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라도 혼자인 것이 아니다

#유열의음악앨범 #리버피닉스 #정지우 #정해인 #김고은 #사랑 #연애

by 장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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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호 영화 원고



*프롤로그*



우리는 혼자라도 혼자인 것이 아니다. 잊고 지낸 관계 맺음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조금이라도 들 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중심이 어디에 있든 존재할 때. 남들에게 큰 의미가 아니더라도 내 소소한 일상을 채워주고 빛내 줄 수 있는 일련의 사건이 이어질 때. 그것은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내 인생이 된다.



*영화 이야기 1*



“유열의 음악 앨범 (2019, 정지우 감독) ”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 (영문 제목 Tune in love) 이랑 포스터가 너무 낯간지러워서 사실은 말랑거리는 로맨스 영화는 피하고 싶은 우울한 나날들이었다. 더블 덱 라디오를 듣고 자란 세대라면 이해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교차점이던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 전후가 영화의 배경인데, 그때에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프로처럼 DJ 이름만으로 위안이 되는 정서가 존재했다. 아주 솔직해 적자면 나는 그 황금기를 원조 중국 사대천왕 (여명, 곽부성, 장학우, 유덕화 – 그러나 나는 ‘장국영’ 팬이었다) 이 살던 홍콩 땅에서 보냈으나, 늘 한국에서 방송되었을 그 라디오 방송이 그리워서 녹음테이프로 공수해 듣고는 했다. 더 정확히는, 함께 자란 또래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하나의 축으로 같이 움직이고, 감성을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지만. 지금도 그때의 노래들을 들을라치면, 가슴이 콩닥대고 설레는 무한한 힘을, 느낀다. 음악과, 지난 세월을 추억하고자 하는 현세대들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고 느끼며 영화를 봤다.



정지우 감독은 실제 있었던 유열의 라디오 프로그램 (1994년 10월 1일~2007년 4월 15일)의 시작점에 맞춰 현우와 미수를 만나게 한다. 그 시절의 빵집, 그 시절의 라디오, 그 시절의 학교, 그 시절의 배경, 거기에 예쁜 빵집 언니 미수. 다짜고짜 들어와 흰 우유 대신 두유를 찾는 (두부 대신) 현우는 큰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오해를 안고 소년원을 복역했다. 아주 살짝 사족이지만 1994년 즈음이라면, 소년원 보호감찰 출소라는 딱지를 달고 사회에서 일원으로 인정받기는 참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



영화 속 그즈음에 나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재수 없지만, 입학생 600명 중에 입학 선 과제 독후감 장원을 받아서, 선후배 사이에 내 이름은 약간 유명 인사였다. 사실 멀리서 보면 대학생 체격에, 매일 마이마이 (워크맨)을 귀에 꽂고 청청 (하의 청바지 상의 청재킷) 차림으로 다녔기 때문에, 소위 날라리(?) 선배들의 끊임없는 부름을 받고, 매일매일 삐삐 번호를 따였다. 밤마다 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며 잘 알지도 못하는 농구에 대해 열심히도 토론했다.



그때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건 약간의 일탈로 가장한, 기껏해야 나이 한두 살 많은 친구들의 외로움. 가정환경에서 오는, 혹은 한 부모 가정에서 오는 외로움 그거 하나였다. 우린 다 어린아이들이었고, 조금 더 세상에 찌들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똑같이 마음이 하얀 도화지 같았었다. 그중에 DH 가 있었다. 어쩌다가 인사하게 되고 친하게 지내고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아이의 매섭고도 여린 눈동자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손도 한 번 안 잡아봤지만, 내가 해외로 전학 간 다음에도 3년 동안이나 펜팔을 이어 나갔다. 학교에서 내가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걸 담임 선생님은 못마땅해했다. 그 아이가 소년원 보호감찰을 다녀온 것을 아느냐며,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때의 나는 사실 교우관계에 아무런 호불호가 없는 Tabula Lasa (백지. 감각적 경험을 하기 전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 같은 상태여서, 주로 음악에 대한 감성적인 코드가 맞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었는데, DH의 경험도 약간은 영화 속 현우 같은 사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DH는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해소하는 글을 교내 잡지에 실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내 뒤에서 수군대던 친구들이 홍콩까지 편지를 보내서 ‘오해해서 미안했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제는 안다. 그때의 담임 선생님도, 그 아이도, 그리고 언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DH의 어머니도, 나름 각각의 최선으로 내게 인생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진 건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그 아이의 진심 어린 마음뿐이었는데. 내 마음속에 외로움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음에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마치 스물에도, 서른에도,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늘 고민이 있고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는 것처럼, 그때는 영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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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2*



