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울트라 마라톤 대회 82km에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대회 신청 소식을 성당 교우분들께 말씀드렸다. 마음속으로는 "대단하다"라는 반응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아니, 왜?"였다.
나는 대략 20년 전 처음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총 6번을 완주했다. 새로운 도전으로 '50대에 울트라 마라톤 완주'를 버킷리스트에 넣어둔 지 몇 년이 흘렀다. 60세가 되기 전에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었다. 손꼽아보니 올해 한국 나이로 58세, 만으로도 57세다. 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지인이 울트라 마라톤 100km 또는 100마일(약 160km)에 도전하며 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나와 동년배지만 그의 펄떡이는 젊음이 느껴졌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으니, 충분한 훈련 기간을 감안하여 약 5개월 후에 시드니에서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찾아보았다. 참가비가 호주 달러 350달러(원화 약 32만 원)로 만만치 않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시드니 울트라 마라톤 대회 SUM-80 부문에 신청했다. 이제 시작이다.
'기부천사' 가수 션이 라디오 스타에 나온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2시간 뛰고 방송 녹화하러 왔다며 웃으며 말했다. 장대비가 내렸을 텐데 말이다. 또한 매년 광복절마다 81.5km 마라톤을 완주하는 기부 캠페인 '815런'을 통해 독립유공자들을 기리고 후손들의 주거 개선을 위한 기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직장 상사가 떠올랐다. 그의 딸과 아들 모두 제1형 소아당뇨를 앓고 있다. 제1형 당뇨는 인체의 자가면역 반응으로 인해 췌장에서 인슐린을 전혀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대개 어릴 때 발병하고, 안타깝게도 치료제가 없어 평생 하루에 여러 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 병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천적 당뇨병인 제2형 당뇨와는 전혀 다른 질환이다.
그 직장 상사와 그의 자녀들, 그리고 제1형 당뇨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펀드레이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모금 목표액은 가수 션의 '815런'을 따라 815달러로 정했다. 마침 대회 날이 7월 말이니 광복절을 미리 기념한다고 억지로 끼워 맞췄다. '나는 얼마를 기부할까? 1km당 1달러가 좋겠다. 총 81km이니까 81달러(호주 1달러당 대략 900원이니까 약 7만 원 정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상사들과 동료, 그리고 친했던 예전 직장 동료들에게 펀드레이징 참여를 부탁했다. 바로 당일 많은 동료들이 따뜻한 응원의 말과 함께 흔쾌히 기부에 동참했다. 연봉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은 연봉과 상관없나 보다.'
그리고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동료가 제1형 당뇨를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통 제1형 당뇨는 어린이나 청소년기에 발병하는데, 그의 경우는 30대에 발병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허리춤에는 예전 삐삐보다 조금 더 큰 장치가 매달려 있다. 체내 인슐린 상태를 24시간 체크하고 인슐린이 부족할 때 자동으로 주사하도록 하는 장치다. 이렇게 바로 옆에 있었다니.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자녀들을 둔 예전 직장 상사도 "Excellent cause Scott! Thank you for effort and caring!"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내 영어 이름이 Scott이다). 펀드레이징 목표액을 채우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체 17명이 참여했고 총 모금액은 1,024달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