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꿈보다 용기가 먼저 필요하다

변화를 꿈꾸지만 용기가 1% 부족한 당신에게 (feat.환경공학연구원)

by Juwon
photo credit: Allison Taylor


회사를 다닌지 2년 째 되던 그 날, 앨리슨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관심있던 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통지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쿨하게 사표를 냈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모두들 걱정 없이 그녀의 결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친구들과는 해방의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누구도 그녀가 직장도 학업도 없는 상태로 3년 가까이 지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그녀 자신은.


회사를 그만둔 후의 계획은 완벽했었다. 학사 전공이었던 Civil Engineering(토목 공학)을 바탕으로 2년간 도시 수자원 관리의 플래닝과 디자인이라는 전문 업무분야를 구축했으니, 이제 대학원에서 수자원 관리 공학에 ‘사회학’ 까지 결합된 이 특별한 석사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나면, 지난 2년동안 숨막히는 서류더미 넘치는 책상위에서 몽상했던 것처럼 사회공학 전문가로서 현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 특별한 석사프로그램이 그녀의 기대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첫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이건 아니란걸 깨달았지. 나는 사회학을 배우고 싶었던 공학도였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모두 공학을 배우고싶은 인문학도들이었던거야.”


프로그램은 주류의 의견과 지식수준에 맞춰갈 수 밖에 없었고, 그녀는 학기 첫 주, 자신이 4년전에 대학 수업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공학원리를 또박또박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는 교수님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1주일만에 대학원을 떠났다.




그리로 부터 3년이 흐른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의 묵직함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졸업 후 약 두 달간 있었다. 밤새도록 이력서를 써서 문이 열려있을지 닫혀있을지조차 모르는 그 회사들에 무조건 뿌려댔고, 그러다 잠들고서 아침에 늦게라도 일어나면, 늦게 일어난 내 자신에게 게으르다고 화를 냈었다. 앨리슨의 그 ‘암흑의 3년’의 2년차에 그녀를 만났을 때 나의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떠올라 안부를 묻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앨리슨과 1년만에 재회했을 때, 나는 그 당시의 힘들었을 시간들을 이제는 추억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그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말들도 이제는 영웅담의 일부처럼 묻고 답을 들을 수 있을것 같았다.


allison-2.jpg photo credit: Allison Taylor


그녀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 후회한적 없었는가’ 였다. 나에게는 앨리슨과 비슷한 상황 및 이유로 인해 몇년 째 회사를 그만둘지에 대해 고민하는 친한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에 로망하던 것과 실제 회사에서 맡게되는 업무 내용은 달랐으며, 여러 상사들이 서로 자기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들이미는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장님처럼 방향감각을 잃으며 지쳐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 그 친구가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1. 그래도 남들이 인정해주는 대기업이고 2. 그만두고 나오더라도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앨리슨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건 정말… 각자의 가치에 따른 선택이니까. 난 옳고 그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야. 대기업이 주는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에게는 나의 직장과 업무가 훌륭했지. 그런데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어. 후회? 3년간 아무리 힘든 순간이 있어도 후회는 해본적 없었던 것 같아.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때 내가 겪게 될 후회가 더 끔찍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음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그곳에 남아 몇 년이고 일해서 3년 후에도 변함이 없는 내 자신을 발견 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설령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기르고, 대출금을 갚느라고 당장 그만둘 여유가 없는 상황을 상상해봐. 적어도 난 당시에 아무런 빚도, 책임도 없었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어린 나이었잖아.”


allison-3.jpg photo credit: Allison Taylor


앨리슨은 나름 3년을 알차게 보냈다고 말한다. 회사 다닐때 열심히 모아둔 돈 덕분에 틈틈히 여행도 다니고, 책도 원없이 읽고, 이제 막 태어난 조카를 열심히 돌보아주었다. 그 시간 동안 아무래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올 때였단다. 처음에는 잘 그만뒀다고 응원해주던 친구들도 시간이 갈수록 왜 그 좋은 안정된 회사를 그만뒀냐고 자신의 일인냥 후회를 하는가 하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일을 못구했냐고, 도대체 계획이 무엇이냐고 부모님인냥 질문을 해댔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먹고 계획한대로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님은 앨리슨은 그 시간을 통해 분명히 배웠다. 그녀가 계획했던 대학원 박사과정은 실패로 끝이났고, 지금의 새 직업은 그 전에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북극에서의 기상청 연구원’ 이니까.




