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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Sep 08. 2024

느리게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

샌프란시스코의 안개품은 언덕을 헐떡이며 오르다 깨달았다

평생을 서둘러 걸었다. 걸음이 느려진건 아이를 배 안에 품으면서부터다. 임신 초기부터 작은 언덕을 오르는 데도 금방 숨이 찼다. 하루종일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달콤한 음식을 먹는 상상을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단호하게 '하루 세번, 식후 30분'의 산책을 처방했다. 임신성 당뇨를 선고받은 이후로는 영양사 팀까지 붙어 나의 하루 일과를 감시했다.


동네 이름의 절반이 힐(Hill 언덕), 하이츠(Heights 고지) 아니면 밸리(Valley 골짜기)로 이뤄진 울퉁불퉁한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임산부의 산책이란 '산책'이라는 단어가 본디 암시하는 만큼 상쾌하고 가뿐한 일이 아니다. 해가 유난히 쨍했던 어느 오후에는 집에서 불과 도보 3분 거리 앞에서 L에게 전화해 SOS요청을 하기도 했다.




매사 조급했다. 열심히 걸어 더 빨리 도착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환상도 있었다. 키가 커서 조금만 속도를 내면 사람들을 금방 제치고 가곤 했으니 빨리 걷는 일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달갑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 분주히 이동하는 직장인들, 하루의 언제든 틈을 내어 땀을 흘리며 조깅을 하는 이웃들, 숨찬 기색 없이 열띈 대화를 나누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연인들 앞에서 나의 걸음은 답답하고, 비생산적이고,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말그대로 한 생명을 '생산'해내고 있는 시간에 걸음의 생산성을 따지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싶다가도 육아를 위해 하던 일을 내려놓기로 한 나의 선택이 지금의 굼뜬 걸음 만큼이나 나를 뒤쳐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로워했다. 느린 걸음 속에서 괴로워 했던 건 차오르는 숨보다도 무거운 몸 보다도 고독을 오롯이 마주하는 일이었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던 우리의 작은 거처


혈당 조절을 위해 식사를 하자마자 30분에서 한시간 씩, 하루 세번 산책을 했다. 우리가 그 당시 살았던 동네에도 '하이츠'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트윈픽스(Twin Peaks)로 다다르는 부드러운 등선 위에 알록달록한 집들이 삐뚤빼뚤 줄지어 서있는 이 작은 산동네에서는 어디서든 트윈픽스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수트로 타워(Sutro Tower)를 볼 수 있었다. 태평양에서부터 육지로 낮게 밀려드는 짙은 안개는 아침마다 수트로 타워를 감싸 안았다. 수트로 타워는 마치 안개로 만들어진 바다 위에 표류 중인 배 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산책을 나오면 어느새 안개는 머리 꼭대기 위로 솟은 태양에 눈녹듯 사라지고 벌거숭이 트윈픽스 봉우리가 선명하게 나를 맞이했다. 걷다보면 금방 더워져 입고 나왔던 바람막이 자켓을 벗었다. 안개와 태양을 번갈아 마주하며 산책을 반복했다. 머릿속을 뿌옇게 만드는 괴로운 생각 역시 태양 아래 안개처럼 나의 땀과, 걸을수록 달아오르는 볼 위의 열기와, 조금씩 거칠어져가는 숨결 위에서 서서히 녹아 사라지는걸 경험했다. 아이를 품는 시간 동안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 같이 무거웠던 걸음과 그 산책길은 인생의 속도가 내 의지만으로 조절되지 않는다는 걸, 답답하더라도 힘들더라도 느리게, 그러나 꾸준하게 가는 것이 서둘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안개가 몰려오는 아침, 트윈픽스와 우리 옛동네의 모습


Corona Heights. 언덕 산책에는 장점도 있다. 곳곳의 뷰가 끝내준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나면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세상이 아니라 어두운 상념에 갇힌 재빠른 걸음이야 말로 나를 고립시키고 있었다는 걸. 임신 후기를 맞이하여 병원 진료를 받으러 뒤뚱뒤뚱 걸어가던 길 거리 위 노신사가 그 사실을 나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방금 만난 낯선이가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한 단어로. "Congratulations." 한 눈에 나와 내 뱃 속의 아이를 보고 건넨 말이었다. 그는 내가 비범한 무언가를 이뤄내서가 아니라, 느린 걸음을 걸으며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나의 지금 이 그대로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그저 천사같은 노인과의 운명적인 순간이었나보다 했지만, 느린 걸음 속 길 위의 축복은 그 때 부터가 시작이었다. 슈퍼 계산대 점원도, 은행 직원도,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이도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거대한 몸으로 느릿느릿 걸으며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가 무섭게 나와 마주치는 수많은 행인들은 다정한 미소를 건넸다. 살면서, 특히 이방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사회의 따뜻한 시선을 받은 적이 있나 생각해보고 있노라면 나의 걸음은 자연스레 한결 느긋해졌다. 그리고 반성했다. 그동안 너무 빨리 걷느라 누군가와 미소를 나눌 순간을, 아이를 품은 다른 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넬 기회를 놓치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느린 걸음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서도 계속되었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는 기적같게도 바깥바람을 쐬면 금방 차분해졌다. 산책이 태교였던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바깥에 나와 유모차에 정착한 아이는 울음을 그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가장 곤히 잠을 잤다. 그 잠을, 그 평화를 오랫동안 지키기 위해 나는 골든게이트파크를 정복할 기세로 공원길을 샅샅이 뒤져가며 몇시간이고 걸어다녔다(걸음을 멈추면 아이가 깼다.) 비가 오는 날 마저 예외는 없었다.


