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었다.
영근은 정연이 자신의 거짓말에 그렇게 잘 속아 넘어갈 줄 몰랐다.
영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탁월했다. 영근은 복음교회에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떠한 이야기를 자신이 흡수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를 갑자기 잘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내부의 세계로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영근은 정연 정도의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성을 되찾는 데 하루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을 만났다는 걸 경수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연락하는 것보다 정연에게 먼저 연락을 받으면 경수가 다시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숨을 것이 분명했다. 신진리교를 선택했던 것처럼, 하연을 선택했던 것처럼.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영근은 경수를 오랜 시간 동안 찾았다.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경수를 만나서 왜 이 세계를 무너뜨렸는지 묻고, 책임을 지기를 바랐다. 복음교회는 경수가 신진리교를 선택한 이후로 급격하게 무너졌다. 사람들이 복음교회를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목사의 딸이 복음교회가 아닌 대척점에 있는 사람에게 간 것은 분명히 교회 안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복음교회로 향했다. 사소한 문제들을 마치 대단히 큰 문제인 것으로 호도했다. 교회의 예산과 자금에 관련된 서류에 오류가 발견된 것으로 마치 교회가 큰돈을 착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담임목사가 죽기 전에 연희동의 큰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는 것과 자가용으로 벤츠를 몰았다는 것을 한 렉카 유튜버가 공개하며, 자신도 목사나 할 걸이라고 말하며 복음교회를 조롱했다. 사망한 담임목사가 자신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매년 정기적으로 기부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교회를 결집시킬 리더도 부재했다. 물론 기독교총연합회에서 복음교회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으로 기독교를 비방하지 않을 것을 부탁하는 입장문은 빠르게 공개되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치 퍼거슨 감독의 은퇴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더의 부재로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은 것처럼, 복음교회는 빠르게 무너졌다.
복음교회 화재 사건은 몰락의 방점이었다. 한밤중에 교회에 갑자기 불이 났다. 6층 기도실에서 난 불은 땅따먹기 하듯이 다른 기도실, 사무실, 동아리방, 그리고 예배당으로 위세를 넓혔다. 새벽 내내 교회는 불의 세계에 잠식당했다. 활활 타는 교회를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조차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호스를 교회 쪽으로 향해서 물을 뿜어내는 와중에, 잘 됐지, 뭐, 라며 잡담을 나눴다. 영근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건물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건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는 지 알 수 없었다. 교회가 불타는 유튜브 영상의 댓글 상단에는 ‘복음교회 꼴좋다.’ ‘믿거 기독교’ ‘하나님도 용서 못 하는 복음교회 클라스’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교회는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전소되어 사라졌다. 복음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각자 자신만의 교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복음교회에는 영근만 남았다.
영근은 경찰서를 매일 찾아가 방화범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경찰관은 냉정했다. 방화범을 빠르게 찾는 게 자신들의 여론에 크게 유리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근은 신진리교 신도들이 의심되는 정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경찰관을 붙잡고 신진리교는 경수의 입교로 인하여 엄청난 광고효과가 생겼고, 그로 인하여 복음교회의 신도를 흡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복음교회의 본거지가 불탔을 때 얻을 이익이 상당하다고 절박하게 외쳤지만, 경찰관은 듣지도 않고 귀지를 파며 증거가 없다는 답변만 매크로처럼 반복했다. 영근은 직접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협조를 구하고, 근처 건물 CCTV 영상협조를 요청했다. 단 한 명의 건물 관리인이 CCTV 영상을 보여주었지만, 너무 화질이 좋지 않아서 단서가 되지 못했다. 영근에게 호의적이었던 건물 관리인조차 영근이 복음교회 신도였다고 밝히자 쌍욕을 하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영근에게는 협조를 구할 능력과 힘이 없었다. 게다가 영근은 미성년자였다. 영근이 언론인이나 유튜버가 아니라는 걸, 심지어 미성년자인 걸 눈치챈 건물 관리인과 차량 주인은 영근에게 쓸모없는 데 시간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힐난했다. 미성년자의 주장은 미성숙하다는 말로 무시해도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지 않았다. 영근은 복음교회를 비방하는 유튜브 댓글을 하나하나 신고했다. 유튜브는 그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근은 국회와 광화문에서 매일 1인 시위를 이어갔지만, 사람들은 그를 마치 사이비 보듯 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기도 했다. 방화범은 끝끝내 잡히지 않았다.
복음교회가 불탄 지 100일째 되던 날, 영근은 취재와 1인 시위를 곧바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공부에 열중했다. 자신의 파괴된 세계를 되찾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자신이 블랙박스 영상을 협조해도 호의적으로 SSD 카드를 건네줄 수 있는, CCTV 영상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면 어휴, 그럼요 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는 힘.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빠르게 취직을 할 수 있는 동시에 개인적인 시간이 확보되고, 취재가 가능한 직업인 동시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복음교회를 되찾는 걸 멈추지 않을 직업의 교집합은 기자였다. 검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경찰은 개인 시간이 부족했다. 영근은 수능에서 한 개 틀리고 한국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입학 이후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정중일보 기자로 취직에 성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3년이었다.
영근은 경수를 찾기 위해 최대한 빠른 방법부터 시도했다. 첫 시도는 신진리교 잠입 취재였다. 영근은 신진리교 귀의를 시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진리교는 영근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 신진리교 귀의 전 10년 동안 매일 귀의 전 단계의 신도를 위한 지부에 매일 출석해 봉사하면서 정성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영근은 한 달간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지부에 나가서 건물을 청소했다. 청소를 하던 중 영근은 지부장과 사무관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진짜 계속할 건가 본데요.
