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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지기 전에는 어렵다

야구 이야기

by 바람 타는 여여사

5월 8일 KT와의 수원 경기 중 7회 초 상황.


54번 선수는 중견수 뒤쪽 담장 앞에 떨어지는 2루타를 쳤고, 1루에 있던 7번 선수는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홈으로 들어왔다. 점수는 3 : 5. 여전히 KT가 앞선 상황이었다. 7회 초 2 아웃, 10번 선수가 우익수 앞 안타를 쳤고 2루에 있던 54번 선수는 달려서 홈으로 들어왔다.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KT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확인 결과 다행히 원심과 같은 세이프였다. 홈에서 접전이 일어난 상황이 아니었는데 KT 감독은 왜 합의 판정을 요청했을까?


54번 선수는 원래 발이 빨랐기 때문에 KT 감독의 이의 제기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비디오에 등장한 54번 선수는 3루를 지나고부터 홈까지 들어올 때 뛰는 속도를 천천히 줄였고, 외야수가 던진 공은 정확히 포수 미트에 들어갔기 때문에 KT 감독은 홈에서의 세이프를 의심한 것이었다. 54번 선수는 자신의 발을 믿었기 때문인지 저 정도 안타에는 이 정도 속도로 뛰어도 된다고 스스로 판단한 듯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KT 외야수의 송구가 빨랐고, 홈 근처에서 당황하여 급히 뛰다 보니 결국 비디오 판독까지 이르게 되었다. 방송사 카메라에 비친 54번 선수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심장이 쿵쾅거렸을 것이다. 좀 더 빨리 뛰는 건데... 혹시나 아웃이면 어쩌지...


5월 8일 경기에서 우리 팀은 졌다. 앞선 경기도 졌고, 그 앞선 경기도 졌다. 7연패를 당하는 중이었다. 연패를 당하는 동안 선수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 기사 역시 그렇게 뿌려졌다. 하지만 5월 9일, 10일, 12일 경기에서 선수들의 플레이와 인터뷰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선수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겠지만, 선수들 개개인의 머릿속은 복잡했던 것 같다. 타자들은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투수는 공 1개를 더 던지기 위해, 포수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 1개를 더 밀어 넣기 위해, 수비수들은 공 1개를 더 막기 위해 악전고투한 투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5월 9일 수훈 선수 인터뷰 때 8번 선수는 연패 기간 동안 방망이가 제대로 맞지 않아 스스로 힘들었다고 고백했고, 끝까지 지켜봐 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5월 1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10번 선수는 큰 덩치임에도 유연한 몸을 앞세워 슬라이딩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무릎이 까졌다. 방송사 카메라는 선수의 무릎을 클로즈업했으나 정작 10번 선수는 개의치 않는 듯 상대 투수의 공 구질에 대해 동료 선수들에게 조언했다. 5월 12일 수훈 선수 인터뷰 때 31번 선수는 몇십 년을 해도 야구를 모르겠다며 스스로 부족한 점을 더 보완해야겠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 쉬워지기 전에는 어렵다. 쉬워지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뛰어야 할 때 뛰고, 던져야 할 때 던지고, 쳐야 할 때 치고, 막아야 할 때 막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그것이 내 몸에 꼭 맞는 옷이 돼야 비로소 쉬워진다. 쉬워지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든 어렵다. 꼭 야구가 아니더라도...


5월 8일 경기에서 홈으로 힘껏 달리지 않아 비디오 판독으로 겨우 세이프를 인정받아 가슴을 쓸어내린 54번 선수는 5월 1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데뷔 4년 만에 간절한 첫 홈런을 때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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