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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y 02. 2021

그림자가 사라졌다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3

그림자가 사라졌다.


여느 날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새벽 카페 마감 알바를 마치고 오전 다섯 시, 사장님한테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집이라고 해봤자 침대가 방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고시원 방이었지만, 아버지의 마법으로 소주병이 매일 공중부양해서 날아다니는 동화 같은 집보다는 돈벌레가 가끔 출몰하는 현실적인 고시원이 나는 더 좋았다. 신림동 고시촌은 점점 고도가 올라갈수록 집세가 더 쌌고, 나는 10만 원을 아끼기 위해서는 매일 한 시간씩 등산할 수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와도 20분을 더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마을버스 왕복 비용 1800원을 아끼면 라면 한 개와 삼각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편의점 옆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 이상한 위화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생리 주간은 저번 주였고, 감기에 걸릴만한 날씨도 아니었다. 혹시 뭔가를 두고 온 것이 아닌가 주머니와 가방을 뒤질 때, 가로등이 눈에 띄었다. 어두운 골목에서의 가로등은 태양만큼 밝았다. 그런데,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도, 뒤에도 그림자가 없었다. 위화감의 근원이 그림자가 없어서라니, 이상한 위화감은 허탈함으로 발전했다. 아무것도 없이 사는, 카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겨우 벌어 사는 내게, 기댈 수 있는 사람마저 없는 내게 그림자마저 뺏어가는 건 너무한 건 아닌가 싶었다. 한 시간 동안의 고시촌 산행이 어느 때보다 길었다.


대합고시원 앞,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였으면 아주 기분 나쁠 정도로 적막했는데, 오늘은 희한하게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해요. 잠시만요."


"저, 조금 있다 들어가시죠."


"왜요?"


"102호 사는 사람이 죽었어요. 죽은 지 삼사일 됐다네요. 지금 안에 경찰 있어서 시끄러워요. 비트코인 떨어지고 자살한 것 같다는데... 어휴..."


밖에 있는 구급차와 경찰차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도, 내 피곤함은 달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출입구에 서 있는 이 커다란 남자의 말도 같잖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나도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새벽 내내 일하고 와서요..."


호의일 수도 있는 커다란 남자의 말을 뒤로한 채 이 층으로 올라갔다. 나를 두고 말하는 두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와 독하네... 사람이 죽었는데."


"야, 그만해라. “


"아니, 맞는 말이잖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여기 있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야."


그래도 저 커다란 남자는 양반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1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복 상태로 마신 거라곤 아이스 아메리카노뿐이었지만, 희한하게 오늘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비트코인이 떨어져서 자살한 사람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내 곁을 떠난 그림자 생각 때문일까,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은지야. 오늘 3만 원이 비네?”


“네? 아까 전에 같이 확인할 때는...”


“다시 세보니까 3만 원 비더라. 아, 그리고 너 찻잔 세트 하나 깼더라?”


한 손님이 뜨거움에 실수로 깨트린 꽃무늬 찻잔이었다. 새벽 업무에 지쳐서 미처 인수인계 시간에 말하지 못했다.


“아, 그거 아까 손님이 실수로...”


“그러면 인수인계 시간에 말했어야지. 그 말을 어떻게 내가 믿니?”


“네? 그건...”


“3만 원에, 찻잔 세트도 부수고... 다음 달 월급에서 깔 테니까 그렇게 알아.”


사장은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사장의 식사 제안을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고민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102호의 그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잃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 그림자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내 곁을 지켰던 그림자가 없다면 내 삶의 이유를 언제 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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