그래도 못 들어와
왜요?
구루님이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고 하셨어.
그럼 10년간의 봉사는 뭐예요?
그냥 내가 시켰어. 지부 깨끗해지고 좋지 뭐.
그날 이후 영근은 지부로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이후 영근은 신진리교에서 탈퇴한 사람들을 취재했다. 최근에 탈퇴한 자와 고위직이었던 사람 위주로 철저하게 경수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경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경수가 신진리교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영근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단기적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후 영근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 입구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워놓고 출입문을 바라봤다. 차가 나올 때마다 영근은 미행해서 혹시 차에 경수가 타고 있는지 살폈다. 몇 달째 잠복과 미행을 반복한 결과 영근은 각각의 차마다 향하는 행선지와 목적지가 대부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근은 각각의 차마다 가는 행선지와 머무는 시간을 목차별로 정리했다. 방문자로 추정되는 차를 제외하면 약 10대 정도였다. 10대의 차를 미행하는 데는 6개월이 조금 넘게 걸렸다.
영근은 이 일에 한 번에 너무 많은 힘을 쓰면 되레 본인이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장기전으로 접근했다. 무조건 빠르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건 기자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기도 했다. 단독을 달고 나가는 빠르게 나가는 기사가 필요한 때가, 최대한 많은 자료와 증거, 그리고 검증을 마친 후에 보도되는 때가 있었다. 마치 응급 환자가 최근의 의료진 파업으로 응급실 병동을 찾지 못해 죽었다는 단독 기사보다, 통계적으로 응급실 병동을 찾지 못해 죽는 환자의 수가 100명에 이른다는 기사가 사회적으로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영근은 마음 한편에 때때로 치미는 성급한 조급함을 다스리기 위해 점점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나님이 내게 준 복음교회의 회복이라는 임무를 빠르게 해내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을 누를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영근은 경수가 피디로 일하고 있다는 건 약 일 년간의 잠복 끝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영근이 추적하는 10대의 차는 대부분 4~5시간의 업무 끝에 바로 신진리교 마을로 복귀했다. 가장 늦게 복귀하는 경우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까지 머문 이후에 마을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HBC에 가는 차량만 유일하게 마을로 복귀하지 않고 며칠 동안 주차되어 있었고, 마을로 복귀하지 않고 HBC 근처에 있는 아파트로 향하기도 했다. 그리고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10대의 차량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이었다. 패턴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나는 이렇게 있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은은하게 과시하는 듯했다.
영근은 처음 다른 패턴을 보았을 때 이 차량의 운전자가 경수라는 생각은 바로 하지 못했다. 단순히 신진리교의 최고 고위층이나 구루의 최측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수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고위층의 포섭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근은 이 차를 더 치밀하게 주시했다. 하지만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운전자의 실루엣을 계속 볼 때마다 저 사람이 경수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영근의 뇌리를 스쳤다.
저 사람이 경수다.
7년 가까이 경수를 보지 못했지만, 영근은 확신했다. 멀리서 봐도 묘하게 음울하지만, 사람을 끄는 기운이 느껴졌다.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묘한 기운을 뿜는 사람은 경수가 유일했다. 영근이 인터뷰 차 만난 퇴폐미 넘치는 할리우드 배우도 저런 기운은 뿜지 않았다. 영근은 우연을 가장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려고 했지만, 경수가 자신을 알아보면 바로 다시 숨을 수 있었기에 신중해야 했다. 경수가 HBC에 왜 오는지부터 알아야만 했다.
경수가 피디 업무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또 삼 개월이 걸렸다. 이건 영근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영근은 경수가 신진리교에 들어간 이후로 잠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피디와 기자 직군에서는 일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사, 재정 등의 사무직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부터 경수에 대해서 수소문했다. 당연히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경수는 프리랜서로 근무했기 때문에 직원 데이터베이스에도 검색되지 않았다. 어떤 직군에도 경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그제야 영근은 경수가 피디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항상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제거했을 때 그제야 흔적의 아주 작은 편린을 남겼다. 영근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답답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성취감 하나만으로 끈질기게 버텼다.
영근은 정연을 만나기 전에 이미 경수의 연락처와 거주지까지도 모두 파악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경수에게 연락할 명분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 명분은 정연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영화 촬영.
경수는 신진리교에서 한 아이에 관련된 영화를 찍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 아이를 신진리교에서 구하고 싶어 한다. 정연은 도와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영근은 정연에게 자신이 신진리교에 대해서 취재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부 기자라는 영근의 직업은 그의 화려한 언변에 설득력을 더했다. 영근은 자신이 경수의 영화 제작을 돕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아니라면 얻기 어려운 정보들을 모두 주겠다고 말했다. 정연은 홀린 듯이 고맙다고 말했다. 완벽한 명분이었다.
영근은 경수에게 접근할 모든 준비를 마쳤고 생각했다. 복음교회가 불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구 년 만이었다. 영근은 경수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누르고 통화버튼은 더 신중하게 눌렀다. 목을 가다듬었다. 몇 년째 꿈꿔온 순간이었다.
네 여보세요.
이경수 피디님 맞으시죠?
네.
잘 지냈니? 나 영근이야. 오랜만이네.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전화가 끊어졌다고 생각이 든 찰나, 대답이 들렸다.
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요.
영화 찍고 있다고 들었어.
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