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해외 생활을 꿈꾸는 당신에게 (feat. 건축유학생)
결혼을 하자마자 파리로 이민을 간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다.
폰트사이즈 6정도 될법한 깨알같은 크기에 친구의 성격이 묻어나는 특유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그녀는 자신의 안부와, 나의 안부에 대한 궁금함과, 옛벗의 다정함을 카드에 가득 담아 보냈다. 그 안에는 그녀의 언약식날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도 들어있었다.
“잘지내?” “나는 잘지내.” “잘지내야해.” 에 그치지 않는 그 편지가 참 좋았다. 친구는 연애시절부터 파리에서의 신혼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소소하지만 관계의 색깔을 더해준 낭만의 기록들을 꾹꾹 눌러쓴 작은 글자들 위에 펼쳐보였다.
건축학도시절 캠퍼스커플이었던 친구 혜미와 남편은 밤샘작업의 고달픔을 서로의 눈꼽을 떼어주며 함께 공유했고, 현장답사를 핑계로 함께 전국을 누비며 아름다운 건물들을 감상하곤 했었다. 스스로를 건축덕후라 부를만큼 건축에 대한 순수하고 담대한 꿈을 지닌 남편은 한국의 척박한 건축계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그리고 아내의 꿈을 보호하고자 프랑스 유학의 길을 택했다. 남편은 공주같이 키운 하나뿐인 딸의 앞날을 걱정하실 장모님, 장인어른을 안심시켜드리고자 3차, 4차에 걸친 프랑스 유학 계획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는, 과거 동료들과 함께 직접 건축부터 브랜딩까지 작업한바 있는 서울 근교의 한 펜션에서 디렉터나 외주업체의 도움 하나 없이 소규모 야외 언약식을 준비해 한국 친구들과의 작별인사를 했다.
나와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이둘의 러브스토리가 마치 한편의 멜로 영화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정말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영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달콤한 해피엔딩이었다. 결혼, 유학, 이민, 그리고 더군다나 그 종착지가 프랑스라니!
친구의 카드는 지난 날들에 대한 감사와 관계의 결실에 대한 스스로의 축복으로 가득했고, 그 따뜻한 에너지는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나를 절로 미소짓게 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정말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던 것은 카드의 마지막 그녀가 나에게 보낸 “해피엔딩” 그 이후, 다음 챕터를 살아가는 데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는 대신, 4개월 후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화요일 파리의 오후.
시차적응이 안되서인지, 재회에 대한 감격때문인지, 친구와 서로를 보고 환히 미소짓고 얼싸안고 안부인사를 건네는 동안에도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교복을 입고 꺄르르 떠들거나, 성인이 되어서는 잠옷차림으로 밤새 수다를 떠는것이 일상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 남편을 옆에 두고 파리의 한 작은 공원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낯설었다. 이 낯선 환경 위에서 익숙한 미소를 보는 것은 마치 한폭의 초현실주의 그림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3주간의 한국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를 만나기 전 날 하루종일 잠을 잤을 만큼 여독이 짙었다고, 이제 서울보다는 파리가 더 집같고 편하다고 불쑥 고백했다. 외롭지만 자유로운 해외살이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있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땅에 발을 들이는 순간 빼곡한 스케줄과 역 컬쳐쇼크로 치환이 되곤 한다. 서울 특유의 빠르고 거친 리듬과 사회 촘촘히 엮여있는 다양한 관계의 법칙과 의무감이 수십년 한국에서 보낸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낯설게 다가올 때면, '이제 한국은 내 집이 아니구나' 하는 조금은 씁쓸하고도 감상적인 깨달음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막 함께 그 과정을 거쳤기에 현재 파리에서의 결혼 생활에 대해 새로운 감회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친구의 남편은 옆에서 “오히려 지금 넷이서 같이 파리를 거늬는 지금이 더 바캉스같아요.” 라고 맞장구를 쳤다.
