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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무자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by 장서율 Jul 16. 2022

칸느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헤어질 결심' , 해외에서는 'Decision to leave'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다. 함께하면 왠지 두근 거리는 지인과,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전에 빨리 보러 가자고 하며 달려간 금요일 저녁. 기다려지는 사람과 기다려지는 영화를 두고 차는 왜 이렇게 막히고, 일은 왜 이리 밀려드는지.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황금 같은 금요일의 저녁 8시. 해외에서도 박찬욱 감독님의 팬들은 꽤 많은 것을 실감하며 내심 뿌듯하게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 밖으로 나온 시간이 10시 26분 정도였다. 예술 영화관 특성상 비슷한 영화들의 제한적 상영에 관한 선전들이 꽤 길었는데, 영화 자체는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겹겹이 쌓인 패스츄리처럼 새로운 맛들이 계속 발견되는 선물 상자 같았다. 일부러 아무런 기사도 읽지 않고 영화관에 간 것이므로, 영화의 두 주인공인 탕웨이와 박해일은 어떤 상황에서 멜로에 빠지는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영화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1부, 13개월이 지난 2부로 나뉜다고 한다.


처음 이 영화에서 내게 도드라진 것은 시각적인 단서들, 장면들이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형사가 직업인 박해일 분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인가, 영화에서는 생물/사람의 '눈'에 비친 사물을 형상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혹은 사물이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한. 투명하고 맑은 것이 어둡게 쌓인 진실을 파헤치려는 것처럼. 박해일의 극 중 배역인 해준은 그렇게 계속 탕웨이가 연기하는, 송 서래라는 인물을 쫓아간다.


송서래는 매력적이다. 한국어가 답답할 때 통역 어플을 켜서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녹음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쓰기도 한다. 통역이 되어 나오는 대사들은 위트 있고, 약간은 작위적이지만 '기품이 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구사할 때 (혹은 반대로 내가 일본어를 구사할 때 맞게는 죄악감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죄스러움이라고 계속 말하는 것처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서 구사한 단어가 때로는 미묘하게 상황과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그녀만의 분위기가 나면서, 용의자와 형사의 관계인 두 사람 사이에 좀체 생길 수 없는 기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남편이 죽었어요, 마침내' (자막에 마침내는 at last로 번역되었다)

'단일한 것' (영어/중국어 자막이 동시에 나오는 데 solitary라고 번역된 이 단어의 한자를 한 참 보고 있었다)


담배, 잠복, 휴대폰, 아이스크림, 펜타닐이라는 약, 유서, 볶음밥, 고양이 밥, 까마귀, 피, 살인사건의 사진, 초밥, 말러 교향곡, 암벽 등반, 노인 간병인, 반창고, 향수. 중국에서 밀입국한 여인이 결혼한 밀입국인 심사/조사를 하는 공무원 남편의 죽음. 서래는 미망인이며 자신이 밀입국한 끔찍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유일하게 한국에 남게 한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대받은 정황을 보고 그녀를 의심하는 해준은 잠복을 빌미로 그녀의 일상들을 부지런히 '눈'에 담는다. 와이프와 잠자리를 할 때에도 그녀의 모습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서래는, 용의자 심문에서 특초밥을 시켜줄 만큼 그녀에게 빠져버린, 형사로서의 자긍심을 가진 해준의 머리와 마음속을 지배했다. 아이 같기도 하고, 팜므파탈 같기도 하고, 내면에는 아픔이 있는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너무나 멋진 배우다.


'난 당신 때문에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의 대사였다.


