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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May 22. 2024

영어로 농담이 될까요?

두바이속 영어 이야기

두바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두바이에 먼저 살고 있던 친구와 관광객이 몰리는 큰 몰인, 두바이 에미레이츠몰 안내데스크에 들를 일이 있었다.

두바이 에미레이츠 몰


친구는 기프트카드를 사고, 어디에서 왔냐는 안내원의 물음에 우리는 "South Korea"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어설프지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해줬다. 우리 역시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의 친구는 한마디를 영어로 더했다.

"아마 당신은, 전 세계 인사말을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해요."

상대방을 가볍게 칭찬하는 위트 있는 대답에 안내원도 활짝 미소를 보였다.


영어로 이렇게 기분 좋은 농담을 해내다니!  


원래도 멋진 친구였지만, 그때 그녀가 정말 멋져 보였다.


나도 두바이에서 몇 년 살면 이렇게 할 수 있는 건가? 두바이에서 하루하루 잘 버티기나 해 보자 했던 나에게 작은 꿈이 생긴 순간이다.


바로, 영어로 농담하는 여자.

두바이에서 생긴 나의 새로운 목표다.



나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챈들러식 유머를 좋아했다. 모두에게 유쾌하고, 성격 좋은 여자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챈들러가 연인인 모니카를 웃겨주듯, 가볍게 기분 좋은 농담으로 상대방을 웃게 하는 게 좋았다.


남편에게도 연애시절부터 실없는 농담을 하고, 어이없어하며 웃는 남편의 반응을 즐겼다. 단, 한국어로 말이다.

영어라고 못할쏘냐. 이곳은 아랍어보다 영어가 더 통용되는 두바이가 아니던가?

대부분의 표지판도 영어표기가 함께다


맞다.

영어라서 못하겠더라.


나는 영어 시험 점수는 꽤 그럴듯한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외국인 앞에선 얼음이 되는 전형적인 영어 울렁증 한국인이다. 그럴수록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도 요리조리 영어를 잘 피해 다녔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두바이에서 영어로 살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두바이는 아랍어는 커녕, 영어를 잘 못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곳이다.


가끔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고는, 뜸 들이는 나에게 "Never mind"를 외치는 몇몇의 콧대 높은 학교 엄마들을 예외로 하자. 두바이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국적인들이 모여사는 공존의 도시답게, 내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영어를 해도, 영어 못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봐왔다는 듯이 , 내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기막힌 묘기를 선보인다. 마트, 카페, 병원,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든 그랬다.


그러니 영어 실력이 늘 리가 있나. 두바이 입국 심사때 했던 영어 실력보다 진전이 없다. 워낙 많은 외국인을 학교에서 보다 보니, 울렁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울렁증이 사라진다고, 영어 실력이 그냥 느는 건 아니더라.



이런 나인데, 상황에 맞춰 순발력 있게 센스를 발휘해야 하는 농담을 영어로 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인들과 대화 중 하고 싶은 농담이 있어도, 속도도 느리고 변변치 않은 나의 머릿속 번역기를 돌리다 보면, 이미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서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다. 유머는 타이밍이 생명인데 말이다. 나의 마음 속에, 써보지도 못한 수많은 농담들이 가득 쌓여만 갔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 사귄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늘 "I am OK", "Thank you" 같은 착한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미소맛 짓는 과묵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실력이 하루 아침에 늘지도 않았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내가 찾은 해법은


말이 안 되면 글로.


실시간 대면 대화가 안 된다면, 이곳의 카카오톡인 왓츠앱으로 시간차 비대면 문자를 이용해 보자 싶었다. 그래서 나는 번역앱인 챗Gpt로 문법도 체크하면서, 나의 친구들에게 문자로 위트를 담은 '영어 농담 보내기' 조금씩 시작해 나갔다.



늘 큰아이를 칭찬해 주고, 키가 쑥 컸다며 비법을 물어보는 영국인 키마라 에겐
"두바이라 햇빛이 강해서, 키가 아주 잘 자라네"


한국 노브랜드 과자를 안다는 독일인 칼라에겐
"이제 그만 숨기고, 한국어로 얘기하자."


금요일에 딸아이를 먼저 픽업해 주겠다는 러시아인 샤샤에게는
" 좋아. 그럼, 주말까지 부탁해. 월요일에 만나"



교촌지킨이 한국꺼냐며, 한국 치킨인 교촌을 시켰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세르비아 친구 타마라에겐


"두바이 사는 많은 한국인들은 교촌을 시키거든. 한국인만 아는 그 치킨을 시키다니. 너의 선택은 훌륭해"



하고 나의 실없는 유머를 영어 문자로 보냈다. 문법이 맞았는지, 다들 나의 유머를 정확히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Tears of joy  이모지의 연속이었다.


이게 뭐 별일이라고, 이리도 좋을쏘냐.


무슨 대단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것처럼 뿌듯했다. 유머 본능이 나의 비루한 영어실력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아마 외국인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수가 적은 한국인 엄마가 문자로는 왜 이렇게 수다쟁이가 되는지 신기할 것이다. 너희도 한국어 해보아라. 내 마음을 알 것이다.


이렇게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어도, 영어회화는 많이 늘지 않고, 번역기 돌리는 솜씨만 늘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영어로 농담하기 레벨의 1단계 정도는 통과한 듯 싶다.


이러다 언젠가 글이 아닌 말로도 농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아직 갈길은 멀겠지만, 두바이에서 나의 꿈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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