1년전 프랑스의 한 시골 어학당에서부터 유학을 시작한 그들의 불어는 아직 유창하지는 않지만 몬트리올 출신 캐나다인인 L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정도로 금새 늘어 있었다. 친구가 불어를 할때면 그녀의 남편은 사랑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았고, 남편이 불어를 할때면 친구 또한 달콤하게 남편을 응시하다가 가끔식 그가 혼동한 단어들을 고쳐주곤 했다. 가끔은 그녀가 할 말을 남편이 대신해서 말해주기도 했다. 친구가 한참 어느 학교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도 불어도 갑자기 생각이 안나 당황해 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묵묵히 듣던 남편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혜미, 그 인테리어디자인 학교 합격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학교도 있어요. 그 학교는 프랑스 국민 건축가가 나온 아주 명문 건축학교에요.”
친구는 잠시 수줍게 자신의 양손을 맞잡고 얼굴 양쪽으로 흔들어 우리들의 탄성에 응답하고는 곧이어 말했다. “오빠야 말로 정말 좋은 건축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걸. 나는 아직 고민중이야 어디로 가야할지.”
어릴때부터 배워온 영어로도 미국에서의 대학원 공부와 직장생활에 힘들어했던 나로서는 그들이 2년 안에 이뤄낸 성취가 감탄스럽기만 했다. 자신들의 목표를 현재의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계획대로 밀고 온 그들의 줏대와 용기도 부러웠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언어의 장벽이라던지 외국인의 신분 따위와 같은 여러가지 내적인 핑계들을 이유로 선택의 길을 좁히곤 했었다. 친구의 남편은 장인어른 장모님께 드렸던 프레젠테이션에서 계획했던 타임라인대로 많은 목표들을 달성해왔다고 했다. 너무 서두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아주 현실적이지만 담대했던 계획인 것이다.
이날 오후, 파리에 사는 이 신혼부부는 관광객의 마음으로 마레지구를 돌며 파리의 가장 오래된 찻집으로 우리를 데려갔고, 나와 L은 파리의 로컬처럼 다니고 싶은 마음으로 생마르텡 운하 근처에 숨어있는 바를 찾아 그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우리 두 커플은 서로의 존재를 마치 자신들의 그림자 삼아 파리의 구석구석을 원없이 걸어다니며 낭만을 즐겼다.
연애시절 친구의 남편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그들이 닮아간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파리에서의 그들은 이제는 거의 한몸처럼 보일정도였다. 잇몸이 보일정도로 환히 웃는 미소라던지, 말 없이도 따뜻함을 전하는 방법이라던지, 호기심 많은 태도로 작은 것이나 일상적인 것에도 커다랗게 반응하는 태도라던지, 심지어 짧은 머리에 하얀 티셔츠에 청자켓을 걸쳐입은 스타일까지 말이다.
나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발을 맞춰 걷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조금 일차원적인 생각인줄 알면서도, 저렇게 쏙 닮은 커플이라면 싸울일은 거의 없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오후, 친구와 나는 남편들의 동반 없이 마레지구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마레지구에 올때마다 남편과 꼭 들른다는 한 작은 이스라엘 레스토랑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테이블 몇개를 간신히 놓은 이 식당 내부는 키친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와 끊임없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기다란 줄과 손님의 이름을 친근하게 외치며 준비된 음식을 서빙하는 가게 주인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우리는 운좋게 키친 카운터바에 자리를 잡고 커다란 칼리플라워를 통째로 찐 애피타이저와 스테이크 랩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친구와 나, 단 둘이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자고 한 것은 나의 요청이었다. 누군가의 아내들로서가 아니라 혜미와 주원으로서, 옛 벗으로서, 그리고 한국어와 불어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었다. 친구는 프랑스 시내에 혼자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굳이 혼자 다닐 일도 없었고, 혼자 이유없이 시내를 다니기에는 남편도 자신도 조금 겁이 났었단다. 부부는 파리에 올라오자마자 시내에서 기차로 30여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동네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짐을 다 풀기도 전에 그들은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학교를 지원하고, 불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느라 빼곡한 3개월을 보냈다. 그녀에게는 일요일 아침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예배를 본 후에 남편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도시를 거늬는 것이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라고 했다.
“우와, 그럼 정말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을 같이 지내는거네? 정말 찰떡 궁합인가봐.”
“생각해보니.... 남편이 나를 좀 지겨워했을 수도 있겠네? 지겨웠을라나? 하하. 그런데 나는 여태 그런 생각을 못해본 것 같아.”
