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품은 열정이 식어가는당신에게 (feat.싱어송라이터)
켈리가 사는 곳은 샌프란시스코를 한강처럼 가르는 도로, 마켓스트리트 위에 있다. 오래된 빌딩에 위치한 작은 스튜디오지만 회색 고양이 노라와 스물네살 켈리의 아늑한 보금자리로는 제격이었다. 집안을 들어서면서 정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창문은 빨간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마켓스트리트를 마주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키보드 건반이 햇빛을 받으며 서있었다. 거실의 침대 겸 쇼파 위에는 요가에 쓸 법한 오리엔탈풍의 담요들이 쌓여 있었고, 쇼파 옆 나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맥북과 마이크, 레코딩을 위한 이름 모를 작은 도구들, 그리고 구석에는 세워진 노란 기타는 그녀가 음악작업을 하고 있음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켈리를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나곤 했지만,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적으로 많은 것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아파트를 들어서면서 그녀와 오랜 친구인냥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고, 그 작은 공간으로부터 친숙함과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켈리에게는 그런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날 카메라 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그녀를 방문한 이유였다. 나는 켈리를 나의 첫 미니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사들고 온 커피와 브런치를 간단히 즐긴 후, 그녀를 창가에 앉히고 가져온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세웠다. 붉은 곱슬머리와 파란 눈, 그리고 볼위의 주근깨를 햇살로 예쁘게 드러낼 수 있는 앵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Recording 버튼을 누르고 말을 건넸다.
“음…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나를 보면서 그냥 편안하게 말해줘. 말하다가 막히면 처음부터 문장을 다시 시작해도 좋아. 일단… 너의 간단한 소개부터 시작해볼까?”
카메라 삼각대에 호기심이 생긴 고양이 노라가 다가와 내 주변을 맴돌았다. 캘리는 노라를 보고 피식 웃고는 대답을 시작했다.
“나는 캘리라고 하고 음… 낮에는 힙합요가를 가르치고... 밤에는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야.”
켈리는 나의 요가선생님이었다.
집에서 꽤 멀리 위치한 켈리의 수업을 매주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음악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글루텐프리나 카디오 싸이클링 등 건강과 관련된 온갖 트렌드들을 만들어내는 로컬들의 다채로운 취향을 맞춘 요가수업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르치는 힙합요가만큼은 유일무이했다. 그렇다고 해서 힙합 댄스동작이 요가에 가미되는 것은 아니다. 힙합요가라 부르는 이유는 그녀의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 내는 요가수업의 분위기 때문이다. 감미로운 R&B부터 투팍의 거친 랩까지 다양한 힙합 음악은 몸을 이완시키는 호흡부터 시작해서 스트레칭, 땀을 쏙 빼는 빈야사 요가까지 요가의 흐름을 리듬감 입게 따른다. 친근한 음악에 흥얼거리다보면 동작의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수줍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첫 수업이 끝나자 마자 켈리에게 다가가 플레이리스트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켄드릭라마와 제이콜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에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그녀는 나의 첫 “미국인” 친구이기도 했다. 유럽출신을 비롯한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한결같이 미국인들은 오픈되어 보이지만 친해지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나 역시 주변의 미국인들과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친구 사이라고 레이블을 붙이기에는 늘 조심스럽다. 그들은 마치 스몰토크(Small Talk, 잡담)뒤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핑계로 그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설레었다.
“내가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유명한 힙합 요가수업이 있었어. 나도 힙합을 무척 좋아해서, 그 요가수업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꾸준히 수업을 나가다 어느덧 요가 강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지. 내가 힙합요가를 창시한건 아니야, 하하하.”
“우와.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했어? 거기 명문이잖아! 너 엄청 실력있나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늘 혼자서 노래를 부르곤 했지. 근데... 그냥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 버클리 음대에는 정말로 전세계에서 진짜 날고 기던 애들이 많았어. 그래서 거기서 공부하는 내내 사실 기가 많이 꺾이고 오히려 자신감이 줄어들어 갔었어."
켈리에게 음악은 그저 너무나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냥 노래부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서, 한번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본다던가,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할 생각을 해본적 없었다. 심지어 19살때 대학을 진학하는 순간까지도 음악은 그녀의 전공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 베이지역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오클랜드, 실리콘벨리 등을 포함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 토박이야. 여긴 뭐 워낙 엔지니어링이니 마케팅이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잖아?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었지만 나도 그런거나 하겠지 하고 집에서 가까운 주립대에 들어갔어. 휴, 근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공짜로 배우는 것도 아닌데, 돈 낭비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1년만에 대학을 나왔어. 어느날 엄마가 버클리 음대의 진학설명서를 나한테 주더라. “너 음악 좋아하잖아” 하고. 나는 엄마한테 코웃음을 쳤어. 한번도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적이 없으니 난 안될거라고. 속는셈 치고 넣었는데, 덜컥 붙어버린거야. 하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동안 책장에서 먼지 쌓인 버클리 음대 졸업장을 발견했다. 나는 대답없이 카메라를 응시했고,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 더 잘해야 하는데, 더 잘해야 하는데, 하면서. 그러다가 그리스로 교환학생을 갔어. 그런데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내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더 깊은 암흑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지. 타지에서 말도 전혀 안통하고, 외롭고, 배우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아."
