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자퇴하고 신진리교에 들어온 이후 경수는 신진리교 마을에서 하연과 함께 지냈다. 하연은 책임수행자 직위로 교단 내 출판팀에서 일했다. 신진리교를 외부에 홍보하기 위한 책자를 만드는 것과 구루가 예배 중에 한 말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하연은 그중에서 구루의 저서를 만드는 팀에 배치되어 있었다. 구루에게 수행을 인정받은 극소수의 책임수행자들만 배정되는 팀이었기에 구루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가장 강한 집단이었다. 우연인지, 구루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책임수행자들은 사회에서 높은 학력이었거나, 나름의 유명세가 있었거나, 각자의 특기와 장기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엘리트주의는 책임수행자들의 책임수행자인 출판팀을 묶는 또 다른 결속력이었다. 그 팀에서 수행을 마치지 않은 자는 경수가 유일했다.
경수는 그 팀에서 경수는 배포 예정인 홍보물의 오타를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 오타를 확인하고 하연에게 보조만 하면 되었기에 경수는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굉장히 여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경수가 쉬는 틈을 보일 때마다 하연은 구루가 출판한 책을 읽도록 했다. 경수는 <해탈자>, <생사를 초월하는 명상의 힘>, <리트리트와 수행> 등의 책을 읽었다. 경수는 책을 읽으면서 점차 신진리교의 교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경수는 개인의 수행을 중요시하는 신진리교가 아버지의 복음교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과정의 연속이 삶의 굴레라는 구절이 경수의 뇌리를 관통했다. 자신이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껍질을 벗기만 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에, 그 수행만 반복한다면 피아노가 없더라도 삶의 의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수행을 통해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교리에도 불구하고 신진리교 사람들은 구루의 말과 행동을 쫓아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수행과 참선도 구루가 명하는 것을 그대로 따랐고, 그것이 자기 뜻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마치 복음교회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다를 게 없었고, 어느 때는 더 무섭도록 구루의 말과 행동을 탐닉했다. 매달 한 번씩 구루 앞에서 벗은 채로 기도해야 하는지도 책은 말하는 바가 없었다. 왜 자신이 이 수행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이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점점 커졌다. 경수는 누구보다 많은 구루의 책을 읽은 사람이기도 한 하연에게 물었다.
엄마
하연은 경수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엄마라고 말하라고 했다.
응, 하연아
왜 여기 사람들은 구루님 말씀에 집착해요?
뭐라고? 대체 그게 무슨 불경한 말이니
구루님 책을 읽었는데요.
응
구루님은 개인적인 명상과 그로 인하여 나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치.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지내는 사람들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매일 명상하고 기도해. 지금도 몇몇 분들은 수행하고 계시잖니.
사람마다 필요한 수행이 다른 거 아니에요?
다르지. 그러니까 몇 명은 한 달 만에 수행이 끝나고 몇 명은 삼 년 넘게 걸리는 거 아니겠니.
그럼 왜 구루님의 말씀에 의문을 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구루님의 말씀에 의문이라니, 불경하게.
구루님이 생각하는 참선이나 수행의 방식보다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수행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경수야,
네 엄마.
학교 다닐 때 교복 입었지?
네.
그런 거 같은 거야. 우리는 신진리교의 수행자들이잖아. 그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지 않더라도 행해야 하는 개 있는 거야.
그게 만약에 개인의 참선과 어긋나면요? 저는 벌거벗은 채로 기도하는 게 싫은데….
어긋날 리가 없어,
왜요?
구루님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보다도 더 많은 걸 알고 계셔. 인도하고 태국에서 몇 년 동안 수행하시면서 세계에 대한 모든 걸 통달하신 분이야. 그분은 우리 같은 부족한 인간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으셔. 알고 있지?
네.
그러니까 구루님의 말씀은 항상 옳은 거야. 그 순간에는 나한테 쓴 약처럼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나중에 돌이키면 그 순간들이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근데, 저희 아빠도 남수단에서….
쓰읍! 어디 불경한 자를 입에 올리니 경수야! 그런 악마는 생각하고 말하는 것만으로 너를 오염시키기 마련이야. 앞으로 그런 사람은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말아. 알겠어?