“그러면 다투고 난 후에는? 다퉈도 그냥 계속 같이 시간을 보내는거야?”
“그거 참 좋은 질문이네...흠...”
친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편지에서 친구는 나에게 물었었다.
“너는 남편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니?”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마치 올라서면 저절로 움직이는 무빙워크처럼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끊임없는 갈등과, 그로부터의 배움과, 아직도 배울 것이 있음에 대한 놀라움과 그리고 그로부터 얻게되는 또다른 사랑의 감정의 순환고리이다.
하지만 알랭드보통이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에서 말했듯, 세상의 많은 러브스토리들은 결혼 후의 굴곡을 심도있게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결혼은 사랑을 이뤄낸 한 커플이 마침내 다다를 수 있는 파라다이스나 천국과도 같은 종착지로 비유되거나, 혹은 아주 극단적으로 서로를 옭아매는 낡은 올가미로 (그래서 대개 그런 이야기 속에서는 ‘불륜’이 새로운 로맨스로 묘사되곤 한다) 그려지기 마련이다.
소비되는 러브스토리들 뿐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파트너와의 다툼을 친구나 가족들과 공유하는 것도 흔치 않을 뿐더러, 그렇게 불쑥 에피소드를 꺼내놓은 후에는 마치 파트너 뿐 아니라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친구가 편지 속에서 물은 그 질문은 그래서 신선했다. 그녀의 질문에는 남편에 대한 성실한 사랑과 그 노력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나와 L의 결혼생활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또한 편지를 통해서 부부가 나름 겪어온 시행착오를 재치있게 공유했었다. '자고나면 다음날 기분이 나아지겠지' 라는 믿음으로 잠을 청하면 각자 불면증에 시달렸고, 화해를 할겸 함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보았더니 발걸음을 엔진삼아 계속 다툼을 이어가고 말았다 한다.
나름 '결혼 선배'로서 친구에게 얼른 도움이 되는 답변을 주고 싶으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잘 알지 못했다. 나와 L은 최근 들어 다툼 후 각자가 가지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에게서 들었던 말을 감정적 반응의 부유가 아닌 고독한 자기 관찰로 침잠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다툼을 서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전환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 잠정적 해결방안이 다른 부부에게도 좋은 방향이 될런지 알지 못해 공유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말을 더 잇는 대신 애꿎은 칼리플라워만 포크로 쿡쿡 찔러댔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마레지구의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함께 걸으며 소화를 시키기로 했다. 패션의 불모지에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관광객으로서는 파리의 작은 샵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패턴들과 과감한 컷들이 파리의 그 어떤 랜드마크보다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햇살을 가득 쬐며 걷다가 혜미가 문득 말했다.
“있지, 오빠와 나는 이제 사실 서로가 많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 각자의 방식을 설득시키려 하는 대신에, '아 너는 그런걸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하는게 좋아,' 라고 배우는 자세로 바꾸게 되었어. 그러고 나니 다툼도 더 커지지 않게 되는거같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가진 공통분모는 애초에 서로를 끌리게 한 요인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전공, 같은 종교, 같은 친구 서클, 그리고 심지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 하지만 한국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을 이어주고 묶어주었던 그 공통분모는 그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알지못했던 서로의 다름이 매일매일의 일상의 순간위로 불현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는 시간, 여행을 계획하는 방식, 선호하는 휴식, 그리고 새로운 친구관계를 만드는 법 등등...
그들 커플과 비교해 나와 L은 정 반대의 경우였다. 우리는 다름으로부터 호감을 키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별안간 뉴욕을 체험하겠다고 휴학을 해버린 모험심 넘치는 한국인 대학생과, 뉴욕에 사는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던 시니컬한 금융 로펌 변호사의 만남은 서로 다른 생김새 만큼이나 다른 것 투성이었다. 우리의 다름은 “문화차이”라는 거대한 토픽으로 쉽게 설명이 되었기에, 오히려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더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메타적인 이해심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다른점들까지 포용해주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인지, 아니면 그냥 성격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냥 상대편의 별난 습관이 세상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큼 정말 이상한건지 혼란스러워 지면서 서로를 설명해주었던 기준과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차라리 큰 걸로 다투면 ‘아 이건 엄청 중요한 일이니까’ 하고 이해가 되는데...”
