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속에서 혁신을 발견하는 희망에 대하여
L의 뉴요커다움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맨해튼의 거리 위에서 택시를 부를 때였다. '좀 추운데' '영화 보러갈까?' '아 그 동네에 그 요리 잘하는 집 있는데' '디저트 먹으러갈까?' 따위의 욕망의 바람들이 대화 위에서 충동적으로 튀어나올 때면 그는 주저없이 인도의 가장자리로 나아가 흐름이 빠른 강물에 낚시대를 던지듯 손을 뻗었다. 그의 손짓에 NYC 로고를 단 노란 택시 한 대가 금세 우리 앞에 섰다. 택시기사는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L역시 단도직입적으로 '이스트 빌리지요. 2번 애비뉴가 위 14번 가로 가시죠' 하는 식으로 목적지를 말했다. 1달러 피자를 주식으로 삼아가며 생쥐들과 함께 지하철로 하루 24시간 도시를 헤매고 다녔던 장기 여행객의 눈에 택시를 손짓 하나로 소환해 정확히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뉴요커는 슈퍼히어로나 다름없어 보였다.
L의 슈퍼파워가 효력이 다했음을, 아니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동네 놉 힐(Nob Hill)의 어느 언덕 위에서 였다. 그때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날씨의 변덕에도, 별안간 눈앞에 들이닥치는 가파른 언덕이 즐비한 도시 지형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샌프란시스코 새내기였다. 점심 식사 뒤 소화할 겸 정처없이 산책길에 올랐다가 어느새 등산가들 처럼 거칠게 숨을 쉬며 다리의 모든 근력을 활용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세찬 바람이 얼굴을 갈기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였다. 뜨거운 햇볕과 뭉게구름을 단 파란 하늘도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자 헌팅턴 파크(Huntington Park)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 가운데 자리잡은 고상한 분수의 물줄기는 사방의 건물들 사이로 속속 들이치는 성난 바람 앞에 맥없이 춤추고 있었다. "집에 가자"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외쳤다. L은 뉴욕에서와 같이 도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를 돕는 심정으로 좌우를 살피며 택시가 지나가는지 살폈다.
그런 상태로 30분을 보냈던 것 같다. 처음 10분은 기대에 젖어, 다음 10분은 택시가 더 많이 다닐 만한 거리를 찾아 다니면서, 마지막 10분은 오기로. 우리가 있던 동네 놉 힐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차이나타운이나 유니언스퀘어(UnionSquare)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케이블카 뮤지엄이나 그레이스 대성당과 같은 관광지도 있는 동네니 택시가 쉽게 다닐 법했다. 미국에서 4번째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도시의 바쁜 동네에서 어찌 이토록 택시가 드문 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에피소드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우리보다 두 달 먼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독일인 크리스가 마치 로컬들의 비밀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친구, 요즘은 앱으로 다 해결된다고. 리프트(Lyft)라는 앱을 다운받아 써봐." 리프트는 쉽게 말해 일반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차에 히치하이킹을 하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근처에 있는 차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 오는데, 그 차는 분홍색 깃털이 박힌 아주 커다란 콧수염 모양의 날개를 번호판 위에 달고 나타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을거라며. 다음 주말, 돌로레스 파크(Dolores Park)에서 피크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크리스의 말을 듣고 바로 다운 받아놓은 리프트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앱에 우리의 현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5분 정도 기다리니 정말로 콧수염 모양의 날개를 달은 앞머리에 달은 차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콧수염 날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풍성한 깃털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홍'은 차에 올라타는 것이 약간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핫핑크였다.
