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새벽에 병아리가 깨어날까 싶어서 몇 번 일어났다 다시 잠들었더니 잔 것도, 일어난 것도 아닌 상태다.
병아리는 21일이면 부화한다는데, 25일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아이들이랑 병아리 호적을 정리했다. 첫째 병아리가 태어나면 둘째는 삼촌이 되고, 엄마,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왕할아버지, 왕할머니로 부르기로 했다. 둘째 병아리가 태어나면, 첫째는 고모가 되는 식이다. 깔깔깔 웃으며 아이들과 호적 정리는 끝났는데, 병아리는 소식이 없다. 끊임없이 병아리 부화기를 들여다보는 나를 보며 “엄마도 병아리에 꽤나 진심인 편이네.” 한다.
동네 이곳저곳에서는 손주(?)의 탄생을 묻는 안부가 오곤 했다. 신나서 답해주고픈데, 아직 안 나왔다고 말하게 되는 나도 힘이 떨어진다.
‘할아버지, 이번에도 실패인가 봐요.’라며 속상해하는 첫째를 위해 친정아버지는 지인 농장에서 유정란 13개와 병아리 모이를 잔뜩 구해오셨다. 박스로 병아리 집도 만들어주셨다. 속상해하던 첫째는 “엄마, 이번에 병아리가 안 나와도 슬퍼하지 않을래. 원래 생명이란 태어나기 어려운 거잖아. 친구 병아리는 운이 너무너무 좋아서 태어났던 거야. 이번에 안 태어나면 다시 하면 되지.”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이번 병아리는 조금 천천히 태어나는 종자인 것 같다’라며 4주까지도 기다려보라는 지인의 얘기가 있던 그날 밤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자던 나를 깨웠다. 병아리가 깨어나고 있다며 말이다! 삐약삐약 소리가 집안을 경쾌하게 울렸다. 작은 구멍을 깨며 나오려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한참 걸릴 것 같아 마저 자려는데, 삐약삐약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마치 태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불안했던 첫째의 임신 때 기분이 들었다. 병아리야, 살아 있는 거니? 그날 밤에는 꿈을 꾸었다. 병아리가 네 마리나 태어나는 꿈이었다. 주롱새 공원이 옆에 있고, 영화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세상 정신없는 꿈이었다.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삐약삐약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삐약삐약 소리는 끝내 사라졌다. 병아리의 움직임도 느껴지질 않는다. 여리고 여린 병아리가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 그만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내가 너무 신기하다고 자꾸 열어보고 동영상 찍고 소리 질러서일까. 병아리 혼자 힘들게 버텨왔던 시간이었을 텐데,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기만 할걸. 후회가 되고 또 되었다. 자꾸 환청이 들렸다. 귓가에 삐약삐약 소리가 울렸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계속 병아리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 것만 같았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파각을 시작했던 병아리는 계란 하나만 달라던 둘째의 요청에 첫째가 제일 부화가 안 될 것 같은 것이었다. 둘째는 그 계란에 본인의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써넣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첫째는 그 계란만 빼고 검란하고, 전란 했다. 애정도 쏟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계란이 가능성을 보이자 내게도 묘한 울림이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어쩌면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병아리 부화를 위한 온도와 습도만 맞춰주는 기본적인 환경을 갖추어주되 내버려 두었어야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안전과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나머지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느꼈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는 욕심을 완전히 버렸다. 온전히 첫째의 손에 맡겼다. 검란도, 전란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첫째와 계란들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