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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삶은 영화 11화

한산 : 용의 출현

한산대첩의 학익진이 눈앞에서 펼쳐지다

by 장서율


'한산'은 말 그대로 전쟁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은 2014년도에 천만 관객이 든 영화 '명량'을 시작으로 각각 명량 해전(1597년 -선조 30년- 9월 16일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압도적 다수의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한산도대첩 (1592년 -선조 25-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노량 해전 (정유재란 때인 1598년- 선조 31- 11월 18일부터 19일 이틀 사이에 이순신과 진린(陳璘)이 이끄는 조·명 연합함대가 노량(경상남도 남해도와 하동 사이의 해협)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에 관한 영화 3부작을 만든다 하였다. (전쟁에 관한 설명은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하였다) 영화 '명량 (2014) '의 상업적 성공에 이어, 영화 '한산 (2021)' 또한 극장 관객수가 손익분기점인 6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검색창에 이순신 전쟁 서사의 마지막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가 감독님 필모그래피에 나와있다. 교과서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으로 왜군을 대패했다’ 더라는 한 줄 내용으로 접했던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과 세트, 배우의 연기들로 버무려진 장면들의 연속으로 볼 수 있는 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권일 것이다.



앞서 썼듯이, 2014년에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명량’을 2021년에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2016년도에 KBS에서 방영된 사실에 근거한 사극 '임진왜란 1592'가, 이순신 장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의 이야기를 다루려면 일본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꼭 필요하다. 그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왜 그 시기에 조선을 침략해서, 이 땅을 넘어 명나라까지 치려고 했는지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배우의 연기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사루 (원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오다 가의 주인이 죽으라는 연기를 하라고 하면 그런 시늉을 했다던 그를, 한국인 배우가 저렇게 연기하다니 소름이 돋았다.



그 시절 일본은 100년 간, 센고쿠(전국) 시대의 난들을 겪으며, 각 성의 성주 격인 다이묘들은 서로 손을 잡고 서로의 세력들을 타파해 나갔다. 1582년 ‘혼노지의 변’에서 오다와 그의 장남이 사망한 후 오다와 손잡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몰아내고 태정대신이 된 도요토미는 무장이 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위해, 농민과 무인의 경계를 확실히 했다. 또 다이묘들의 토지를 몰수해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그들의 원성을 사자 보다 더 큰 땅인, 중국으로 진출하자는 명분을 심기 위해, 그 사이에 놓인 한반도를 놓고 다이묘들에게, 영토 정벌에 기여한 만큼 점령한 땅을 하사하겠다는 포부를 심어준다.



자신의 꿈을 위해 타인의 꿈 역시 이용한 도요토미가 보낸 수군 장수가 와키자카 (한산에서의 ‘변요한’ 배우 역) 인 셈이다. 일본에는 센고쿠 그리고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즉,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1603년 에도 막부를 설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사극들이 많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전쟁의 명분이란, 섬나라 국토내의 내전에서 벗어나 아시아에 원정하려는 진격자로서의 꿈이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 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참으로 '불의'에 가득 찬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한국인은 반드시 ‘한일전’이라면 승리하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가까운 바다에 면해 있고 육로로 가는 통로이면서, 자원도 많아서 침략 시 많은 수탈을 당한 도시 ‘통영'과 '여수'. 지금이야 종종 낭만적인 노래의 배경 혹은 가고 싶은 맛집들로 가득한 도시이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이 녹아 있는 곳이다.



각설하고, 위와 같은 이유로 ‘한산’에도 일본의 고어, 혹은 무사의 말투가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명량해전이 순차적으로는 5년 뒤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영화로 먼저 등장했다. 따라서 ‘명량’의 이순신 장군 배우 역과 상대역인 일본인 장수 와키자카를 연기한 배우가 각각 다르므로, 두 배우의 연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화 ‘한산'을 이야기하는 컬럼이니,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 배우의 눈빛 연기를 잊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명량’의 최민식 배우의 이순신은 좀 더 전쟁을 오래 겪은 무거운 느낌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면, 박해일 배우의 이순신은 조금 더 젊고 날렵하며, 주변인을 챙기고,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로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지휘관의 느낌이었다.



바로 얼마 전의 박해일 배우 주연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본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물처럼 서늘하고 냉정한 역할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박해일 배우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참 잘 어울리는데 ‘살인의 추억’이나 ‘’질투는 나의 힘’의 연기들을 떠올리면, ‘한산’의 그는 낯설다. 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서서히 독립투사로 변모해 가는 부잣집 도련님 역할을 했던 변요한 배우의 와키자카는 어떤가. 군더더기 없이 오롯이 전쟁 그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무사의 모습 그 차제였다. 그에게도 명분은 있었을 것이다. 왜군에서 조선군으로 망명한 ‘준사’역의 김성규 배우가 그런 의미로 아주 입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조선과 왜군은 서로의 해상 전술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각 진영에 스파이도 파견하는데, 조선 수군의 포로가 되어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준사는 이순신 장군에게 묻는다.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냐’ 고. 자신들의 수장은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병사들을 죽이지만, 한국군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지 않느냐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들의 대화가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은 감독의 메시지가 않을까 싶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전쟁이 조선의 명분이었고, 일본의 명분은 의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 학이 날개를 펼친 바다 위 성을 쌓은 전법인 ‘학익진’ 이 표현하는 ‘수비하며 공격하는 것’ 만이 한반도인의 운명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이후의 영화는 한산도 대첩에서의 ‘학익진’을 펼치기 위해 배 만드는 장인이 거북선을 변형할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 민초들은 어떻게 이 전쟁에서의 역할을 다하며, 이순신 장군은 또 자신의 병법을 펼쳐 나가기 위해 어떤 주변의 어려움에 부딪히는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승리하는지 잘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학익진이라는 전법은 학이 날개를 편 것처럼, 항구로 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수세를 펴면서, 동시에 공격을 하는 공세도 수세도 아닌 것이었기에. 적은 병력 때문에 수비를 하자고 했던 아군의 의견에, 이순신 장군이 내놓은, 좁고 거센 물이 흐르는 바다의 지형마저 이용한 신박한 전법으로 승리한 통영에서의 한산도 대첩. 몇 달 전 오랜만에 간 조국에서 통영 미륵산 전망대에 이 바다를 바라봤을 때는 마음 속에 분명한 감명이 없었건만, 해외에서의 생활과 영화로 선조와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났다.



해외에서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조국을 대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얼’이라는 것이 선조들이 지킨 나라에서 왔음 또한 잊지 않고, 내가 일본어를 배운 건 순수하게 그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이지만, 더 파고 들어가 역사를 들여다보니 일본어를 하는 게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고 배웠다. ‘한산’이라는 영화는 2022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부던히 이 나라에서 내가 ‘한국인’인 것을 잊지 않고 살려고 했던 것이 도리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한 역치를 낮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앞으로의 10년, 또 10년, 한국인이되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으면 하는 포부를 적으며 글을 마친다.




아래 사진은 2022년 5월 한국 방문 때 갔던 통영 미륵산 전망대서 바라본 한산도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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