처음부터 영화 속 현우와 미수는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는 ‘외로운 섬’ 같은 아이들로 만났다. 미수에게는 부모님이 물려준 빵집을 같이 운영하는 친언니 같은 ‘파티시에’ 은자가 있었지만, 어쩌면 허구 속 그 설정 만으로, 만남 만으로 두 아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1994년 10월 1일의 첫 만남 이후 현우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중,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객과 싸움이 붙어 소년원 보호감찰에 걸리고 만다. 그렇게 다시 3년 뒤. 1997년 빵집이 있던 동네를 지나던 현우는 우연히 미수와 재회한다. 미수는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이라는 직장 입사를, 현우는 내일 군대 입대를 앞두고 둘은 미수의 자취방에서 오롯이 손만 잡고 하룻밤을 보낸다.



아르바이트 가불까지 하고 사라진 현우가 갑자기 나타나서 검정고시 합격했다고 하는 것도, 미수가 내일부터 직장에 나간다고 하는 것도 참 급작스럽지만, 이 두 청춘 배우의 풋풋함은 정말 현우랑 미수는 해맑게 서로만 바라보는구나 믿게 만든다. 그게 허구인 영화의 힘이자, 2012년 미수 역의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영화 ‘은교’로 데뷔시킨 감독의 힘일까? 그저 예뻤다. 새벽녘 골목에서의 둘의 포옹도, 입만 맞대는 키스도, 참 풋풋한 그림이었다. 미수는 헤어지며 현우에게 ‘천리안’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소통하자고 한다. 그런데 암호를 적어주는 걸 잊어버려서 둘은 다시 한참을 엇갈리게 된다.



군대에서 돌아온 현우는 미수가 집을 이사한 것을 알고, 그녀가 쓰던 방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방문 비번으로 쓰인 암호를 알게 되고, 그렇게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아내 미수의 지난 이메일들을 읽게 된다. 그리고 재회하려 하는 두 사람 앞에는 또 1994년에 있었던 재해에 가까운 사건 같은 우연이 겹친다. 다시 또 시간은 흘러 영화의 배경은 2005년이다. 미수의 아이러니는 이랬다. 미수와 그녀의 단짝 현수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한 건물에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아주 작위적으로’ 조교가 말한다. “IMF로 사정이 힘들어서, 대기업 오라는 데가 없는데, 우리 학교 국문과 정도면 두 군데 정도 자리가 있어. 하나는 방송국 라디오 작가 일인데 두 달 단기이고, 하나는 공장에서 사보 만드는 일인데 안정적이야.”



그리고 미수는 후자를 택한다. 그녀는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먼 길을 돌아가려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영화 속 미수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안정적’인 선택이었다. 빵집을 같이 했던 은자는 남편을 만나 작은 식당을 냈고, 미수는 혼자서 생계를 꾸리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어야만 했던 것. 현우가 알려준 ‘유열의 음악 앨범’을 열심히 듣던 그녀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현수는 정식 라디오 작가가 되어 그 방송국에서 일하게 된다. 20대에 치열하게 고민한 것들이, 30대가 되면 또 시야가 달라지듯이, 미수는 어느새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교정을 마친다.



*나의 이야기 2*



나는 이 대목에서 20대에 막 취업을 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취직한 지 얼마 안 됐을 그때, 나에게도 미수에게 마치 라디오 작가 같았을 가슴 설레는 일을 할 기회가, 지인을 통해 한 영화 배급사에서 찾아왔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과감히 두 달 다닌 게 전부인 대기업을 관두고 새로운 걸 찾아갔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랐고, 내가 나름 얼마나 영화를 좋아했는지 몰랐고, 어떻게 담당자에게 간절함을 보여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이후로 늘 하는 일마다 나름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갈증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지금 여기서 내가 찾아서 하고 있는 일도, 수많은 우연과 도전이 빚어낸 필연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생업은 생업일 뿐, 지금도 나름 영화라는 매개체 언저리에서 글을 끄적이는 취미를 가지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그리고 2005년, 영화 속 그들은 다시 재회한다. 아주 많은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듯이.



