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금욕의 빗장을 풀어 준
일본 청춘

-산타마리아 데 루르데스 세미다크 허니커피 -

by tea웨이

금욕의 마력에 빠지다 .



청춘 시절 잠시 출가해서 스님들처럼 살아본 적이 있다. 대학불교서클 수련회였었는데

첫 내소사 수련이 준 충격적인 반전에 내장사, 금산사, 선운사 , 멀리 마곡사까지 방학만 되면 절간으로 숨어 들었다.


반전...이었다.


불쑥 일어나는 식욕을 냉큼 부엌으로 들어가 채울 수 있는 식사와는 달리 , 같이 공양하시는 분들 발우에 밥과 반찬이 채워질 때 까지 기다려주고 ,같은 자리에서 깔끔한 설거지 까지 하는 발우공양은 내 식욕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잡다한 물건이 사라진 스님들 공간은 세속의 잡념을 사라지게 했으며 , 단순한 일과로 개운해진 머리 속은 집중력과 사물과 사람에 대한 감성을 아주 예리하고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반전의 절정은 마지막 날 내 육체와 사투를 벌였던 철야정진. 끊임없이 절을 하다가 잠시 법당을 걷고 또 절을 하고 걷고 그러다 선배들이 쑤어온 죽을 먹고 또 절하고 .........


“ 육신이 흐느적할수록 내 정신은 은화처럼 투명하오 ”


시인 이상의 ‘날개’ 라는 소설의 한 구절은 맞는 말이었다.


밤새 108배 ...1080배....10800배....절을 하면서 꼬박 새웠다.


다음 날 세속으로 귀환하는데 세상이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벼워진 몸,처음으로 만나는 것 같은 산,나무,길... 초라하게 느껴졌던 변산 해수욕장 앞바다는 외국 리조트에 온 것처럼 황홀했고, 그때 선배가 사준 브라보콘의 맛. 생애 처음의 단맛처럼 느껴지던 달콤함, 가끔가다 씹히는 달콤 쌉싸름한 초코맛,콘 가장자리 과자가 바스락 부서질 때 소리..섬세하게 자세하게 하나하나 다 느껴졌다.


내 안의 육체적 욕망을 물리치는 것은 참으로 큰 고통이었으나 그 고통을 이긴 후에 오는

기쁨은 너무 크구나 !!


이후로 내 안의 욕망은 늘 내가 다스려야 할 적이었다. 욕망하고 소비하는 것이 부끄럽고 천박하다는 생각,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에 ,청춘시절 내내 소식과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교사생활 하면서 티 내는 게 싫어 채식주의를 조금씩 버리기는 했지만. 결혼 후에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책과 음반 CD 외에는 가구며 집안 집기가 초라하고 삭막했다.사치라 생각했다.



심각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일본 고베출신 와다나베라는 한 청춘이 내게 이렇게 속삭이면서 다가왔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끼 소설의 주인공 이었다. 현실에서 37세의 주인공 ‘나’ 는 독일 공항에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 )가 흘러나오자 18년 전 17세에서 19세 전후의 사춘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노래는 죽은 애인이 좋아했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청춘 시절로 돌아간다. 청춘 시절의 나는 자신의 성적 욕망에 거침없고 충실하고 쿨하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성적 행위마저 느끼하거나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담담하다. 심각해진다는 것이 진실에 꼭 가깝지는 않다는 생각이기에 미도리, 나오코라는 전혀 성향과 매력이 다른 두 여자와 각기 다른 사랑을 죄책감 없이 나눈다. 그 뿐인가. 레이코라는 연상의 여자와도 사랑을 나눈다. 그 연애와 실연 나오코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쓴 그저 그런 연애소설처럼 보였다.


그러나 묘하게 등장 인물들의 사는 태도가 신선한 매력이 있었다.이전의 진지하고 깊고 무거운 자세가 아니라 쿨하고 스마트하고 가볍고 유쾌하였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전염시켰다. 이 청춘과 쿨하고 유쾌한 연애를 했다.




