무슨 약물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저 삼켜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건 보통의 항우울제처럼 그녀의 감정을 조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능만 해 왔던 그녀라는 사람의 감정의 문을 다시 여는 그런 느낌의 것이었다. 


약을 먹고 2주쯤 지난 시점에, 서율에게는 이전보다 많이 졸음이 쏟아졌고, 밤에 집에 와서 하던 일을 좀 내려놓고 소파에 눕는 일들이 자주 생겼고, 그렇게 쓰러져서 잠드는 경우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생겨났다. 주말이 되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집의 환기를 시키고, 피망이나 오이, 토마토 따위를 잘 씻어 물기를 빼서는 잘게 채 썰어 샐러드처럼 먹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 뒤 상담을 받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많이 바쁜 주중 이후의 주말, 그녀는 자신에게 하나의 루틴이 생긴 게 나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상담치료사를 만나고, 최초의 인터뷰를 하고, 상호 비밀 보장에 대한 서면 동의를 받은 다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하다가, 눈물이 차올랐다가, 또 가라앉는 과정은 깡마른 체구의 그녀에게는 많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 혼자서 유유히 헤엄치던 바닷속에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가까스로 숨을 쉬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상쾌했다. 슬펐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고, 오래 케케묵은 어깨 위의 먼지를 털어내는 그런 의식이었다. 


상담을 시작 한 뒤 일 년 즈음 시간이 흘렀을 시점에, 상담치료사는 서율에게 'Pseudo maturity'라는 진단을 내렸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과도기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야 할 성장이나 성숙이 부재했으므로, 다양한 유형의 성인 역할 기능을 손상시키는 그런 상태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싫어하면서도, 효녀심청의 위치에  놓여야 편한 그런 성격이라는 거였다. 그녀 안의 자아가 뭐라 했던, ‘넌 착하니까, 넌 말 잘 들으니까’는 말로 그녀에게 주입을 해 온 엄한 엄마. 서율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를 떠올리며 자문했다.


-엄마의 훈육 또한, 그것도 사랑의 일종이었을까?


서율이 걸어온 길은 사실 불운의 연속일 뿐이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든 언젠가는 조금씩 겪어야 할 불운들의 연속. 사고였을 뿐인 사건들 속에서 서율은 두려웠다. 유기 불안을 느끼는 아이처럼, 자신이 잡고 있는 공부든, 일이든 놓아버리면,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릴 거 같아서.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시절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살아가기 위해 감정을 묶어 버렸던 십여 년 간의 시간들 속에서, 서율은 마음속에 싹을 틔운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씨앗은 점점 더 큰 나무처럼 자라났다. 유난히 많이 울고 돌아온 토요일 오전 상담의 날에, 서율은 가만히 앉아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짐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다가 아무것도 써지지 않은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가죽 양장으로 되어 있는 오렌지빛 표지 속의 미색 종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꽃을 피워 내게 다가올

너를 기다리는 나

간절한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다 보면

아니 너를 찾아나가다 보면

행복한 사랑하게 되겠지


사람에게 매달리지 말자고

나의 가치를 알자고

생각을 제발 적게 해 보자고

이제야 늦게서야 나이게 되는


이별하는 순간들이 잦아진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발걸음으로

나아가야지 다짐한 순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먹고 마시는 일조차 잊어버릴 만큼

한 가지 생각에 천착하여

나의 아픈 기억들과 흔적들마저

지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일부러 기억해 내려고 애썼었다

세상에 내 피붙이가 있다는 걸

그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는 걸

언젠가는 자신을 세상에 내 보내준

사람을 그리워하고 찾게 될 거라는 걸

곁에 잊어주지 못함을 증오하고

미워하다가 오랜 세월 후에

후회하리라는 걸


적어도 그 아이가 결핍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는 아이는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물음표를 몇 개인가 그려 넣고 서율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우 씨. 지금 지율이 어딨어?

-      서율아. 

-      응, 지금 어딨 어요? 괜찮아요? 

-      갑자기 왜 그래.

-      보고 싶어서. 나 미쳐버리기 전에 내 애가 보고 싶어서.

-      … 소망병원으로 다시 와. 지율이 상태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서율은 다시 겉옷과 백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서 택시를 잡아탔다. 마음이 두근댔다.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말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았다. 녹아내린 눈사람처럼 부정당할까 봐 두려워서, 감정을 느끼면 살 수 없었던 서율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와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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