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카유보트, 대패질하는 사람들
창틀을 닦고 화장실은 물 청소를 해야겠다. 싱크대에 있는 묵은 때를 긁고 거실은 걸레질을 해야겠다. 고무나무 잎에 내려앉은 먼지도 탈탈 털어줘야겠다…. 나른함이 채 가시지 않은 휴일 오전, 이불에 돌돌 말린 채로 이날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괴롭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아침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데도 허한 날이었다. 마침 스피커를 통해 히사이시 조(Hisaishi Joe)의 음악이 들려온다. 전날 잠들기 직전까지 나를 괴롭힌 게 있었는데 무엇이었을까…. 아, 이별이다. 궂은 날을 함께 한 회사 동기들 중 몇몇이 일을 관둔다고 한다. 휴식, 공부, 이직 등 다양한 이유였다. 곧 보자, 자주 연락할게…. 우리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아릿했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경조사가 아니고서야 거의 볼 일이 없을 것을 안다. 우정은 때로는 가혹하다. 학교 아닌 사회에서 싹튼 우정은 더욱 그런 법이다.
그렇게 '금요 모임'은 사라졌다. 이제 막 쓴 맛을 보고 있던 동기 모두가 한 달 중 가장 기다리던 날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다. 우리는 그날 하루에 딱 모였다. 순댓국에 소주를 진탕 마시고는 회사와 선배를 놓고 낄낄 대며 뒷담화를 했다. 말그대로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자리였다. 원래 어제가 이달 금요 모임의 날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그 모임이 이뤄지지 않은 첫 번째 날이었다. 나는 그날 혼자 영화관에 앉아 그닥 재미있지 않던 독립 영화를 두 편 연달아 봤다. 허전함은 여전했다.
이렇게 상실감에 깊이 젖었을 때 나는 홀린 사람처럼 청소를 한다. 며칠 전 대청소를 했다 해도 상관 없다. 진공 청소기를 들고 평소 슬쩍 비껴갔던 외진 곳을 모두 털어낸다. 베개를 팡팡 치고 수건과 티셔츠를 각 잡아 갠다. 솔을 들고 변기와 씨름을 한다. 이런 날은 더욱 과감하다. 평소라면 망설였던 물건들을 미련 없이 휴지통에 휙 던진다. 부족하다 싶을 때는 노트북을 켠다. 그간 진눈깨비처럼 쌓인 작업 문서들을 싹다 날려버린다.
청소가 상실감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일이 다 끝났을 때 내 주변이 가벼워진 만큼 감정의 무게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쥐가 난듯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특유의 무거운 저릿함도 색이 바래진다. 온천 물에 진득히 몸을 담갔다가 나온 느낌이 든다. 웃음도, 찡그림도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어쩌면 청소보다 '청소 의식'을 한 것으로 봐도 상관이 없겠다. 한 책에서 허한 마음에 대응하는 법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애지중지 기른 콧수염을 멀끔히 자르기,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싹둑 쳐내기 등을 제안했다. 자신 혹은 자신 주변 환경을 판 뒤집듯 크게 바꿔보라는 것이다. 나는 콧수염도 없고 긴 머리도 없다. 청소는 이런 데 대한 일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었다.
사실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야 상실감에 빠졌을 때 청소기를 들었다.
어렸을 땐 정리는커녕 폭탄이라도 맞은마냥 주변을 모조리 흩뜨리곤 삶을 포기했다. 이별 노래를 메들리로 틀어놓고서는 나아질 때까지 생을 내려놨다. 나는 대학생이 된 첫 해 여름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을 했다. 카페에서 일한 근 4개월 간 모르는 이들에게 숱한 상처를 받은 이후였다. 인간답게 살려면 돈은 벌어야 했다. 그런데도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는 죽기보다 더 싫었다.
인적 드문 쓰레기 매립장은 웬만한 놀이터 크기였다.