우스꽝스러운 콧수염 날개는 개인 운전자가 영업중임을 알리는 시각적 상징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리프트의 별난 문화, 그리고 조금 더 확장하면 2014년 당시 테크신의 낙천적이고 괴짜스러운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차에 올라탄 우리는 친구가 당부했던 대로 운전자에게 피스트범프(fistbump)를 제안했다. 스픽이지(Speakeasy*) 바에 입장하기 위해 문지기에게 암호를 말해야 하는 것처럼 일종의 문화 코드라나. 운전을 하고 있지 않을 땐 오션비치(Ocean Beach)에서 서핑을 하고 있을 것 같은 20대 남자가 우리를 돌아보더니 "브로" "왓썹"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먹을 맞대며 피스트범프에 응했다. 뉴욕에서는 목적지를 말하는 것 외에는 택시기사와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을 L은 이제 목적지를 말하는 대신 낯선 남자와 얼굴을 마주보고 주먹을 나누며 자신이 지난 7년간 뉴욕에서 연마한 택시소환 스킬의 쓸모없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Speakeasy: 미국의 금주법 시기 동안 불법으로 영업되었던 바, 혹은 그 시기의 은밀한 입장방식과 데코를 스타일화 한 현대의 바.
택시가 아닌 낯선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모는 차에 올라타는 일이 그토록 매력적일 줄 몰랐다. 택시를 탈 때보다 훨씬 친밀하고 인간적인 경험이었다. 어떤 운전자는 파일럿이었고, 어떤 운전자는 은퇴생활을 즐기는 할아버지였고, 또 어떤 운전자는 대학등록금을 감당하려고 수업이 없을 때마다 운전을 하는 버클리 대학교 학생이었다.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레스토랑, 여름 휴가 계획, 주말에 주로 하는 취미, 요즘 즐겨보는 쇼가 주요 주제였다. 어떤 운전자들은 인생의 철학이나, 삶의 감사함, 인간이 겪는 고통의 필연과 같은 심오한 주제를 끌어내는 재주도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모두가 테크업계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친구들은 피스트범프가 어색해서 리프트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금방 피스트범프 리추얼에 익숙해졌다. 이제 막 낯선 도시에 이주한 이방인에게 그 괴짜스러운 상호작용은 특정 로컬 문화에 참여한다는 일종의 소속감마저 안겨주었다. 피스트범프를 하며 겸연쩍게 나누는 미소도 좋았다.
차를 몰고 다니지 않았던 뉴요커와 서울 뚜벅이로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타이밍은 천운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왜 택시는 쉽게 잡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명쾌하게 답해주지는 않았지만 고질적인 문제임을 모두가 인식하기라도 하는듯 리프트, 우버(Uber), 윙즈(Wingz), 사이드카(Sidecar) 등 라이드셰어(Rideshare) 서비스 스타트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줄을 지어 탄생하고 있었다. 물론 라이드셰어 뿐 아니라 의식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편리함을 프로덕트로 삼는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시대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스타트업의 최초 요람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라이드셰어 서비스 스타트업 만큼은 유난히 샌프란시스코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버와 리프트와 강렬한 경쟁을 하다가 백기를 든 라이드셰어 서비스 모델의 창시자 '사이드카(Sidecar)' 역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어졌으니 도시 자체가 라이드셰어 서비스의 뮤즈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사실 "택시를 잡는 일이 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쉽지 않는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왜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가"다. 서울과 뉴욕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택시보다 지하철을 타는 편이 더 편리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두 도시에서 살 때엔 택시에 대한 갈증을 특별히 느끼지 않았다. 피곤함이나 게으름의 크기가 지갑의 가벼움을 능가할 때, 아니면 L의 경우처럼 데이트 상대와 조금 더 신속하고도 로맨틱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비로소 택시가 매력적인 옵션이 될 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중교통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혹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발달된 도시를 논할 때 늘 상위권에 속해있기는 하다. 그러나 '걷기 좋다'는 말이 '걷기 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말이 잘 운영된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토지는 서울보다도 훨씬 작지만 동네마다 독특한 문화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동네 고유의 기후마저 존재한다. 산과 바다, 언덕과 대지, 상업단지와 주거단지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다. 도시의 동쪽 끝 베이브릿지(Bay Bridge)에서 서쪽 끝 태평양으로 향해있는 오션비치까지 가는데 차로 30분, 걸어서 세시간이면 충분하다. 걷는 동안 다양한 경치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걷기가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샌프란시스코가 맨해튼처럼 평평한 땅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길은 경사율이 30%에 달한다. 지하철이 도시에 잘 퍼져있으면 경사지형에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되겠지만, 문제는 정작 언덕이 많은 곳에는 지하철이 닿지 않는다. 우리가 뜻밖의 등산을 하고 있던 동네 놉 힐에도 지하철은 다니지 않는다.
