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프란츠 아이블, 책 읽는 여인
나는 코코아, 그녀는 유자차를 마셨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해가 진 뒤 커피를 마시면 잠들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 말에 둘 다 옅게 웃었다. 알게 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밖은 눈꽃들이 그렁했다. 두 개의 잔에서 따뜻한 연기가 올라왔다. 괜히 쑥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너 말이야, 요즘은 무슨 책 읽니…?" 침묵을 깬 그 한 마디는 갓 터뜨린 핫팩처럼 따뜻했다.
사실, 우리의 일대일 만남은 예정에 없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이날은 원래 5~6여 명이 만났어야 할 모임의 날이었다. 나는 당시 한 미술관이 운영하는 6개월짜리 교양 수업을 들었다. 작가, 화가, 변호사 등 세상 멋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행운의 나날들이었다. 오늘은 애초 수강생들 간의 친목 모임이 이뤄져야 했다. "우리 서로 얼굴 본 지 3개월이 다 돼갑니다. 다음 주에 회식 한 번 하시지요." 첫날 바로 반장으로 뽑혔던 넉살 좋은 대학원생 형의 말이었다. 많은 이가 반기며 손을 들었는데… 날씨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하필 모임 당일, 하늘은 오전부터 꼬장꼬장했다. 오후 3시가 흘러서는 기다렸다는 듯 눈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잊어버린 일이 떠올린 듯, 마치 서로 경쟁하는 양 오늘 모임에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알려왔다.
근처 서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나, 일찍부터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던 그 사람. 남은 이는 우리 둘뿐이었다.
고백하자면, 그 자리에는 묘한 설렘이 함께 했다. 그녀, 정확히는 누나였다. 나보다도 12살이 더 많은 그 누나는 내게 은근한 동경(憧憬)과 호기심을 심어주는 상대였다. 이성적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갈래가 다른 그 너머의 무언가였다.
화려한 외모도 아니었고, 시선을 쏠리게 하는 인상도 아니었다. 그저 잘 정돈된 갈색톤의 단발머리, 얇은 쌍꺼풀과 서리도 맺힐 듯한 긴 속눈썹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수업 첫날, 그녀는 교재와 함께 얇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었다. 몇 주가 지나서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를 들고 왔다. 다음 책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등이었다. 그녀가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읽던 그 책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은, 때마침 내가 고전문학에 푹 젖어 있어서였다. 각 나라 대표 고전 작가의 대표 작품을 줄줄 욀 수 있을 만큼 미쳐 있던 시기였다.
우리는 그날, 어쩌다 보니 차 향기가 아닌 책 이야기에 취했던 것 같다. 그녀는 "너"라는 말을 할 때마다 "너~어"라는 억양을 줬다. 부드러운 말투였다. 떨어지는 눈꽃, 은은히 내리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분위기의 밀도를 더해줬다.
그녀는 여기서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의 한 골목에서 친언니와 함께 작은 카페를 챙긴다고 했다. 수업 첫날 자기소개 시간 때도 말을 아낀 이였기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하던 차였다. 이어 일이 지루하다 보니 꾸밈 용으로 곳곳 꽂은 책에 관심을 두게 됐고, 생각보다 즐거움이 있어 고전문학 깨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블로그를 봤고, 언젠가 함께 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때 나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책과 그림을 다루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일기장을 뺏긴 아이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내심 반갑기도 했다.
나는 그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네 번, 다섯 번째 읽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품고 있는 주인공 니나 부슈만이 삶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소설이었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그 책과 함께 묻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푹 빠져있는 책이었다. 그녀는 다음 책으로 꼭 읽어보겠다고 했다. 내 말을 꾹꾹 눌러 담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이야기했다. 그녀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말할 때,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종교의 길을 걷는 알리사를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우리가 밖을 나섰을 때, 길 위는 부드러운 눈이 가득했다. 갓 나온 티라미수 크림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다시 일상이었다. 그녀가 다음 수업 때 가방에서 꺼낸 책은 《생의 한가운데》였다. 나를 향해 뒤돌아보더니, 묘한 표정을 짓고는 씩 웃었다.