매주 수요일, 동네 상가에서 쓰레기를 잔뜩 가져왔다. 이를 종류별로 나눠 쌓아두는 게 일이었다. 또, 한 달에 한 번 큰 인형뽑기 기계 같은 것을 불러 더 쓰레기들을 더 큰 매립장으로 보내면 끝이었다. 쓰레기들이 산 같이 쌓이면 달착지근한 향이 난다. 온갖 구린내가 나는 물건들을 싹다 모아놓아도 그랬다. 나는 단내를 풍기며 그곳에서 살았다. 싸이월드 속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의 새 기운을 만끽하는 듯했다. 솔직히 그때는 일을 하기가 싫었다. 꿈은 옅었다. 그저 놀고만 싶은 지친 상태였다. 지금보다 더 나약했고 자존이란 것은 실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흐릿했다. 친구들은 모두 여름이면 바다,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는 한 달 35만원을 벌기 위해 이곳에서 찐득한 아이스크림 봉지나 줍고 있었다.
내 시간, 소위 칭해지는 찬란한 '청춘'을 잃고 있는 느낌이었다. 쓰레기를 줍다보면 내 인생도 쓰레기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왔다. 친구들이 "뭐해?"라고 전화를 걸어오면 괜히 코 끝이 시큰했다. 엄밀히 보면 쓰레기와 관리 내지 정리라는 말은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그럼에도 전임 직원은 이곳을 너무할 만큼 엉망으로 관리했다. 플라스틱 공간에는 땟굴묵 잔뜩 묻은 곰인형이 있고 유리병이 있어야 할 곳에는 녹슨 프로판 가스통이 있는 식이었다.
이곳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거창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퇴근한 후 샤워를 하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꼬박 일주일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목장갑 한 통이 다 뜯어졌다. 마구 휘저어져 있던 이곳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더 이상 쥐나 들개 같은 불청객은 없었다. 뒤편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며 침을 찍찍 뱉던 취객들도 모두 없어졌다. 굳이 비유하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정신 없는 액션 페인팅이었던 이곳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수직·수평 페인팅처럼 손바꿈을 했다.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괜히 으쓱했다. 그간 역한 공기마저 차분히 바뀌었다. 이런 나라도 고개를 더 들고 살아도 되는 것일까. 쓰레기 매립장 한 켠에서 들국화가 피어났다. 이곳에서 처음 본 작은 생명의 찬란한 움틈이었다. 목울대가 뜨거워진 경험이었다.
기지개를 쭉 켠다. 책장에서 나풀대는 머리카락들을 슥 닦는다. 벌써 오후였다.
집은 한층 밝아졌다. 내 마음의 밑바닥을 긁어대던 추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졌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워본다. 아침에는 먼지들이 성난 군대처럼 요동치는 것 같았다. 이제 보니 따사로운 주황색 빛 터널에서 춤을 추고 있다.
"헤어지면 또 어떤가. 아직 네가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을텐데."
아릿한 이 감정이 너무 싫다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어느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다 알게 돼, 기꺼이 서로의 삶에 조연이 돼기로 한 형에게 토로한 말이었다. 그 형이 내게 돌려준 말을 기억한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마주할 귀한 인연들이 줄 지어 있을텐데…. 이렇게 또, 살아가자. 스스로를 다독인다.
호리호리한 남성 세 명이 마룻바닥을 대패로 밀고 있습니다. '대패질'이라고 하는 이 일은 나무의 까칠한 겉면을 매끈히 깎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발바닥에 갖은 나무의 잔뼈들이 박히곤 합니다.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듯, 세 사람 다 웃통을 훌렁 벗었습니다. 서로 눈빛만 주고 받으며, 일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가슴이 저릴 때 힘껏 하게 되는 청소란, 때마침 까칠해진 내 마음을 다시 대패질하는 일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마음 위, 어느샌가 눌러붙은 우울감을 열심히 벗겨내는…. 덧붙이자면, 당시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미술 비평가들에게 “그림들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천박하다”는 등의 악평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또한 이 그림을 통해 마음 속을 대패질하고 있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