대신 버스는 지하철과 페어링을 이루면서 도시를 더 넓고 깊숙하게 커버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다니는 버스들의 경로가 그려진 지도를 보면 못가볼 만한 곳은 없겠다는 자신감이 절로 생긴다. 그러나 이 버스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 문제는 버스 배차 시간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도시의 명성과 인프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다. 2023년 기준 1제곱킬로미터 당 도시 인구 숫자를 비교해보면 밀도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샌프란시스코는 6,713명, 서울은 약 16,027명, 뉴욕은 11,156명 이다. 높은 빌딩이 도시 전체에 흩져있는 서울 뉴욕과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다운타운 지역을 제외하고는 6층 이상의 높은 건물을 보는 일이 드물다. 단독주택만 지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된 동네도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버스 노선들이 30분 이상의 배차간격을 둔다. 그런데 그 마저 어쩐 일인지 규칙적이지 않다. 택시를 타면 30분 만에 도시를 횡단할 수 있는 곳에서 30분 동안 버스 하나를 기다린다는 것은 굉장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버스 노선을 한번 갈아타야 하는 상황에서 다음 버스의 도착시간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예상시간 보다 두 배 더 오래 소요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두번째 문제는 버스의 쾌적함이다. 티켓 부스를 통과해야 하는 지하철과 달리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는 무임승차가 제법 쉽다. 물론 무임승차로 한 이들 중에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버스를 범죄현장으로 탈바꿈 해버리는 악의적인 이들이나 버스를 (말그대로) 화장실처럼 이용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자리에 앉을 때마다 오물이 묻어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하고, 휴대폰을 들고 앉아있을 때 누가 채가는 일이 없도록 양손으로 꼭 잡는 것이 버스 이용의 기본 애티튜드다. 한마디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타야하는, 그닥 쾌적하지 않은 경험이다. 30분동안 기다려서 겨우 탄 버스가 오물 냄새로 가득하다면, 혹은 나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퍼붓는 정신이상자를 만난다면, 다음 번에는 차라리 만원을 더 쓰더라도 택시를 타야겠다는 결심이 생기는거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버스를 아예 타지 않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다.
카페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이 자신을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라고 소개하길래 우버와 리프트가 태어나기 전에는 택시를 어떻게 이용했냐고 묻자 그는 쏜살같이 설명했다.
"길거리에서 손으로 택시를 잡는 건 도시 내에서도 정말 소수 블록에 블과하고, 대부분의 경우 콜택시를 이용했어요. 전화를 걸어 택시 매칭을 받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지만, 기본 30분을 기다려야 했죠. 그리고 한 번은 고등학생 아들의 학교 픽업을 갈 수가 없어서 콜택시를 불러주었는데 택시가 아들을 보더니 그냥 가버린 경우도 있어요. 어린 아이가 나와있으니까 돈을 내지 못할거라고 지레짐작 해버린거죠."
서비스 혁신에 소홀했던 택시 업계의 안일함과 엄격하고 까다로운 택시 영업 허가증 획득 절차 사이에서 택시는 샌프란시스코의 불완전한 대중교통 시스템의 완벽한 보충대안이 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전화 연결이 닿지 않는 콜택시와, 버스 배차 시간표를 어기는 버스와, 높은 언덕길을 매일같이 대하느라 지친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야망이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빼어난 코딩스킬을 갖추고 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라이드셰어는 동시대의 골드러쉬 산업이 되었다. 수요가 높아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풀타임 드라이버로 전향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리를 알지 못하는 타 지역 사람들마저 몰려와 운전자 역할을 자처했다. 낯선 지리에 길을 잃거나 사고를 내곤 했다. 승객이 직접 나서서 구글맵보다 더 시끄럽게 길안내를 해야하기도 했다. 도시 교통의 혼잡함을 완화하고 탄소발자국을 줄인다는 라이드셰어의 명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리프트의 콧수염 날개는 점차 풍성한 깃털을 잃어가고 있었다. 날개의 사이즈도 점점 작아졌다. 언제부턴가는 번호판 위 자리에서 물러났다. 스케일링(Scaling)*이라는 스타트업 용어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던 시기였고, 스케일링을 하는 데 있어 털복숭이 분홍색 콧수염은 그들이 흔히 말하는대로 "효율적이지 않은" 사업 비용이었을 것이다.
