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Happy Birthday
일상 이야기
by 바람 타는 여여사 Apr 29. 2019
어딘가에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어서 증명서를 뗀 적이 있다. 주민등록등본이었는지 가족관계 증명서인지 지금은 사라진 호적등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발급된 서류에서 나는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었다.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알린, 즉 동사무소(주민센터)에 나의 출생을 신고한 날짜와 내 동생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동사무소에 신고한 날짜가 동일한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고서도 2년이 지나서야 내 동생과 나를 같이 세상에 알린 셈이다.
귀하고 예쁜 딸이라고 했던 그때까지 아버지의 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미안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셨고, 엄마는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다며 대충 얼버무리셨다. 뭐 그렇게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럴 수 있지.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해서 딸자식이 태어난 날짜에 맞춰 동사무소까지 가는 일을 잊을 수도 있으니까. 가끔 나한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면 이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냈다. 그만 우려먹으라는 타박과 함께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넘게 챙겨 오던 내 생일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날짜를 음력으로 계산해서 생일상을 차려주셨는데, 알고 보니 날짜가 하루 다른 것이다. 엄마에게 캐물어서 알게 된 더 충격적인 사실은 양력 날짜가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집에서 나를 낳았다고 했다. 병원에 갈 돈이 없었던 듯하다. 누군가 따로 날짜를 기록해두지도 않은 듯하고, 엄마는 그때 정신이 없었으니 주민등록번호로 박힌 양력 날짜조차 가물거린다는 것이다. 음력 날짜가 맞는지, 양력 날짜가 맞는지만 결정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셨다. 여기까지 전개되면 이제 혼란스럽다. 나는 몇 월 며칠에 태어난 것인가...
그래서 나는 스스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양력이 맞을 거야.
달력을 보면 양력 글씨가 크니까.
설마 음력을 기억하지는 않으셨을 거야.
그 후로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내 생일을 알려줄 때는 양력 날짜를 말한다. 음력은 나조차 계산하기 불편하니까. 엄마는 여전히 음력 날짜로 생일을 챙겨주신다. 물론 수정된 음력 날짜다. 어떤 해에는 음력을 챙겼는지 양력을 챙겼는지 헷갈려서 두 번 말씀하시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에게 있어 생일은 1년에 한 번쯤 치르면 좋을 ‘어떤’ 날짜가 되었다.
그래도 빠트리면 서운하다.
서운하니까 생일 케이크도 있어야 한다.
탐스러운 케이크에 초를 꽂아서 훅 불어줘야 한다.
박수도 짝짝 친다.
누군가 촌스럽다고 하더라도 ‘어떤’ 날에 대한 나의 소소한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