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영혼끼리 차 한 잔11

- 화려한 히비스커스꽃차 -

by tea웨이

채석장에 내리쬐는 무자비한 태양볕 아래서 화려한 어린시절과 인공적인 교육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 왕이 주는 메시지였다.

이집트 밀크티 샤이



"산다는 것이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성취이기도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품었던 환상 하나씩 사라지는 상실이기도 하다 ."


달콤한 첫 키스의 상상은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

CF이미지 같은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은 월급통장이 ,

자식에 대한 환상은 아들 성적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현실은 없었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상상이란 아직 써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내 욕망 최대 레벨의 환타지이므로 .

내게 첫아이인 아들은 성질 급하게 출산예정일보다 한달 반 먼저 태어나 미숙아로 인큐베이터에서 생사를 헤매면서 내 혼을 빼놓았다. 그렇게 건강한 아이 출산이라는 내 상상을 깨더니 커갈수록 환상을 깨는 건 물론 나와는 늘 불협화음이었다.


그 불협화음은 사춘기 시절 절정을 이루어 게임중독으로 치닫게 되었다. 밤에 자다가도 방에 있나 수시로 확인해야 했고 오밤중에 아들 찾으러 동네 pc방 순례를 했던 적도 여러 번 이었다. 힘든 나날들이었다.


아들 문제는 아들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었으니까. 같이 아들 찾으러 나선 남편은 아들 문제를 자유롭게 방목하는 내 양육태도 때문이라 맹렬히 비난했고 나는 남편의 폭력적인 훈육 태도 때문이라 마구 퍼부어댔다.

집은 살벌한 전쟁터가 되어갔고 그 사이에 아들은 죄책감까지 더해 말을 잃어갔고 중독증은 더 심해갔다




.

그때 쯤 이었다. 황량한 이집트 사막을 터벅터벅 심란하게 걷다가 , 람세스 석상 근처에서 타임 슬립한 두 남자를 만난 것이.


한 분은 야메니라는 일중독자 행정관료 , 한 분은 세타우라는 뱀과 소통하는 자유인.


이집트 최고 번성기 시절의 왕인 람세스 2세의 숨은 조력자이며 친한 친구 4인방 중에서도 람세스가 유독 아꼈던 두 남자.


부스스한 머리, 주름 잡히고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문자와 문자 이면의 진실 캐는 것을 좋아하여 문서 더미에 묻혀서 생의 기쁨도 즐거움도 거절하며 사는 야메니.



반대로 글에 조직에 갇혀 사는 삶이 갑갑해서 사막, 그 날마다 위태로운 공간에서 뱀과 같이 동거하며 보이지 않는 신비의 뱀세계를 탐구하는 사막의 야인 세타우.


람세스 ....고대 이집트의 최전성기 ,영광의 시대를 만들었던 파라오 람세스 2세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로 이집트 연구가 크리스티앙 자크라는 프랑스 작가 작품 이야기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를 무려 67년 동안 다스렸던 왕 람세스 . 아주 어린 나이부터 왕이 될 만한 재목으로 뽑혀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점점 성장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집트 왕을 초월하여 신까지 되려고 했던 과정을 쓴 이야기로서 영웅들의 통과의례 성장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관점이 달랐다.

통과의례의 궁극적인 목적이 대부분은 선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 반대편 악을 물리치고 자신의 좁은 자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자아로 확장되어 지도자가 되는 이야기인데 반해 람세스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 이다.


첫 장부터 아버지 왕은 어린 아들 람세스에게 생명을 위협하고 두렵게 하는 건장한 황소를 대면하고 싸우게 한다. 죽음 앞에 안락과 관습 귀족의 삶은 껍질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


람세스는 이후 ,석수장이, 전쟁터 ...귀족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가서 실세상을 실제로 경험한다. 그런 람세스에게 스승 사리는 공부에 정진하라고 조언을 한다.그때


자기 존재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가 ?


스승에게 오히려 반문하는 람세스 .


히비스커스꽃


고만 ..하라구 !!!

나도 걱정된다구 ?.

엄마가 아무려면 나보다 더 하겠냐구 ?


침묵으로 저항하던 아들의 상상치 못한 반역의 언어였다.

나는 온갖 폭언으로 아들과 전투를 벌렸고 참다못한 아들은 집을 또 나갔다.

