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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27. 2019

가시를 발라내는 일

고등어에서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숙제다.

10년 전 시청역 부근에서 일한 적이 있다. 대기업의 외주를 받아 연구소에 소속된 개발자 대부분이 그곳에 투입됐다. 8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게 우리의 진한 일상이었다. 특이하게도 점심시간은 항상 11시 30분에 시작해서 1시에 끝났다. 야근과 철야가 반복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짧은 여유로움이었다고 할까? 그곳엔 유달리 맛집이 많았다. 특히, 북창동엔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서로의 간판을 자랑했으니까. 그런 걸 골라먹는 재미야 말로, 일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시청역 8번 출구, 횡단보도 건너편엔 낡은 생선구이집이 하나 있었다. 6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백반과 고등어구이나, 삼치구이 같은 걸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꽤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난 생선 가시 발라내는 일이 늘 서툴기만 해서 고등어구이 주문하는 것엔 머뭇거렸다. 오늘은 깔끔하게 발라내고 말 것이리라, 다짐해도 좀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살 덩어리만 큼직하게 집어 들고 싶었지만, 가시뿐만 아니라 생살까지 같이 덜어내는 일이 잦았다. 가시를 발라낼 때마다 나는 성급했고 충동적이었고 깔끔한 맨살만 생각했다. 나는 왜 이게 안 될까?라는 짜증을 내며 그날도 나는 가시를 발라내느라 큰 고충을 겪고 있었는데, 그러다 옆 테이블로 시선이 우연이 옮겨졌다.


두 명의 여자가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서 주문한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을 막 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괜히 궁금한 생각이 들어 그 여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오른손엔 젓가락, 나머지 손은 검지와 엄지를 슬며시 들어 올리더니 침착하게 고등어 접시로 향하는 것이었다. 아주 침착하고도 능숙하게 등뼈를 중심부에서 천천히 걷어내더니 양쪽에 붙은 잔가시들까지 한 조각 한 조각 세심하게 제거했다. 너무나 단정하게 생선가시를 발라내는 일에만 그녀는 집중했다. 그녀는 한마디로 프로페셔널이었다. 세상에, 가시를 발라내고도 고등어의 몸체가 훼손당하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내가 멍하게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는지도 모른 채, 심지어는 발라낸 가시들을 티슈 한 장에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그녀는 분리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구나. 나도 모르게 아,라고 감탄할 만큼 그 장면은 나에게 충격이자 장관이기도 했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해내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존경하고 싶어 지는데, 그날의 그녀가 그랬다.


그래, 나에게 생선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따분하기도 하지만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그따위 일들이야 대충대충 떠넘겨도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생선의 몸통을 아주 예쁘고 깔끔하게 분리하는 일이 인간에게 중요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런 건 옆에서 누군가 대신해주면 딱 좋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때로 그 의미 없는 일들에게까지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루키는 그의 <잡문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라고. 나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관찰의 중요성을 안다. 쓰는 일이란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한 수없이 많은 장면들, 그 의미 없고 서로 맥락이 없는 장면들에서 이야기를 조심조심 검출해내는 작업이란 걸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연관성 없는 장면들 따위를 서로 엮거나 불필요한 가시 같은 것들을 솎아내는 일, 그럴듯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야 말로 글 쓰는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것이다.


그 일엔 묘사라는 역량이 강조된다. 기억나거나 또는 기억나지도 않는 장면들을 글로 옮기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런 일은 해본 경험도 없고 습관으로 만든 적도 없기 때문에, 또한 나는 소설가가 아니라서요,라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평도 듣는다. 세상은 어쩌면 묘사를 해본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질지도 모르겠다. 묘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 중엔 그저, 기억나는 장면을 순서대로 종이에 옮겼을 뿐이라는 사람과,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멀뚱한 표정만 짓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겠지.


고등어에서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숙제다. 여전히 어떤 것은 적응이 안 되고, 여전히 어떤 것은 서툴다. 하지만 나는 여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난 여전히 서툰 것에 능숙해지고 싶어 묘사에 열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여전히 글을 쓰고, 여전히 일을 하고,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여전히 기억날 듯한 장면과 그 장면에서 살짝 가설이라는 양념을 투입한 후, 다시 그걸 이야기에 옮겨 적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가시를 발라내는 건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앞으로도 서툴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석쇠 자국이 선명하게 난 고등어의 노릇노릇한 몸통을 생각한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오늘은 가시들을 완벽하게 발라내는 일이 가능할까,라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나는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이 책이야말로 고등어 한 마리가 아닌가,라고 착각에 빠진다. 이 책에 적힌 모든 글자 중엔 살집이 제법 붙은 고소한 부분도 있을 테고, 등뼈와 잔가시 같은 것들도 많겠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깔끔하게 분리해내고 맛난 살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입속으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인지 다시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끔 비린 맛도 본다. 쓴맛도 더러 느낀다. 다시는 이런 짠맛만 가득한 고등어 따위는 찾지 않겠다고, 랍스터나 킹크랩 같은 대체 가능한 음식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내 글이 무엇인가로 대체될까 두렵기도 하다. 내 글엔 얼마나 많은 가시가 살집을 감싸고 있을지, 내 글엔 가시보단 맛 좋은 살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가시들을 발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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