켈리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처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적응하는데 힘든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날 아침 눈을 떴는데, 침대에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던지, 밥을 먹어야겠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야 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던지 하는 그녀의 묘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그렇게 한달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 친구가 그녀에게 요가를 추천했단다.
“나는 그 때 정말 절망 속에 있었거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딱 한 달만 매일 빠짐없이 요가를 해보자, 그렇게 자신과 다짐을 하고 요가를 시작하게 된거야. 그리고, 그게 나를 살려준거지.”
신기하게도 요가를 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우울증과 함께 망가진 건강도 되찾았다. 요가는 신세계였다. 그리스에서 보스턴으로 돌아와서도 요가를 계속 하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힙합요가 수업이었다.
음악이 나한테 삶의 행복을 준다면, 요가는 에너지를 주는 존재인 것 같아. 내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요가를 통해 치유했으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싶더라고. 그게 내가 요가를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 이유야.
“근데 웃긴건 뭔지 알아? 버클리 음대에 있으면서도,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면서도, 나는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들처럼 회사에서 평범한 사무직을 하게 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나는 내 학교 친구들 만큼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요가 강사로 평생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거든. 그래서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레코딩 회사 마케팅팀에 들어 갔었어. 근데 한 6개월 다니고 보니까, 내가 일을 도와주는, 그 레코딩하는 가수들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나는거야. 그제서야 용기를 내고 노래를 계속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지.”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셰릴 샌드버그가 자신의 책 Lean In에서 언급한 '임포스터 신드롬'을 떠올렸다. 자신이 거둔 성공에 대한 노력과 재능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운이라고 여기는 증상인데, 특히 여성들이 이런 경향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특별한 준비 없이 버클리 음대에 갈만큼 음악실력이 훌륭하고, 요가를 평생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철학과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에 재능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종류의 망설임은 꽤 타당하다. 특히나 주류가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려 할 때에는. 게다가 가수서의 성공에 인생을 전부 투자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건 도박과도 같은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마케팅팀에서의 경험은 그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켈리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곡작업을 하고 요가 일을 구하러 다녔다.
여기까지 설명을 마쳤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공책 안에 빼곡히 적힌 작사 작곡 노트들을 한뭉치 집었다. 한장 한장에 날짜가 적혀있었고 그 아래에는 일기 대신 악보나 가사가 적혀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구상한 노래를 이곳에서 연습을 해. ” 그리고는 창문을 열더니 빌딩 외부에 위치한 화재 비상용 계단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아슬아슬한 난간에 기대어 부들부들 떨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Etta James의 At Last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 노라가 어느새 창틀로 다가와 앉아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내 앞에서 육성으로, 그렇게 쩌렁쩌렁한 소리로, 노래를 불러준 적이 없었다. 뻥뚫린 바깥 공기로 퍼져나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하지만 시원하고, 울림이 있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부른 용기의 노래가 샌프란시스코에 널리 울려퍼진 것인지, 하나 둘 씩 원하던 일들이 켈리의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Fire라는 밴드의 객원 보컬이 되어 크고 작은 바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래퍼나 기타리스트와 콜라보 무대를 열기도 한다. 요가강사로서 그녀는 힙합 요가를 비롯해 세군데에서 요가를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내 일상은 다른사람들과 정반대야. 다들 출근하기 전에 요가 수업을 오니까 새벽에 일을 하고, 공연들은 주로 퇴근 시간 후 늦은 밤에 열리지. 그래서 남들 일할때 나는 자유시간이 많아. 그동안 곡을 쓰고, 노래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하고 그러지.”
아침의 명상과 요가는 그녀의 음악활동에 정신적인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저녁의 음악활동은 요가 수업에 쓰일 새로운 노래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그토록 흥미로워하던 “힙합요가”와 수업을 흥미롭게 만드는 켈리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녀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과 인생의 스토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요가강사 겸 가수로서의 일상은 남들과는 다른, 하지만 그만의 완벽한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 주말, 켈리는 인디 콘서트장에서 열리는 밴드공연에 나를 초대했다. 무대 위에서 맥주잔을 한 손에 들고 사람들과 대화 하듯이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아침에는 요가를 통해 몸으로, 저녁에는 노래를 통해 소리로 사람들과 소통하기에 그토록 그녀가 따뜻하고 개방적이면서도 차분한가 싶었다.
혼란과 젊음과 망설임과 요가와 음악과 힙합이 공존하는 그녀의 삶은 5분의 짧은 다큐멘터리로 담아내기에 쉽지 않았다. 나는 밤새도록 수많은 영상조각들을 짤랐다 붙였다 이리 옮겼다 저리옮겼다 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 작업이 참 즐거웠던 이유는 그 어느 부분의 인터뷰를 재생해보아도, 그녀는 어리지만 참 멋진 인생을 살아왔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내 인생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가끔 눈을 감고 나의 다큐멘터리를 상상해본다.
*켈리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https://soundcloud.com/kelandia 저는 Wolf라는 자작곡을 추천합니다.
*위의 이야기가 담긴 저의 5분 다큐멘터리가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눌러주세요 :) 엉성하더라도 이쁘게 봐주세요. 피드백 환영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독자님과의 소통은 큰 힘과 영감이 됩니다. 궁금하신 점 댓글 달아주시면 성실히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커리어 테라피]는 용기와 소신을 가지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본인이나 지인의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으시다면 juwon.kt@gmail.com이나 인스타그램 juwon.kt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