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6일 아침 6시 50분. 시드니 울트라 마라톤 대회 SUM-80 출발선 앞이다. 실제 거리는 82 km이다.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여서 시드니의 7월은 한겨울이다. 해가 뜨지 않아 아직 어둑어둑하다.
보통 새벽에 자고 아침 10시나 되어야 일어나는 아들이 고맙게도 오늘은 아침 6시 전에 일어나서 나를 출발장소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옆에서 아들이 따뜻한 응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략 100여 명의 러너가 참가하는 것 같다. 함께 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응원 나온 가족 또는 친구들과 다정하게 모여 있거나, 혹은 혼자서 조용히 몸을 풀고 있다.
대회 이름에 트레일이라는 말이 없지만, 도로를 달리는 거리는 몇 백 미터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 산길이나 임도를 달린다. 전체 누적고도는 2,125 m이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누적고도 이천미터라는 게 어떤 의미란 것을.
지난 5개월의 시간이 펼쳐진다.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설렘 가득한 도전으로 시작했다. 대회 신청 전에 제일 멀리 뛰어본 게 42 km이니, 82 km는 거의 두 배이다. '42 km 도 엄청 힘든데 과연 그 먼 거리를 제대로 뛸 수 있을까? 하지만 연습을 차근차근 하면 할 수 있을 거야'를 나에게 되뇌며 대회 참가서를 냈다. 일을 저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수습되기 마련이니까.
훈련으로 약 1,000 km의 거리를 달렸던 것 같다. 출퇴근을 버스 대신 달려서 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시간이 부족할 때는 일요일 새벽 3:30에 모자 위에 헤드램프를 켜고 달리기도 했다. 5도쯤 되는 새벽 추위에 맞서, 머리, 귀와 목을 버프로 감싸도 연신 콧물이 나왔다.
드디어 출발시간인 7시가 다가온 모양이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좋은 기록을 내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을 했으니 완주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든다. 근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평온한 마음이다. 설사 대회 중에 다쳐서 완주를 포기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말이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출발선 앞의 러너들이 우르르 뛰어나간다. 나도 힘차게 두 발을 구른다.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