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
봄이 되면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이 있다. 작년에 폈던 그 목련은 아파트 그늘 아래서 싱싱하게 피려나? 안양천 그 벚꽃은 여전히 눈처럼 흩날리겠지?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들으면 이제는 옛일이 생각나지 않으려나? 이런저런 상념 끝에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찾아보는 일이 있다. 프로야구 개막일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팀의 첫 경기 상대팀의 전력을 살펴보는 일이 그것이다.
언제 우승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 팀을 꽤 오랫동안 응원해왔다. 오프 시즌에 열심히 운동할 테니 내년을 기대해 달라는 선수들의 파이팅이나 올해는 잘할 거 같으니 믿어보자는 언론 기사는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묻히거나 사라진다. 거의 매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야구 원년 팀이라는 명예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명예만 남는다.
한국 프로야구의 태생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었고, 뛰는 시간보다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더 긴데 그게 무슨 스포츠냐며 무시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의 야구 관람 역사도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좋아했던 선수들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코치와 감독으로 위치가 변했고, 사촌 동생이나 조카뻘 되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프로’라는 명함을 달고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팀이 최근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웠다. 우리 팀으로 보면 한 이닝 최다 실점, 상대팀으로 보면 한 이닝 최다 타석, 최다 안타,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이제 프로에 데뷔한 2000년생 청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빵빵 야구방망이를 휘둘렀고, 한 이닝에서 16점을 잃을 동안 우리 팀 투수와 수비수들은 그 시간을 그라운드에서 버텨야 했다. 아웃카운트 3개. 한 이닝에서 3명을 아웃시키면 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아 무한 루프 블랙홀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들도 나도.
물론 우리 팀은 그 시간을 버티고 나서 경기에 졌다. 처참하게 패했다. 갑자기 우리 팀 선수들이 미쳐 날뛰며 큰 점수 차를 뒤집고 경기를 이긴 해피엔딩이었으면... 그날 그라운드에서 멍하게 상대팀 타자를 향해 공을 날리던 투수가 생각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투수는 그날도 역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연습을 하고 컨디션을 조절해 마운드에 올랐을 것이다. 매번 똑같은 루틴을 반복했을 테지만 결과는 언제나 예측불가다.
우리 앞은 그날의 경기처럼 망한 경기를 버텨서 마무리해야 하는 날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고, 그 망한 경기를 복기해서 다음 경기의 버팀목으로 만들어야 하는 날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버티는 게 오히려 지옥 같은데 그 시간을 꾸역꾸역 견디라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버텨야 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명확하다면 확 때려치우지 말고 한 번쯤은 끝까지 버텨서 마무리해보자. 어떤 형태로든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때때로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