내가 해야할 일은 하나 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은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포장되거나 왜곡되다가 방향을 잃고 폭발하여 자신과 남을 파괴한다.그냥 정직하게 욕망을 다 풀어놓고 갈 길로 가라고 하면 속도와 방향을 응시할 감정적 여유가 생겨 상처도 적어지고 파괴는 없다.


쿨하다는 것은 이 여유,


내 안의 욕망을 억압하거나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인정하고 저 위 사진 속 개처럼 물끄러미 응시하는 자세.

집착하고 소유 하지 않으려는 정신적 내공의 걸름망이 쿨이다.


욕망과 사치사이에 쿨이라는 단어가 경계선을 그어서 욕망을 소비하는 것에 늘 따라다니던 죄책감을 지워냈다. 인생이 가벼워지면서 유쾌해 졌다.


무채색과 삭막한 일상에 음악이, 그림이, 파스텔풍의 색이 입혀졌다.


쿨한 일본 청춘을 이끌고 시간만 나면 서울행 고속버스 타고 순례를 했다. 대학로 ‘지하철 1호선’공연을 첫 발걸음으로. 안치환,강산에,윤도현.김광석, 언니네 이발관, 블랙홀, 크라잉넛, 무세중, 최소리,... 홍대앞 블루버드 까지 진출한 적이 있었으며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인디 뮤지션들의음반, 미술관 전시 팜플렛 ,포스터가 거실 가득 쌓여 갔다.


그리고 어느날 내 공간에 ‘노르웨이 숲’ 피아노 연주 소리와 함께 존 레논의 부인 오노요꼬를 닮은 여자가 들어왔다. 새로 옮긴 항구 도시 학교 였었는데 피아노 전공 음악 선생님이었다.


첫눈에 우리 둘은 서로 반했다. 히피 영혼들. 나는 철저히 숨겼고 그 여자는 다 오픈했을 뿐.그 여자의 스타일리쉬한 옷 차림은 어느 자리에서든 존재감이 확실했고 뉴욕 카페같은 거실, 호텔같은 침실,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능은 탁월했으며 젊은 총각과 두 번째 결혼을 한 용기있는 여자였다. 나이든 신부 친구들과 젊은 총각 친구들과의 상식을 깬 뒷풀이 행사는 지금 생각해도 특별한 추억이다.


한동안 묶고 다니던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자르고 검은 뿔테 안경을 써서 나나무스끄리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내 외모와 내 찻집 공간 인테리어 감각도 모두 이 여자의 감각이 베이스캠프이고 난 짝퉁 카피했을 뿐이다.

이 여자와의 연결고리가 바로 이 책이었다. 책 덕분에 단번에 소통했으므로.


소설 속의 청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나가사와라는 선배와 급 친해지고 무장해제한 것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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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마주한 내 연인 일본인 청춘...도 늙었다.

여전히 청바지가 어울리고 쿨하게 늙어가는 그가 편해서 좋다. 이제 그도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의 고향, 도시 전체가 태평양으로 열려있는 고베로 돌려보낸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주고 싶은 차는 커피다.

커피에 미친 젊은이의 꿈과 열정이 담긴 홍대앞 리**에서 배송받은 니카라과산

이름도 무지하게 긴

산타마리아 데 루르데스 세미다크 허니라는 커피 원두다.


커피 원두도 세상의 카페 만큼이나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본래 생생하게 느껴지던 신맛,쓴맛,단맛,....을 평준화 시킨 클래식한 커피 원두가 있는 가하면


신맛부터 시작하여 그 세세한 맛 하나하나를 다 살린 원두가 있다.


이 원두는 후자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는 젊은 영혼들이 세상을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듯이 신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바닐라, 블랙베리, 귤 ,바나나, 포도 온갖 과일 맛에 마지막 다크초콜릿의 달콤함으로 마무리하는 커피 한 잔 드립으로 내려서 ....


나이 들어서도 무디어지지 말고 생생하게 생을 느끼기를 .......


굿바이 일본 청춘 와타나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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