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찻잔 들고 이막 인생으로 -
“ 차 한 잔 마실래요? ”는
“ 밥 한 번 먹읍시다.”와는 다른 차원이다.
밥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을 살리는 일을 하고
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마음을 소통하는 일을 하며
밥은 규칙적이어서 일상성 ,일관성,안정성 이라는 밥의 길이 있고
차는 일상성 ,일관성을 넘어 다소 충동적이고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의식 세계인 차의 길이 있다.
밥의 길은 먹고 사는 일이라서 속내를 숨기고 가면을 써야할 때가 많은데
차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이 가면을 벗고 숨겨진 내 안의 무의식의 세계에 눈을 떠서 진짜 내 얼굴을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사람과 상징 ’이라는 책에서
칼 구스타프 융은 이 시기를 , 가면 (페르소나 )을 벗는 시간, 생의 반환점으로 인생의 정오시간이라 했다
. 생의 전반기, 오전 타임에는 , 보이는 외향적인 정신세계에서 살다가
생의 후반기 , 오후타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향적 깊은 무의식의 세계가 등장하여 이전의 시간들을 거부하고 진짜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시간. 중년의 위기라고도 칭하는 시간이라 말했다.
나는 , 40대 초반 어느날, 길의 끝 낭떠러지에 서서 이 위기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교사 생활이 무척 갑갑하게 느껴지고 마치
Smells like teen sprit를 불러야할 너바나가
송대관의 네박자를 부르면서 지루박을 추며 밀고 당기는 느낌이랄까 .
본래 공공기관에서 갑갑한 정장입고 일하는 건 내 꿈이 아니었고.
언젠가는...언젠가는 ....꿈꾸는 일을 하겠다 .다짐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
이번 생에서 하고 싶다면 이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
그 낭떠러지 에 서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나온 교사생활을 버리고 한 발 내밀어 보다가 ,
이 나이에 어떻게 새 인생의 시작을 ...공포로 겁이 나서 되돌아갔다
. 그러다 못 참고 아니다 싶어 되돌아오기. 다시 가기.
몇 번이나 번복하다 눈 딱 감고 발 내밀고 낭떠러지로 추락 !!!!
사십대 초반 나이에 덜컥 내 정체성을 찾는 모험의 길에 나섰다.
겉으로는 유유자적한 척 포장을 했지만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그 때 숱이 자꾸 빠지던 앞머리...지금도 그 부분은 듬성듬성 하다.
그때 내 정체성, 가면 속의 진짜 얼굴을 찾기 위해
도움을 주었던 책들이
칼 구스타프 융의 <사람과 상징>과 ,이석영 의 <사주첩경> 이다.
이 책들은 정확하게 증명되고 논리적인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꿈,무의식,모호 ,애매 ,점술. 이야기로 현실에서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 학문으로 홀대받는 책이었으나
자기 정체성 찾으려는 사람들은 생의
한 시기에 한번 쯤은 필독해야 할 책이다 .
<사람과 상징>은 융의 제자들이 융의 생각을
한 주제씩 맡아서 제작한 책으로 날마다 우리가
꾸는 꿈이 우리 안에 있으되 우리도 모르는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하는 단서가 되고
그래서 그 꿈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언가를 밝히는 것이 개인의 자아발견에 절대적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
그러니까 내 정체성 찾기 욕망은 생의 과정상 있어야 할 ,당연한 일이었음을....
그리고 내 진짜 모습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비밀 사인인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상징에 대해 밝히는 것이 바로 내 정체성 찾기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
내 태몽이 해 떠오르는 데 새가 날라오르는 것이었는데 .
새가 상징하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
.어디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을 암시해 준다.
<사주첩경>은 자강 이석영님이 어렵고 복잡했던
명리학을 우리 환경에 맞게 토착화 시키신 국한문혼용체의 6권의 책으로
명리학의 ‘동의보감’이라 칭할만 하다.
한학에 대한 기본이 부족했던 나는 이 지역의 유명한
명리학선생님께 배움을 청하여 사주첩경을 6개월 정도 공부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누구인가 궁금해서....
사주팔자로 보면
내 일주는 己亥 (기해)로 땅과 물이나 겨울철 얼어붙은 땅이다.
불로 물을 녹여야 생기가 살아나니 녹일 불이 가장 필요할 터 ...
사주 중 년주의 丙 火가 내 주된 기반이고 火運이 내게 좋은 운이다.
식신격으로서 내 안에 창의적인 무언가를 표출해서
소통하는 일을 해야하고 사주에 목
(木 )이 없으니 행동력보다는 상상력이 주된 활동이겠고
고로 창의성 보다 도덕적이고 남의 모범이 되어야하는 교사는 내게 안 맞았다.
무엇보다 내 사주에 관 (官)이 없었다.
흔히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관운. 큰 조직과 관청에서 근무하는 것이 내겐 답답한 일이고
해서 남들은 안정적 직업이라 말하는 교사를 못 견디고 나와야 했다.
재물운에 해당하는 것이 내게는 물이었다.
스님 들의 선방이 늘 로망이었고
그래서 찻집에 대한 꿈을 키웠는 지도 몰랐다.
결론은 내 가면은 국어교사였고 내 무의식의 나는 남에게 도덕적인
훈계를 가장 싫어하고 내 속도 나 만의 색깔대로 조용히 살면서
내 글로 소통하고 싶은 작가이며
내 로망인 스님들의 선방 같은 차실 만들어 차 한 잔 우려주고 싶은 여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자 나는 내 남은 기운을 몰아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미지와 글과 음악이 통합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허름한 월세방을 얻어 날마다 출근하여 죽으라고 써서
어느 잡지사에 첫 응모를 했고 ,결과는 최종심에서 탈락.
그래도 최종심까지 통과했다는데 용기를 얻어 아예
드라마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교육원에 등록하여 중년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향했다
.
창작반까지 탈락없이 올라가서 교육원에서 무상으로 작가공부
시켜주었고 공동 창작집까지 만들어 방송국에 배포해 주었으나
방영하겠다는 pd님 없어 포기했다.
3년 여를 골방에서 글 쓰고 서울로 수업 들으러 가고 정말 열심히 했으나 ,
끝까지 끈질기게 인물을 몰아 부쳐야 하는 독함과 끈질김이 2% 부족함을
나 스스로 인정하고 물러났다.
창작반 식구들과 쫑파티하고 심야 고속버스 타고 내려오면서
내내 소리없이 훌쩍이며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도전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비로소 작가로서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호숫가에 차실
(茶室)을 열 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던
곳으로 부터는 운명이 무응답이더니 조용하 게 숨어지내려고
납작 엎드린 차실은 눈만 뜨면 사람이 늘어
나름 이 지역의 유명한 다실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다.
또 반전은
차실 공간을 인연으로 숨은 스승님을 만났다.
이분께 차 배우러 먼 00까지 다녔었는데 이분의 절제하고 절제해서
최소한의 차도구만으로도 펼치는 아름다운 행다법을 보면서
다시 글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야 간절히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토록 기다리던 이미지와 최소한의 심플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소통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그동안 내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내게 맞는 소통기구라는 생각에 흥분도 된다
찻잔들고 다시 새출발을 하는 이 길은 인생 삼막인가 ....
이막 리모델링인가 혼자 실없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