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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Nov 08. 2021

파도 자국

어딘선가 네가 나를 찾는다고 말할 때

소독약 냄새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병원에 다녀와, 불을 켜지 않은 거실로 들어선 서율은 멍한 머리를 이끌고 예의 그 커피 기계 앞에 섰다. 디카페인 커피라도 마셔야 산산이 부서졌던 충격의 조각들을 다시 그러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세월들에 묻어둔 상처가 고개를 들었던 최근 일 년 여 동안, 그녀의 마음은 많이도 혼란스러웠었다. 고스란히 받아내던 충격들 속에서 가장 큰 아픔을 동반했던 건, 지율과의 조우였다. 지우는 더 이상 그녀의 삶에서 걷어낸 피고름 딱지 이외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데려다 놓고 엄마로서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는 지율에게 서율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그런 살가운 엄마를 가져본 적 없는 서율로서는 그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보다 더 나은 의료적 지원을 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반문했었다.


-들어와.


지율이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자 지우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녀를 맞았다. 아이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속눈썹이 긴 그의 눈매가 커다란 음영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그 시간 동안 그리워했을지도 모를 엄마에 대한 마음으로 움푹 파인 구덩이처럼. 닿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울음을 삼키고 있었을지도 모를 심연처럼. 말라서 안쓰러운 아이를 좀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환자 차트를 보자 열일곱/남, 이라고 적혀 있다. 정말 이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맞나? 서율은 작은 한숨을 쉬며 지우에게 물었다.


-내가 알아야 할 지율이 상태라는 게 뭐야?

-주치의 선생님 같이 만나봐야 할 거 같아.


지율인 원래 신장이 안 좋게 태어났는데,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이번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문제에, 원래부터 있었던 우울증이 겹쳐 몸에 무리가 와서 입원한 거라고 했다. 신장이야 혈액만 맞으면 하나 정도 떼어 줘도 상관없다고 서율은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역할의 부재 때문에 생긴 그런 류의 우울감이라면 서율 자신이 그 빈자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채워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시간은 너무나 빠를 것이다. 자식이 되는 것도 부모가 되는 것도 이 세상에 태어나면 한 번 뿐이란 걸 서율은 이제 알고 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었고, 육아를 해야 한 것도 아니었으나 지율을 세상에 내보낸 만큼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사고를 당하고 세상에 내쳐진 그녀의 육신을 병실에 내동댕이 치고, 기댈 곳 없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그런 남자의 부모, 가족을 서율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다시 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흔히들 피가 당긴다고 했었나. 그런 드라마나 유행가에 나오는 말들이 다 사실이었나. 산다는 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율은 생모라는 이유로 의사와 면담을 해야 했다. 법적인 보호자는 저기 저 남자고, 내 인생의 포식자 같았던 사람 역시 저기 저 사람인데, 나에게 내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했던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인데.. 그는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서율에게도 이제는 책임을 전가할 생각이었던 걸까.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해도 되나. 서율은 잠시 마음을 비우고 의사가 하는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말을 듣고 나자 토하고 싶어졌다.


신장 이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혈액 검사를 했다. A형인 그녀와 AB형인 지우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O형일 수 있을까? 머리를 둔기에 얻어맞은 거 같은 서율은 자꾸 무너져 내리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이 사실을 지우는 알고 있을까?


서율은 눈물을 머금고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그때 사건의 가해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혈액형에 관한 정보가 있을지 찾기 시작했지만, 신상 정보인 혈액형에 대한 게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서율의 촉이 재촉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녀 자신도 너무 잘 알기에, 검색을 통해 찾은 번호로 학과 사무실에 문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녀가 들은 대답은 그런 정보를 구하는 졸업생의 이상한 궁금증에 대한 질타라기보다는, 며칠 전에 고인이 된 교원의 소식을 어떻게 알고 문의하였는지에 대한, 서율의 질문에 대한 질문이었다. 장례식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서율은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 병원이 이 한 곳인 마냥, 지율을 길러주신 지우의 어머니도, 그녀 삶에 큰 오점을 남긴 그 인간도 여기에서 삶을 마감했던 걸까. 어디서고 한 번은 마주칠까 늘 마음 졸이며 살았다. 가해자가 누군지 알게 된 순간부터, 그와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어깨를 움츠리고 숨어버렸던 서율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업으로 하면서,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녀 혼자서만 알고 있는 아킬레스건이었다.


서율은 입술을 깨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또 아래로 침잠하는 그녀의 몸뚱이는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철썩철썩 두드려 맞은 파도로 인해 이미 절여질 대로 절여져 있었다. 인생이 파도처럼 오고 가는 것이었던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물처럼 부서지고 사라지고 또 생기는 그런 것이었나 싶어서, 허탈한 마음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두운 색 옷차림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빈소에 들어선 그녀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서율은 울부짖고 싶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저 짐승 같은 인간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왜 그랬냐고 따지기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말같이 남은 그 감정들이 지금 서율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울며 흐느끼는 그녀의 마른 등을 바라보던 상주가 다가와 감사의 목례를 한다. 기독교식의 이런 장례식장에서 인생이 서러워 통곡을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구나. 저런 인간에게도 가족은 소중했을까. 딸 둘과 아들과, 서율처럼 마른 미망인의 눈망울.

서율은 바싹 마른 입술을 가까스로 떼며 그녀에게 물었다.


-      저, 고인의 사인은 무엇이었나요? 갑자기 왜…


-      지병이 있으셔서 수술을 했는데.. 잘 안 됐어요. O형 혈액형도 부족해서 가족들이 막 수혈하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학교에서 오신 분이신가요? 제자분?


-      아, 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으며 혀를 깨물어버리고 싶은 서율은, 흐르는 눈물을 뒤로하고 장례식장을 나와 택시를 타고 어디로든 가달라고 말했다. 돌아올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혼자 있으며 안 될 것 같았다. 오랜 딱지를 뗀 상처에 약을 바르고 혼자 잘 살아왔던 지난 일 년 여 간, 상담도 받으면서 지냈던 자가 치유와도 같았던 나날들 속에, 유독 그 사건은 다시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단 하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던 그 일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과, 원망을 저 멀리 묻어놓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건 삶에 대해 깨달음을 던져주던 이런 타이밍이랄까. 생각지도 않았던 원인으로 인해 엄청나게 큰 파장을 가지고 온 서율의 인생이란. 파도 자국이 남긴 건 상처인지, 생채기들을 묻고 가라는 절대자의 메시지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둘러싼 막을 깨버리고 변해야 하는 시점임은 틀림없다. 그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겉으로만 어른 몫을 했지 속은 어린아이었던 서율은 서울의 야경을 수놓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모범택시 안에서 목놓아 엉엉 울었다. 미터기의 요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순간, 경험이 많을 것 같이 보이는 기사 아저씨는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서율만이 가질 수 있는 치유의 순간이었다. 이제 지율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의 결정만이 남아 있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 주어야 할 - 그녀 자신이 만약 자신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면 - 의무 같은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 운명은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피로 맺은 관계를 해결하는 일 또한 남은 자의 몫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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