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결혼한 친구들 집에 가 보면, 그 당시 유행하는 가구 스타일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 각자의 취향과 경제 사정에 맞춘 선택이었겠지만, 유행하는 스타일까지 접을 만큼 그들의 신념과 인테리어 감각이 확고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 집에서는 체리나 월넛 색깔로 깔 맞춤한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그보다 몇 년 뒤 결혼한 친구들은 화이트 장식장으로 거실을 도배했다. 좀 늦게 결혼한 친구들은 북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모던 심플(별다른 장식이 없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스스로 이해한다.)한 탁자로 주방을 채웠다.
엄마가 기르는 화분도 유행을 탔다. 내가 어렸을 때는 게발선인장 화분으로 집안이 넘쳐났다. 워낙 번식도 빠른 편이고 엄마가 식물을 키우는 데 탁월해서 이웃집으로 분양도 많이 보냈다. 줄기를 톡 떼다가 흙에 푹 심고 간간이 물을 주면 잘 자랐고, 마디마디에서 분홍색 꽃이 터지면 예쁘기도 했다. 행운목이나 소철나무 같은 큰 나무도 집안에 들여놨다. 천장 높이 가까이까지 자라는 행운목 잎에 묻은 먼지를 닦는 게 엄마의 소일거리였고, 파인애플 같이 생긴 소철나무는 잎 끝이 뾰족해서 잘못 지나치면 살갗이 스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에 있던 큰 화분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는 가볍고 향기가 좋은 식물로 채워졌다. 이리저리 이동하기도 편하고 물 주기도 편하고, 먼지 닦을 일도 없는 그런 식물이었다.
가구나 식물처럼 사람도 유행을 타는 듯하다. 어쩌면 사람의 능력이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투수라면 일단 강속구를 던져야 한다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커맨드(투수가 원하는 위치에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가 좋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만 잘하면 되지’라던 시절에서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발휘해야 그나마 최소한의 눈길이라도 받는다. 간혹 사람 사이에 통용되는 유행을 맞추지 못해서 꼰대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나도, 당신도 한때는 유행의 중심에 있었을 텐데 말이다.
회사 분위기에 맞지 않아서, 새롭게 인테리어 한 사무실 분위기에 맞지 않아서 한쪽 구석으로 내몰린 갈색 화분에 듬성듬성 잎이 누렇게 변한 나무를 보니, 그냥 나 같고 너 같고 우리 같다. 가구나 식물은 저 좋아서 유행을 타는 게 아닌데 어떤 때는 중심에 화려하게 있다가 어떤 때는 외곽으로 차갑게 내몰린다. 그래도 나는 사람이라서, 사람이니까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졌다고, 다행이라고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