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르지 말라니까요
오전 8시를 조금 넘긴 아침. 여래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발을 닦이는데, 마을 방송이 울려 퍼졌다.
"... 우리 마을에 불법 소각행위가 있었습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많습니다. 바람이 강해 불씨가 날릴 위험이 있으니 절대로 소각행위를 하지 않도록 당부드립니다. 다시 한번 더 안내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방송의 대상이 누구를 향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집에는 마을 방송 수신기가 없어 이런 방송을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장님 댁에서 우리 집까지는 산길을 따라 차로 5분 정도 올라와야 한다. 길의 양쪽은 대부분 군유림이지만 일부 개인 소유의 땅과 집이 있다. 엄마와 잘 지내는 성애 이모 집 옆의 공터에 공사자재들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조그마한 단층집이 한 채 들어섰다. 길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서 집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여래와 산책을 가며 공사 소리를 들어왔었는데 어느 날은 공사가 다 끝났는지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조용히 지나치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이 동네 살아요?"
중년의 아저씨는 허리춤에 찬 스피커 때문에 잘 안 들리는지 몇 미터 거리의 나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아, 네. 저 위쪽에요."
여기서는 보일 리 없건만 손가락으로 집 방향을 가리키며 목례를 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은 느낌의 사람은 아니었다. 집에 와서 그 아저씨에 대해 말하니, 아빠가 열을 올렸다.
"그 사람 말을 함부로 하는 편이더라. 인사만 하고 말 길게 섞으면 안 되겠더라."
말을 함부로 한다는 그 사람은 행동도 거침이 없었다. 이장님 부부가 산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불길을 목격한 곳은 그 사람 마당이었다. 길 위쪽까지 불길이 치솟는 걸 본 이장님이 황급히 차를 세우고 그 집으로 뛰어갔다. 얼른 불을 끄라고 소리를 치자 그 사람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불 지른 지 인쟈 1분 됐는데."
허리께에서 자른 드럼통의 두 배로 치솟는 불길을 어떻게 1분 만에 만든 걸까? 내가 이모라 부르며 따르는 이장님 부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겁대가리 없는 사람이 있는가 몰라예. 나는 우리 신랑 불 끄러 댕기고, 피난짐 싸서 댕긴 거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예."
이야기를 들은 우리 가족도 분개했다. 불을 끄는 소방 대원들에게 미안해서 화목보일러도 안 쓰고 며칠간 냉골에서 잔 사람도 있는데. 쓰레기봉투값 몇천 원이 아까워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다니.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안 되겠다. 성애언니한테 전화를 좀 해놔야겠다. 불 지르는 거 보면 이장님한테 연락을 하라고 해야지."
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던 엄마의 인상이 구겨지더니 진짭니꺼? 하는 대답이 나왔다. 알고 보니 산불이 번져 구곡산이 홀랑 타고 있을 때도 그 사람은 자기 집 마당에서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것도 헬기가 철수할 시간에 맞춰서. 앞으로 산책하며 그 사람이 불을 지르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평소대로 산책을 하고 돌아왔는데 다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어제 또 누군가 불을 질렀나 보다. 엄마가 이장님 이모에게 전화해 어제 그 사람이 또 불을 질렀냐 물었다. 이모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제 속이 좀 답답해서 좀 걸을까 하고 동네 앞에 나가는데 연기가 펄펄 나는기라예. 우리 신랑하고 뛰~갔다아입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쓰레기에 불 질러 놓고 오데로 갔는가 사람은 없고 옆에 나무하고 풀하고 다 옮겨 붙어가지고......"
놀란 이장님이 호스를 끌고 와 물을 뿌리고, 소리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인근 사람들이 다 뛰어나와 불을 끈 모양이었다. 소란을 듣고 돌아온 집주인은 이장님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이장한테 미안하네..."
건조한 날씨와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는 강풍 때문에 시골마을은 비가 올 때까지 예초작업을 삼가라는 안내가 돌고 있다. 쇠날과 돌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니, 나일론 줄로 변경하라는 권고사항도 있었다. 그런데 일부러 불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오지 시골마을 중에는 쓰레기차가 들어오지 않아서 소각을 하는 동네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마을 초입에 분리수거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넓은 주차공간은 덤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인 거다.
이장님 방송 다음 날 하동군 옥종면에 산불이 났다는 긴급알림이 왔다. 이번에도 예초작업 중에 일어난 실화였다. 하동군 옥종면은 시천면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을 타고 넘어간 곳이었다. 이번에는 바람의 방향이 시천면 쪽으로 불어와서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대피준비를 하라는 문자가 왔다. 곧 산불은 2단계로 격상되었다. 또다시 짐을 꾸리고 혹시 모르니 준비하라는 내 말에 부모님은 말이 씨된다고 불나길 바라는 거냐 되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정색을 하니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이때까지 대피 준비를 했지만, 실제로 피해 입은 건 없으니 부모님 눈에는 과민반응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백 번 중 한 번이라도 실제 상황이 된다면? 이란 물음을 던지니 부모님은 그런 생각부터가 나쁜 일을 불러일으키는 씨앗이 된다는 거다. 부주의하고 무신경한 사람들이 일으킨 화재로 인해 집에도 분란이 일어났다.
제발 그런 사람들만 모아두고 자기들끼리 살라고 할 수 없나?
넌더리가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