콧수염이 디자인 리뉴얼을 거쳐 매끈하고 미니멀한 디지털 로고로 탈바꿈하였을 무렵 리프트 운전자들은 더이상 승객과 피스트범프를 나누지 않았다. 신뢰와 인간미의 상징이었던 피스트범프는 일부 배드 플레이어, 그러니까 성추행과 스토킹을 시도하는 운전자나 언어 폭행과 금품갈취를 서슴없이 하는 승객으로부터 사용자들이 앓는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수많은 경쟁사들이 하나 둘 꼬리를 내리고 마침내 리프트와 우버 양자대결의 구도가 되었을 즈음엔 이용가격 역시 크게 뛰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경로가 비슷한 다른 승객과 차를 공유하는 대신 가격이 더 저렴한 셰어(Share) 서비스가 추가되었다. '비슷함'을 정의하기 위해 맵 알고리즘이 최선을 다해 승객들을 매칭해주었지만 승차 시간이 두배 세배로 늘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리프트/우버 셰어를 했어.' 가 약속장소에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흔한 핑계 어구가 될 정도였다. 사용자들이 가랑비에 옷젖듯 조금씩 라이드셰어링 서비스의 불편함에 익숙해져가고 있을 무렵, 공룡같았던 택시산업을 물리쳤던 유니콘은 또다른 공룡이 되어 있었다.
*Scaling: 스타트업에서 '스케일링(scaling)'한다는 것은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원, 인프라, 프로세스 등을 확대하여 더 많은 고객을 서비스하고 더 큰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 단순히 매출을 늘리는 것을 넘어, 사업의 모든 측면을 효율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ChatGPT)
그러다가 별안간 도시가 멈추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륙 소식에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어느 지역보다 앞장서서 도시 전역 자택대기(Shelter in Place) 발령을 내렸다. 사람들이 재택 근무에 익숙해질 무렵엔 캘리포니아 사방에서 산불도 났다. 판데믹은 미국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유지되었다. 시내 교통 버스와 전차를 관리하는 뮤니(Muni)와 베이지역 전역을 오고가는 바트(Bart)는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다. 낯선 사람과 공기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극도로 치솟은 상황에서 낯선 사람과 차를 타야하는 라이드셰어링 서비스가 잘 될 리도 없었다. 발이 묶인 채 집에 갇힌 사람들은 교통 수단 뿐 아니라 인생의 방향까지 재고하기 시작했다. L과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L의 회사 출퇴근 수단에 불과했던 작은 자동차를 가지고 로드트립을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주말엔 도시 속 산과 바다를 찾아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녔다. 소울 서칭의 시간이었다. ’그래, 이제 아이를 가질 시기야.‘ 가 우리의 결론이었다. 우리가 판데믹 베이비붐에 동참하는 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어디에선가는 또다시 야망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빼어난 코딩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혁신적 이동수단의 변혁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리프트와 우버를 '물리칠' 차세대 유니콘, 자율주행 택시였다.
