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가 예상됩니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시고..."
밤새 그칠 줄 모르는 소나기, 미친 바람, 이따금 등장하는 천둥, 번개에 쉬지 않고 찍히는
긴급 재난 문자다. 공포와 불안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 쿵...
집 옆 산책로 길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소나무 쓰러지는 소리에 완전히 잠이 깨었다.
티브이에서는 밤새 물난리로 세상을 떠나신 분들 뉴스가 뜬다. 가슴이 철렁하고 왠지 불안했다.
예감은 맞았다.부고를 받았다.
유 선생님의 부고였다. 같은 병을 앓고 계셔서 동병상련하는 중이었고 사모님은 찻집 초창기부터 나와 같이 일을 하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이신 분이다. 그런데 진행성 병이라 아직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뜰 시기가 아닌데.. 지병이 아닌 급성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한다.
베이비부머라 불리우는 세대인 나와 친구들 . 이제 부모가 아닌 우리 부고장이 날아들 것이며
장례식장의 영정사진도 우리 얼굴이 주인공이 되어 갈 것 이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않다
k국 1956년 생
태어나자 마자 소아마비, 호환마마,구순열언청이, ...
...예방접종의 등장으로 병이 사라지기 직전 끝물로 많은 어린생명이 구들방 차디찬
윗목 강보에 쌓여 버려지는 시기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나도 내 인생 첫 자객의 방문을 받았다
백일 잔치에 축하 손님으로 위장하고 온 자객이 나를 공격햇다.
잠자는 공주 동화 스토리에서는 초대받지 못한 서운함이
앙심으로 변해 공주님을
바늘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해코지를 했다. 이유가 분명히 있다.
왜 하필 난데?
이 자객은 개인적인 서운함, 당하는 사람의 고통에
사적으로 공감 없이 담담하게 자객은 자객의 도리를 할 뿐이다.
운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이제 막 생(生) 쪽으로 첫걸음을 뗀 순진 무구한 얼굴
자객도 길고 가는 눈으로 순진무구하게 스윽 훑는다.
방긋방긋 웃던 갓난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처한 위험을
알아 몸을 움츠린다. 칼도 싸울 힘도 없는 몸을 간파하고 자객은
내 뺨에 키스하며 급소를 누른다.
얼굴에 열꽃이 화악 피어오르고 몸이 금방
불덩어리가 된다. 몸은 뜨거운데 마음은 얼음이다
공포, 부들부들 떨리며
그래도 살려고 끈질기게 꿈틀거리며
몸은 식히고 마음은 풀어낸다.
어린 내게 유일하게 남은 건 젖 먹는 힘뿐.
버티다 전생의 검법 기억까지 더듬어
뽑히지 않으려는 잡초처럼 생의 땅을
붙들었으나 아직 튼튼한 어른 몸이 실리지 않는 검법은
자객에게는 너무도 쉬운 상대.
견디다 못해 땅을 붙들던 손을 막 놓으려는 순간
새끼 까치들이 머무는 둥지에 입맛 다시며
굼실굼실 들어가는 까치독사를 본
엄마 까치의 짧고 급박한 목소리
깍깍깍깍....
눈이 번쩍 떠졌다.
어린아이들의 무기인 울음, 울음을
백설공주가 입에서 독사과 뱉어내듯이
온몸으로 토해냈다.
사람들이 불 나간 차디찬 윗목에 버렸던
나를 다시 따뜻한 아랫목에 눕혔다
무사히 목숨은 건졌으나 자객은 곧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곧.. 다시
라는 말은 내 몸이 안전지대가 아닌 자칫 방심하면 강한 것들의 하루 식사로
끝내 날라가 버리는 야생의 초원지대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강자에게 당하지 않을 몸을 만들기 위해 달리고 뛰고
격투기를 배우고 아예 죽지 않는 신선이 되기 위해
불로초를 생채식하고 심해 속의 상어간유까지 먹고 도인체조운동을 하고
그러다 평생을 이 문제로
생사를 건 깨달은 스님의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北邙山)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黃泉客)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경허스님 참선곡-
을 읽고 풀 끝에 매달린 이슬, 바람 앞에 등불인 피할 수
없는 몸의 한계에 포기했다
도피를 시작했다
주거지를 바꿔서 자객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그러다 들킬만하면 피하고 또 추적의 시간이 들킬만하면
피해서... 결국 인적 드문 호수까지 흘러왔다.
숨어있는 장소로 인적 드문 호숫가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인지 들키기 전 까지는
몰랐다. 숨기에 좋은 곳은 인파로 복작이는 저잣거리이다
골목이 있으면 금상첨화. 인적 드문 곳은 오히려
사람이 돋보인다
늙고 병든 몸,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생각한 순간
-바보처럼 나만 몰랐지 남 눈에는 이미 보였다는데-
이미 자객은 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자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일어나 나를 공격할지 몰라 불안하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장소도 시간도 없다.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러나 두렵다.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바로 문 앞에 당도한 죽음라는 진상중의 진상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데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학습할 공간도 없다.
죽음에 대해서 몰라서, 준비가 안 되어서, 가르쳐 주는 데도 없어 두렵고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