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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똥구멍 정도라도 정(情)이라고 포장하든지

일상 이야기

by 바람 타는 여여사

중학교 때 학교에서 동영상을 시청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TV 앞에 모아놓고 낯선 화면을 보여줬다. 물속을 헤엄치는 어떤 생명체. 흑백 화면이 흐려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뒷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더더욱 구분하기 어려웠다. 기계 소리와 같은 성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아가 수술 집게에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전 설명을 해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은 것은 도망치는 태아 모습이다. 낙태 방지 프로그램이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아기가 생긴다는 2차원 평면 교과서만 달달 외우던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런 영상을 왜 보여주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마치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처럼 이상했다. 그날 하루는 악몽을 꾼 듯했다.


임신을 하면 엄마 배가 커진다는 원초적 사실만 알고 있던 때였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낙태는 죄라고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낙태를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든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경우든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만 영상을 통해 알려줬다. 그다음은 없었다. 우리들은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긴 뭘 알아야 질문을 하지... 누군가 낙태를 하면 왜 안 되는지 질문을 했다면, 선생님은 멀뚱멀뚱 화면만 쳐다보던 우리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줬을까?


지금 학교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달라졌을 것이다. 설마... 달라졌겠지. 바나나에 콘돔을 끼우는 것을 같은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서 동시 관람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성 의식에 대한 사회적 흐름과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어디서든 쉽게 콘돔을 살 수 있고, 손가락 몇 번 두드리면 피임 방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의 성 관련 지식은 더 빨리 발전했을 것이다. 음성적이든 양성적이든 다양한 경로를 거쳐 어쩌면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까지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낙태죄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낙태죄는 위헌이다.

단,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 기간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 준다.


어렵다. 그리고 무거운 말이다.

낙태죄 폐지는 낙태를 마음껏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낙태죄보다 먼저 논의되고 거론되어야 할 부분은 피임에 대한 교육일지도 모른다. 남녀 합의하에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필수적으로 피임을 해야 한다.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관계를 맺을 때는, 그것이 비록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대에게 최소한 개미 똥구멍 정도의 정(情)이라도 이름 붙이고 피임을 하자.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태아의 생명권이나 여성의 자기 결정권 같은 무거운 말을 우리가 늘 기억하는 것은 아니니까...


피임은 나를 위한, 상대를 위한, 그리고 어떤 이름을 가질지도 모를 생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거칠고 위험한 길로 애써 돌아가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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