allison-4.jpg photo credit: Allison Taylor - 캐나다 북극기지에서 앨리슨의 모습


그녀는 이제 북극에서 매일 기상청의 예보를 위한 ‘기상풍선’을 쏜다.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 우리가 거의 쳐다보지도 않을 캐나다의 저 북쪽 꼭대기 어딘가가 그녀가 이제 1년의 절반을 보내는 곳이다.


“캐나다 환경부 소속 공무원직이야. 무직상태 2년만에 처음 공고가 떴어. 여느 공고가 그렇듯 5줄 정도의 짧은 직무소개가 전부였지만, 처음으로 아 이게 내가 하고싶은 일이구나 라는걸 직감했었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에세이에, 시험에, 면접에, 또 시험에 면접… 합격통지를 받는데만 1년이 걸리는 아주 긴 여정이었어.”


학연, 지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철저히 실력으로 공정하게 인재를 뽑는 것이 우선시 되다보니 평가절차가 많아 캐나다의 공무원 선발 과정은 1년 안팎이 걸린다. 공직도 많지 않아서 상위 5명 정도에는 들어야 취업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정도다. 앨리슨은 그 안에 들었다.들어가는 문이 좁은 만큼, 한번 소속이 되면 안정성이 보장된다. 추후에 넓은 범위에서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앨리슨이 지금 크게 만족하고 있는 이유도 그 중 하나다.


“엔지니어로서 책상 위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회사를 나왔던 만큼, 지금 이 거대한 자연속에서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몸소 기계를 만지고 관리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 더군다나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3개월동안 일한 후에 3개월동안 휴가를 받는 로테이션 시스템이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한 5년 후 쯤 가정을 꾸리고 나면 로테이션을 계속하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땐 다른 부서로 옮겨서 일을 해보려고 해.”


만약 이 부서에 계속 남아 몇년이고 일을 한다면, 그녀는 승진을 해 높은 매니저 자리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그녀의 욕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승진을 하여 주요 업무가 실무가 아닌 관리가 된다면 ‘필드’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순간 오로지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좋아 승진되기를 거부하고 계속 실무에 남아있다는 실리콘밸리의 장년층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allison-5.jpg Photo Credit: Mike Elsasser




사실 내가 어느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지는 커리어 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더욱이 이것은 내가 직접 직무를 일정 시간동안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깨닫기 힘든 문제이다. 부품을 뜯어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아 엔지니어가 됐지만, 현실은 컴퓨터 문서만 들여다보아야 할 수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내겠다고 마케팅 부서에 들어갔지만, 엑셀파일로 세일즈 실적만 관리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인생 선배들은 결국 그것이 현실이니 인정하고 견뎌내야 한다고, 그래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만약에 그 높은자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 것은 알지만 꼭 ‘나의 현실’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요즘 청년들은 취업난을 외치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1년내 퇴사하는 이들이 많다며 통계를 제시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근성이 모자란 청년들을 나무라는 댓글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앨리슨은 2년만에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1주일만에 대학원을 그만두었으니 근성이 모자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그들에게 근성을 요구해야 하는 때는 안맞는 업무, 회사, 환경에서 버티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그 것’을 찾는 과정에 놓여있을 때이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의 초기증세이다‘ 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발언이 생각난다. 나의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때로는 나의 과감한 결정을 통해 나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동안의 고통과 예측할 수 없는 소요시간에 대한 조바심은 자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임을 앨리슨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묵묵히 견딜 수 있었나보다.


앨리슨은 이제 자신의 세계를 찾은 것 같았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자신과 함께 북극에 머무르고 있는 군부대 친구들과의 얼음 위 마라톤에 대해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하며 다음 시즌을 위해 곧 시작될 트레이닝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allison-6.jpg Photo Credit: Allison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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