L과 내가 더이상 충동적으로 리프트를 부르지 않게 되었을 때, 디저트 하나를 먹겠다고 즉흥적으로 다른 동네로 넘어가지 않았을 때, 우리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캘리포니아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거부했던 운전대를 쥐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소형 일렉트릭 SUV를 구매하고 뒷자석에 카시트를 단 채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들은 나의 운전연수 동료들이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웨이모(Waymo)와 아마존의 죽스(Zoox), 제너럴 모터스(GM)의 크루즈(Cruise)는 각기 다른 센서를 머리에 이고서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과 좁은 도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세번째로 운전하기 힘든 도시이자 최악의 운행 안전스코어를 획득한 도시 만큼 인공지능을 트레이닝하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땀이 흥건한 손을 운전대에 꼭 쥔 채 생각했다. 학습의 시간 동안 사람 운전자가 운전좌석에 앉아 주행을 감시하거나 통제했기에 완벽한 자율주행은 아니었다. 사람 운전자의 '주행코치'를 수료한 차들은 대기명단(웨잇리스트)을 통과한 소수의 사용자들만을 대상으로 택시 서비스를 제공했다.
신생아 육아에 허덕이던 우리가 부모로서 처음 단독 데이트를 가기로 결심했던 그 날이 그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었다.
Welcome LT (*남편 이름의 약자)
라는 전광판이 달린 하얀 재규어 세단 하나가 집 앞에 살포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우아한 외계인 같았다. "어머! 이거 대기명단(waitlist) 엄청 길다고 들었는데 언제 가입 승인을 받았어!" 나는 탄성을 질렀다. L이 휴대폰 앱으로 열기(Unlock) 버튼을 누르자 차문에서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차 안에서는 상냥한 로봇 목소리가 다시한 번 우리를 환영했다. "환영합니다(Welcome)." 뒷자석에 보통 환풍구가 있을 자리에 커다란 터치 스크린이 있는 것 외에는 일반 차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아, 물론 운전자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안전벨트를 채우자마자 스크린에 '주행 시작(Start Ride)'이라는 버튼이 떠올랐고, 버튼을 누르자마자 운전 핸들이 현란하게 돌아가며 운전을 시작했다.
뒷자석에 편히 앉아서 스크린을 통해서 지도와 경로, 교통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배경음악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고객지원팀에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버튼이 있는 것도 안심이었다. 차는 전기로 움직여서 고요했고 이상할만큼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웨이모는 우버나 리프트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우버나 리프트가 운전자에게 팁을 요구하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한 금액이었다. 웨이모는 악명높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사다난한 도로들을 유연하고 차분하게 해쳐나갔다. 우회전을 하거나, 차선을 변경하거나, 자전거에게 길을 양보해주는 방식, 돌발 상황에 멈칫하는 순간들 속에서 사람냄새마저 느껴졌다. 나는 그 초현실적인 경험에서 그 어떤 택시나 라이드셰어 경험에서보다 안전함을 느끼고 있다는걸 깨닫고 놀라고 있었다.
단 한번의 경험으로 웨이모는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를 대하는 방식, 더 나아가 이동에 대한 시선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자율주행 택시는 기존의 승차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운전자의 부재는 그동안 택시나 라이드셰어링 서비스의 운전자의 존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유발하게 하였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가 아무리 완벽하게 친절하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안내를 해준다고 할지라도, 또는 한마디 말을 섞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뇌가 인식하기에 여전히 친밀한 상호작용이었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나눠마시고 있는데다가, 나의 신체적 자유를 잠시 낯선 누군가에게 맡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콧수염을 단 리프트 차에 올라타 운전자와 피스트범프를 한 이래로 차를 타면서 이렇게 흥분한 적이 또 있었던가. 리프트 승차경험에서 낯선이와의 친밀한 경험 때문에 몹시 설레하던 우리가 10년 뒤 로봇과의 인간적인 경험 때문에 몹시 설레하고 있다면, 그것은 디스토피아적인 전개인 것일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짙게 틴트된 창 너머로 무인 운전 차를 구경하느라 발걸음을 멈추거나 사진을 찍는 행인들이 여럿 보였다. 그리고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세상이 디스토피아로 흐르고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의 눈치나 어색한 대화를 신경쓰지 않고도 로맨틱한 데이트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L은 뉴욕에서 데이트시절 택시를 잡았을 때처럼, 슈퍼히어로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