“그러니까! 작은 것가지고 트집잡자니 스스로 쫌생이가 된 것 같고 시간낭비인 것 같고, 그치.”
“응 되게 억울해져!”
결혼에 골인하게 된 러브스토리는 친구와 나 사이에 매우 달랐을지언정, 일상의 다툼에 혼란스러워 하는 신혼 부부들이라는 점에서 결이 같았고, 그렇게 핑퐁을 치듯 서로를 신나게 공감하고 위로해주었다.
남편들과 공원에서의 피크닉을 앞두고 우리는 내가 구글맵에서 찜해둔 한 커피숍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넓은 창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져드는 하얗고 작은 카페에 나란히 앉아있자니 친구와 한국에서 함께 하던 시절이 더 생각나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특별한 대화가 없이도 그 따뜻한 공기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은 그런 오후였다. 그 하얀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데다가 맡은 일은 미련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어떤 일이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친구는 그동안 건축 이외에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해왔다. 애초에 건축에 대한 열정보다는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학부전공을 시작했던 그녀였다. 인테리어디자인 학교를 지원한 것은 건축이라는 자신의 기본 백그라운드와 새로운 창의적인 일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 사이의 타협지점과도 같았다.
“사실 모험한다는 생각으로 산업디자인 학교에도 지원을 했고, 1차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야. 한국의 한 스타트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할때 너무 재미있어서 그쪽 길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 그런데 유럽에 유학와서 전공을 확 바꾸는게 조금 무모한 일인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
그녀의 입장에서는 남편과 함께 이민을 하기 위해 유학의 길을 택한 것이었기에 전공의 선택 뿐 아니라 추후 진로의 옵션에 있어서 안정성을 많이 고려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지금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아. 남편한테 여러번 상의해보기도 하지만, 남편은 워낙 처음부터 한 분야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유학와서도 큰 고민 없이 학교를 선택한지라 내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긴 해도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떠오르는 일련의 생각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신감, 언어의 장벽,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독립된 어른으로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기의심 등은 결국 외로움이라는 부산물을 낳게 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 곁에서 지켜주고 보듬어 주는 파트너가 존재하는 것은 나에게도 혜미에게도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존재가 내면의 외로움까지 온전히 달래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친구도, 그리고 나도,
그러고보면 우리는 결혼을 위해서가 아닌, 결혼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길을 택했다.
마치 한국을 벗어나 여행을 하다보면 그 체험을 통해 비로소 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결혼 역시 파트너를 통해 그와 나의 같은 점 뿐 아니라 다른 점까지 배우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도와준다. 때로는 파트너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면이 나에게서 용기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나의 지난 변화를 돌이켜보면, 나의 남편없이 내가 그런 결정들을 내릴 수있었을까? 싶을만큼 스스로도 놀라운 면들을 깨닫곤 한다.
파트너를 버팀목 삼아, 때로는 도전과제 삼아,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자아를 탐구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워낙, 커리어도, 집도, 차도 다 준비되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강하잖아요. 한국에서 계속 있었다면 저희 둘 다 갑자기 결혼을 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거에요.” 친구의 남편은 공원에서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그러한 결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의 일부 뒷편에는 파트너에게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존재가 되주고픈, 그리고 떳떳한 가정의 기둥이 되고 싶은 우리들의 열망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새 결혼은 이제 젊은 두 개인이 이룬 사회적 성취의 세러모니로 변하는 것만 같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로 향할 때 내가 친구에게 가졌던 약간의 걱정과 호기심, 그리고 그리움은 그 이틀간의 대화를 통해 공감과 존경, 그리고 일종의 전우애로까지 전환되었다. 교복을 입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품고 있었던 따뜻함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도 전염될만큼 더 짙어진 듯 하였고,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굳건함과 차분함, 그리고 현실적인 안목을 받아들인 듯 했다.
따뜻하지만 강한,
차분하지만 밝은,
그리고 꿈을 꾸지만 파트너와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놓지 않는 사람.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한 혜미의 눈을 통해 파리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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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뮤즈: Hyemi Park |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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