그때 아들 책상 위에서 발견한 람세스 1권과 밑줄. 낙서


야매니 ...졸라 짜증나게 나랑 같네 ,,,


소름 끼쳤다. 아들이 야매니 캐릭터라니 !!!! 그리고 순간 난 알아챘다.


내가 그동안 아들을 오해했음을...

내가 생각했던 아들의 정체성은 철저히 내 거품 섞인 욕망이 만든 상상에만 존재하는 아들이었음을 .

내 상상의 아들이 내 현실의 아들의 정체성을 오해하게 하여 나도 괴롭고 현실의 아들도 괴롭혔음을.

내 애정이 아들에게는 부담이고 폭력이었음을...


나는 느리고 보수적이고 야망도 없고 재미없고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도, 여행도 별로인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자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고 따뜻하고 신뢰감이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많고 한가지 좋아하는 일은 집중력이 뛰어난 또 다른 이면도 보였다.


자유인, 젊은 영혼을 가진 세타우같은 엄마와

야매니같은 보수적인 늙은 영감같은 영혼을 가진 아들 ..의 조합이 우리였다.


지금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은 한약에 푹 빠져 내가 젤 싫어하는 보수적인 아저씨 필을 보이기 시작하며 성실하게 밥벌이 하고 있다. 원가 운운하며 내 찻집 경영의 비현실성에 대해 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내 이상과 꿈을 깨면서..


아들은 사는 동안 계속 내 상상력를 깨며 상실감이라는 감정을 줄 것이다. 아들과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내 첫 경험이므로. 다만 이 이집트 남자들을 통해서


문제는 아들이 아닌 바로 내 거품 있는 상상력이 문제라는 것.

상실감이 인생의 속성이라는 것

사람은 자기 본성으로 흘러가야 행복하다는 것.

본성을 찾게 돕는 것이 부모 일이라는 것


이런 진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


아들은 아들의 본성의 길로 나는 내 본성의 길로 흘러갈 뿐 ......그래도 끈질기게 상상력을 놓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므로


야매니님, 세타우님 ...

작가는 람세스왕과 연애하기를 바랬으나 저는 람세스왕의 뒷 배경으로 숨은 두 분을 사랑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비슷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에 안도감과 자신감을 얻게 한 야매니님 .


조직 시스템 안에서는 본질을 볼 수 없습니다. 그 시스템에 가려서 ...궁궐과 도시를 떠나 사막에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유롭게 보는 세타우님.

명랑이라는 영화에서 이순신장군에게 결정적인 승리의 열쇠를 쥐게 해 주신 분이 바로 당신처럼 자연으로 돌아가 해류의 흐름에 대한 비밀을 깨달은 숨은 은자 어르신이었습니다.

제가 호숫가 자연으로 돌아온 것도 내 본성도 당신과 닮았다는 걸 일찍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이스탄불, 동양과 서양, 과거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 한눈에 해협이 다 내려다 보이는 유명한 콘얄리 그 카페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래동안 제 마음, 깊은 지하 서재에 갇혀있었던 두 분, 자유롭게 해방시켜드리기 좋은 곳.

그 카페에서도 상상과 현실의 오해로 얽힌 인연들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차 한 잔 우려드립니다. 이집트를 상징하는 세 가지 차 ,

이집트 밀크티인 샤이, 녹차에 박하를 넣은 민트티. 화려한 꽃차 히비스커스차....

어느 것이 좋을지...

.마지막이니 화려한 꽃차 한 잔 우려드리겠습니다.


찻잔은 터키 여행시 바자르에서 산 유리잔. 이 잔에 꽃가루가 든 망사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흑자주색으로 물색이 변하면서 흑자주색 투명 차도르를 걸친 여자가 살짝 나타났다 사라진듯한 향이 지나가고 ,


잠시 숨을 돌리고 한 모금 마시면 시고 떫은 맛. 기대했던 달콤한 맛이 안나서 잠시 실망하는 사이 아주 약간의 미향이 번지면서 몸을 조금 덥혀주고 사라지는 차.

집착없이 잠시 자신의 수다를 풀고 남의 수다도 들어주고 사라지는 차 .........그런 차 한 잔 올리면서


굿바이 야메니님 ! 세타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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