초반에 이 영화 대사 카피를 어디선가 보며 나름 남편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외국인 미망인이, 수사를 도와준 형사에게 빠지는 내용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던 나의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는, 13개월 후인 제2부로 이어진다. 제2부를 보자, 1부에서의 내용이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 노래 '안개'가 주제곡으로 쓰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두 개의 산과 이포라는 가상의 도시 - 바다에 면해있는- 가 등장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영화가 주는 유쾌함은 허를 찌르는 각본도 있지만,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조연 배우들의 등장, 휴대폰으로 들리는 통역사의 미묘한 성별과 목소리 차이, 그리고 대담한 줌인 줌아웃/ 클로즈업, 또는 분할 씬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말고 장면의 전환 - 영화인이 아닌 것이 후회스럽다. 잘 표현할 수 없는 장면/ 단어들이다- 이 너무나 시기적절할 때, 지인을 보며 '이 장면 너무 좋아요'라고 아이처럼 외치던 나. 영화는 한정적인 공간을 장면으로 찍으면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지 않던가. 그 앵글이, 전환이, 연기와, 대사가 찰떡같이 맞아떨어져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관객에게 전달이 될 때 느끼는 1인분의 카타르시스. 그것이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극 중의 서래는 생각보다 깊이 해준을 사랑했다. 해준은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서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붕괴와 깨어짐'이라는 녹음 파일로 서래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 2분 50여 초의 고백이, 양날의 검처럼 해준의 직업에는 독이 되는 것이었겠지만, 서래에게는 살아갈 희망이 되는 행복감 아니었나 싶다. 서래가 남편 살해의 주범이라는 증거를 나중에서야 발견한 해준은 그것을 알고도,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라' 서래에게 말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하기에 형사로서 살인자를 놓아주는 방식으로 발현되었지만, 살인자는 형사를 잊지 못해 그의 마음속에 더욱더 깊이 각인되고자 또 다른 살인으로 다가오는, 피가 낭자하지만 '기품 있는' 이 영화는 범인의 시각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박쥐', 그리고 '아가씨' (나는 극장에서 배우 하정우가 마지막 즈음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고문을 당하는 걸 눈 뜨고 보지 못했다)를 떠올려보자면, 아름답고 비비드 한 색채와 미장센의 집대성이고, 개중 가장 친절하고 절절한 사랑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생각은 이 대사 한 마디로 끝났다. 킬이다. 촌철살인.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은 시작됐다'


얼마 전에 탕웨이 주연의 '색, 계'를 다시 본 터라, 뭐랄까 그녀의 중국어가 가진 억양으로 빠르게 말하는 이 대사가 통역 어플로 재생되어 나왔을 때, 해안가 도로에서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녀가 찾은 사자 바위의 모래를 파내던 그녀의 모습은 슬픔에 절절했다. 딱 한 번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나라면 서래가 불쌍할 거 같아요'라고 눈물짓던.


슬픔의 모습이 더 크게 형상화된 건, 뒤늦게 따라온 해준이 그녀가 있을 바닥 위 어딘가에서, 우키요에처럼 밀어닥치는 파도 사이를 뛰어다니며 마침내 자신이 '사랑을 고백했음'을 깨닫게 된 해준의 뒷배경이었다. '아가씨'에서도 우키요에 같은 민화들이 영화의 스토리 텔링을 대신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장면의 파도는 그 어떤 연기나 대사보다도, 엄청나게 먹먹한 해준의 마음을 대신하기에 충분했고, 1부에서 등장한 공자의 '산해경' 대사의 일부를 차용하며 자신은 산 보다 바다를 더 좋아한다던 서래와 거기에서 공통점을 찾았던 해준이 육체가 아닌 영원으로 묶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마련해준 소식지 뒷면에, 이런 포스터가 나왔구나 싶어 무릎을 쳤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씬은 마지막 장면 외에도, 두 사람이 경찰차 안에서 수갑을 나눠 차고 손을 포개는 장면과, 송광사의 사천왕문에서 시작된 둘의 데이트 장면이 존자의 '눈'으로부터 시작된 둘을 쫓는 운명의 시선 같은 느낌을 주던 것? 둘은 모두 기혼자였고,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송광사 종고루 법고 (북)의 양 끝에 서서 연결되어 있지만 이뤄질 수 없는 것 같은 연인의 모습으로 소통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귀엽게 해준의 포켓을 뒤져 립밤을 꺼내 바르고 사탕을 뒤져 먹는 그녀의 모습 또한. 제1부에서 해준은 서래가 발라주는 립밤을 거절하지만 제2부에서는 달랐다. 빛을 쏘는 그녀가 하던 행동들은 '마음을 주어 믿음직한' 남자에게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랑이 절절한 여인의 단호한 표현이었으며 사랑하기에 놓아주려는 '헤어질 결심'은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로 감독님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많은 곱씹음을 주는 영화라서 좋았다. 복잡한 일과 대인관계에 마음 다치지 말자 다짐하면서 한 주를 살아냈던 내게, 한 가지를 깨닫게 해 준 영화이기도 했다. 힘이 들면 나는 징징대고, 여전히 혼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가졌다. 난 사람을 참 좋아하면서도 누구도 믿지 못하고 온 마음 주어 사랑하지 못하는 - 이런 나의 평가를 두고 친구는 내게 욕심쟁이라고도 했었다 - , 어쩌면 사랑이란 것에 큰 집착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품은 사람을 방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내게 돌아올 마음이 없다면 냉정하게 돌아서게 된 것이 마흔 넘어 내가 알게 된 축복이라면 축복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40대 어딘가에서 만났을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영원히 안개와 바닷속에 박제되어, 수장되어 버렸으니까. 살아있다면 살아가면서 묶인 마음의 실타래를 풀 시간도 허용되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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