Golden Gate Park


천천히 걸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더 풍부하게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기회를 만난다. 누군가와 연결될 기회, 마음을 오랫동안 어지럽혔던 질문에 대한 답안을 떠올릴 기회,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기회를 말이다. 아이를 배에 품었을 때처럼 거리 위 행인들과 공원 방문객들은 우리를 향해 다정한 미소와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아이의 작고 동그란 얼굴을 직접 보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는 거다. 인사는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졌다. 아이는 누군가에게는 아들의 30년 전 모습을, 저 멀리 타국에 살고있는 딸의 손녀를, 혹은 이제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행인들과 나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질문을 이어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것도 그런 만남들 덕분이었다.


신생아 시절동안 유모차 안에서 잠만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이는 우리가 걸었던 그 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혼자서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신통하게도 직접 길을 찾아나섰다. 아이는 앞장서서 이곳 저곳에 손가락질을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을 했고, 어떤 날에는 유모차 다리에 걸어둔 손잡이를 잡고 나와 같이 유모차를 끌었다. 유모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도 될만큼 오랫동안 걸을 수 있게 됐을 즈음에는 내가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손을 맞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키도 커졌다. "같이. 같이!" 아이는 손을 내밀며 외친다. 부엌에서 거실로 가는 그 몇걸음 마저 손을 잡고 가자고 보챈다. 어디를 걷든 아이와 보폭을 맞추느라 나의 걸음은 여전히 변함없이 느리다.


Tunnel Top Park


아이의 두번째 생일을 맞아 공원을 찾았을 때에도 아이와 나는 나란히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그날은 얼떨결에 게임 하나를 만들어냈다. 꽃을 찾아다니며 산책 경로를 만드는 게임이었다. "플라워!""꽃!" 아이는 꽃이 보일 때마다 흥분하며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꽃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는 유난히 데이지꽃을 좋아했다. 데이지꽃이 수를 놓은 잔디밭을 만나면 한참을 쭈그려 앉아 꽃을 헤매다 몇 송이 따서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예뻐 꽃을 아이의 귀에, 신발 끈 위에 꼽아주었다. 우리가 즐겨 찾는 식물원 앞 마당에는 계절마다 새로운 꽃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번 여름에는 캔들 락스퍼(Candle Larkspur)라는 이름의 보라색 꽃들이 한참 피어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키만한 꽃밭 속에 들어가 "젠틀" "젠틀" 을 되뇌며 꽃들을 밟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걸어다녔다. 그러다가는 마음에 드는 꽃들을 쓰다듬어주었다.



Conservatory of Flowers


지금, 나는 또 다시 작은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다. 덕분에 걸음은 훨씬 느려졌다. 이제 곧 손을 잡은 아이가 더 빨리 걷자고 나를 보챌지도 모른다. 아이의 두살 생일을 맞아 아이와 함께한 지난 2년과 첫 아이를 뱃속에 품었던 그 몇 개월의 느린 걸음들을 돌이켜본다. 잠 못 이룬 밤의 피로를 다스리느라, 아이가 발견한 저 멀리 다음 꽃을 쫓느라, 공원에서 만난 낯선이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느라 가뜩이나 느린 걸음은 훨씬 더 느려지곤 했다. 느린 주제에 경로도 몇번 이탈했다. 아니, 진작에 경로라는게 있었던가? 경로의 존재를 잊을 만큼 나는 길 위의 꽃내음이, 새들의 지저귐이, 사람들의 따뜻함이, 안개의 포근함이, 아이의 종종걸음이, 나의 손을 꼭 잡은 그 작은 손이 황홀할 만큼 좋았다. 느린 걸음 앞에서 여전히 이따금 조바심을 느끼고, 서두르느라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고, 때로는 안개같은 자욱한 상념에 빠질 지언정 우리는 계속 뚜벅뚜벅 걷고 있기에. 아이가 느린 걸음 속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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