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는 요리를 하는 자신의 공간 안에서 주변 이웃들과 소통한다. 영혼의 음식인 주먹밥(오니기리)을 만들고, 진심과 정성을 더한 커피를 내린다.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으로 사치에는 이웃들과 상처를 치료하고 마음을 위로받는다.
이 영화를 볼 때 놓치면 아쉬운 것은 일본 음식만이 아니다. 영화 곳곳에는 핀란드의 자연이 녹아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거나 자연을 축소하여 식당으로 옮겨온 모습이거나 둘 중 하나다. 하늘로 뻗어 나가는 자작나무 숲, 맑고 파란 하늘, 하얗고 몽글한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호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식당 한쪽 벽면을 차지한 가로수를 닮은 초록색 작은 나무들, 사치에가 요리하는 긴 탁자 중앙에 자리한 하얀색 꽃다발은 자연을 축소하여 옮겨온 듯하다.
그중에서 사치에의 모습 뒤로 카메라에 잡히는 하얀색 꽃다발은 그녀를 닮았다. 투명한 병에 꽂힌 하얀색 꽃다발은 사치에의 소박함과 꼿꼿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식기 사이로 약간 어색하게 서 있는 모습조차 식당에 사람들이 와 주기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처지 같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주인공의 감정과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꽃병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피스(centerpiece)_ 식탁의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고 우아하게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촛대, 꽃꽂이, 꽃다발, 조각품 접시 등이 놓인다.
난생처음 꽃꽂이 강습을 받았다. 선생님이 꽃과 부속품을 다 준비해 주셨으니 꽃꽂이 맛보기를 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선생님은 센터피스 방법으로 꽃을 꽂는다고 했다. 식탁에 앉았을 때 눈높이보다 조금 낮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위치에 놓이도록 꽃을 장식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화병에 비닐을 깔고 오아시스(물을 품을 수 있는 꽃꽂이용 초록색 폼)를 넣은 후 원하는 형태와 방향으로 꽃을 꽂으면 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정형화된 방법을 말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보기 좋게 꽃을 꽂으면 된다고 했다. 꽃대를 자를 때는 꽃이 물을 많이 먹을 수 있게 사선으로 자르면 좋다고 했다. 우리가 사용한 꽃과 잎은 다양했다.
Green: 루스 커스, 유칼리툽스
Mass: 작약(핑크, 자주), 클래식 센세이션(미니 장미)
Filler: 리시안셔스(화이트), 스타티스(연보라)
Line: 귀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꽂았다. 마음대로 꽂았는데, 생각보다 멋스러웠다. 꽃을 꽂는 동안 머릿속은 맑아졌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꽃다발 속에 묻힌 느낌이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워요. - 영화 <카모메 식당>
따뜻하고 맛있는 식탁에 꽃 한 송이 올려두는 것으로도 슬프고 외로운 생각이 줄어들 것 같다. 사치에는 그런 마음으로 식탁에 꽃다발을 올려놓지 않았을까. 꽃향기가 나를 감싸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작은 기쁨을 누려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