어느 늦은 밤, 벨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전화였다. 우리가 예정 없던 만난 후 몇 주일이 지난 후였다.
전화를 받았다. 내 목소리는 잠에 푹 젖은 상태였다. "나도 밤늦게 전화하는 게 아닌데…. 미안해." 사과부터 건넨 그 누나는 내게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도 그냥 항구에 멈춰있는 배가 아닐까. 용기가 없으니 편안함에 머물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녀는 《생의 한가운데》 속 니나가 자기처럼 안정을 찾으라는 친언니를 향해 쏘아붙인 말이, 자신에게 비수(匕首)가 돼 꽂혔다고 했다. "나도 그랬어요. 그 책을 읽고, 생전 처음 오지 배낭여행을 생각했었어요. 내 삶이 너무 잔잔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 다들 그런 것 맞지…." 그녀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수화기 너머로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미술관의 프로그램은 잔잔하게 끝을 향해 달려갔다.
열정남이었던 대학원생 형은 바쁘다는 말을 남긴 후 다시 모임을 이끌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물어오면 멋쩍은 표정으로 “논문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와 그 누나도 그사이에 따로 시간을 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그저 우연히 만나, 어쩌다 보니 책 이야기를 하게 된 사이였다. 나이 차도 상당했던 만큼, 애초 우리는 각자 사는 세상이 똑같지 않았다.
마지막 날, 그녀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고 왔다. 니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고, 비슷한 감정의 이야기를 꼽아달라기에 말해준 책이었다.
"나, 다음 달에 카페 일 그만둬."
그녀는 쉬는 시간, 복도에서 말을 걸었다. "그냥 뭐…. 원래 그런 생각을 쭉 해왔어. 그런데,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눌러앉은 느낌이야. 요 몇 년은 너무 잔잔하게 살았어." 나는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여태 관심 두던 일을 배 터지게 하고, 때로는 무턱대고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을 수집하겠다고 했다. "니나와 조르바가 함께 떠오르는 말이네요." 내가 말했다. "결국은 내 선택이야. 언젠가는 했을 선택이야." 그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프란츠 아이블의 『책 읽는 여인』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그때 알았다면, 그녀에게 이 그림을 꼭 알려줬을 텐데. 수업 첫날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누나의 표정이 딱 이랬다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까, 그 표정과 분위기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날 이후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딱히 먼저 연락한 적 없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일도 없다. 두어 번, 건너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한 도시의 작은 꽃집에서 플로리스트로 일을 한다고 한다. 그사이 결혼도 했고, 애도 두 명이나 있다고 한다. 언젠가 눈 오는 날 그때처럼 예정 없이 만날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는 뒤로 한 채 그간 읽은 책 이야기부터 주고받고 싶다. 꼭 알려주고 싶던 그림이 있었다는 말도 꼭 하겠다.
프란츠 아이블, 책 읽는 여인.
“자신의 공기에 에워싸여 자신의 법칙 아래서 살며 낯설게, 외롭고 고요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성좌처럼 거닐었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作)』 중 발췌》
깔끔하게 내려오는 밤색 머리카락, 잡티 없이 가지런한 피부, 붉은 기운이 생기 있게 감돌고 있는 볼과 쇼파 위에 편하게 얹은 팔…. 책에 흠뻑 빠진 이 여성은 특유의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왠지 모를 생의 의지가 흐릅니다. 활자를 보는 눈과 몰입에 젖은 표정, 책을 쥐고 있는 그 손에서 강인함이 피어납니다. 절대로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지요. 몰입하는 이 여성은 누군가의 사생결단이 걸린 모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도 듭니다.
"누나가 이 그림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그저 작고 여릿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누나는 누나도 놀랄 만큼 분명 강한 사람일 거예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