다시 만난 현우와 미수는 서로에게 쌓인 그리움으로, 이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물론, 현우는 소년원에 가게 된 동기가 된 친구들과의 관계와, 자신들의 잘못으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학우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수에게 말 못 할 약속들을 만들게 된다. 아주 많이 서로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깊이 이해하려는 탓에, 결국 서로에게 말 못 하는 것들이 생겨 싸우고 이별하게 된다. 매체화, 그러니까 글이나 영상화된 그 어떤 사랑 이야기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영화 속 커플의 이야기니까 큰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가 미수를 잡기 위해 그녀를 쫓아서 언덕을 달리는 장면은 많이 가슴이 아렸다. 진심을 다해서 그녀를 잡으려고 – 마치 미수가 자기 삶의 유일한 빛인 것처럼- 구원을 바라는 현우는 마침내 돌아본 그녀에게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마치 모든 남자가 여자에게 가장 진심으로 말하는 ‘사랑해’가 통할 것이라는 클리셰(Cliché) 같지만, 미수는 현우에게 그만 달리라면서, 자신에게 관심 있어하는 출판사 사장의 차를 타고 울면서 떠난다. 그녀는 갓 ‘네가 말을 해야 알지, 말을 안 하는 데 어떻게 너의 속마음을 아냐’며 둘의 집을 뛰쳐나온 뒤였다.



잠깐 생각을 해봤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세상의 모든 커플이 아마 이런 주제로 싸우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에서 너만은 나를 이해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일종의 암묵적인 압력을 가하면서. 아니지. 틀렸지 큰 오산이지. ‘세상에서 나만 있으면, 네가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가 맞는 질문일 것 같다. 우리 세대가 지금 드라마나 영화로 향유하는 레트로(복고) 감성은 아주 살짝 ‘좋은 게 좋은 거’ ‘옆에서 대가 없이 잘해 주는 게 좋은 거’라는 달달한 설탕 발림 코팅을 하고 있지만, 거기엔 절대로 간과하면 안 되는 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충고는 듣고, 힘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라는 거다. 제삼자가 보면 아주 간단한 어긋남의 이유를 모를 현우와 미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서, 서로에게 간다. 자신들만의 신호로, 서로가 서로를 듣는 주파수는 ‘유열의 음악 앨범’이라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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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지금 이 순간도, 다시 돌아가지 못할 특수한 순간이라면 순간이다.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지도 못하는 이 순간이, 그러나 지금 이 시간들도 이 시간만이 가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되고, 변화의 계기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정신없이 들이마셔서 체한 것 같은 지난 세월의 묵은 때를 벗겨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인연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볼 때, 대개의 사람들이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기억하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인생에서의 소중한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헤어짐을 맞게 되면, 안타까움과 애도를 거쳐 화가 나다가도, 다시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하나의 순환 주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이건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은 일종의 ‘인지부조화’, 그러니까 인간이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약간의 마법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날로그 감성을 추억하는 일련의 매체들도 모두, 각박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을 향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이제는 나도 그 매체를 양산해내는 모든 창작자들과 궤를 같이 하는 나이가 된 것이겠지라는 위안을 삼아 본다. 열심히 내 할 일과 좋아하는 일 하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과 더불어 살다 보면, 나도 내 인생에 한 방점은 찍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점들이 모여 스티브 잡스가 언젠가 이야기한 ‘dotted line’ 이 완성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지나간 반가운 인연을 예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과거 어느 한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사라진 그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노래는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빨리 안전 조치가 끝나서 한국에 가고 싶다. 오래된 내 방 한편 모아둔 먼지 그득 쌓였을 그 카세트테이프들을 보고 싶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하드 웨어인 더블 덱 라디오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소프트웨어인 그 테이프와 시디들을 버릴 수 없는 걸 보면 (하물며 나는 내가 최초로 좋아한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 (River Phoenix, 1970- 1993)의 영화 VHS를 지금도 소장 중이다) 나도 꽤나 아날로그 감성 작렬인 사람이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 세월을 추억할 때, 진정 나일 수 있음에 감사할 때, 그렇게 지금을 살아갈 힘을 얻기에, 아마도 그래서 지금도 버릴 수 없는 내 추억의 조각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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