엄마.
또 물어볼 게 있니?
하연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하지 않았다. 구루에 대해 도전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경수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경수는 알고 있었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게 있었다.
구루 님께 은총을 받는다는 게 뭐예요?
감히 은총이라는 말을 입에 꺼내다니. 너처럼 아직 참선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감히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신성한 거야.
그래도 알고 싶어요.
안 돼.
저도 더 알고 싶어요. 명상도, 참선도, 수행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은총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건…. 구루님의 큰 뜻과 그분의 영험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됐지? 빨리 이 책 오타나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경수가 은총에 대해서 말하자마자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안타깝다는 미소를 지었다. 조소였다. 마치 은총이 구루와의 성관계라는 걸 처절하게 비웃는 조소였다.
경수는 은총을 받지 않았다. 출판팀 내에서는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행도 마치지 않은 경수가 두 달 넘게 출판팀에서 계속 있는지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생겼다.
쟤는 왜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여기서 지내면서 수행을 안 하는 게 말이 돼?
저 불경한 년이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의 눈총이 점점 따가워졌다. 점점 경수를 대놓고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연도 경수에게 더는 일을 주지 않았다. 수행을 마치지 않고 은총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신성한 구루의 말씀을 접하게 한다는 것은 하연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수는 구루의 책을 어린이용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계속 버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리트리트, 이니시에이션 등 신진리교 밖 사람들이 쓰지 않는 용어를 전부 바깥세상의 용어로 치환했고, <생사를 초월하는 명상의 힘>이라는 제목도 <하루에 한 번씩 명상해 보기>로 바꿨다. 하연은 못마땅했지만, 구루는 이것을 보고 경수를 크게 칭찬하고 바로 출판하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하연에게 명했다. 이후 경수는 구루의 책을 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안하는 일을 맡았다.
경수가 이 일을 자진해서 한 것은 비단 자신이 이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함 뿐만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이전에 있었던 세계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느꼈다. 마을에서의 생활과 사람들의 생각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 참선에 임해서 더 나아진다’라는 것은 경수에게 이 세계의 등불 같은 것이었다. 은총이라는 것도 수행 단계에서 사람들이 보게 되는 환상을 오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경수는 은총을 받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고 판단을 보류했다.
구루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경수를 찾았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동시에 경수 앞에 나타났다.
앞으로 작곡을 맡도록 해
작곡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작곡이요?
그래.
어떤 걸 작곡을…?
출판팀에서 신진리교의 음악을 위한 작사를 하는 것 알고 있지?
몰랐습니다.
흠…. 하연 신도가 아직 말하지 않았나 보구만. 하연 신도에게 가사를 받아서 그거에 맞는 음악을 작곡하면 돼.
하연이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은 남자는 경수를 지긋이 미소 지으며 응시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자네 피아노 칠 줄 알지?
네
구루에게 한 번도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 하연에게 들었겠다고 생각했다.
가사를 계속 입으로 말하면서 그 가사와 가장 잘 맞는 음을 찾으면 되네.
경수는 구루의 말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네가 거절하더라도 너는 이 일을 해야만 해. 명령이야.
왜 제가 해야만 합니까?
작곡이 너의 오염된 몸을 정화할 거야. 경수 너는 지금 몸이 오염되어 있어. 지금으로는 아직 수행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야. 끊임없는 참선으로 자신을 스스로 정화해야 하네. 물론 출판팀에서 하는 일도 몸을 정화하지만, 더 분발해야 해.
남자는 참선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구루의 뒤에서 골반을 튕기며 구루의 말을 경청하는 경수를 조롱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주에 한 번씩 하연 신도에게 가사를 받게 될 거야. 그러면 이주 내로 멜로디와 반주를 만들면 되네.
네. 구루님.
그럼 이만.
구루가 자리를 뜨려는 찰나, 경수가 구루를 붙잡았다. 구루는 경수의 손을 뿌리쳤다.
앞으로는 절대 내 옷이나 내 몸에 손대지 말도록 하게. 알겠나?
구루님.
저도 은총을 받을 수 있나요?
경수는 자신이 왜 이런 말을 내뱉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 골반을 튕기는 남자가 거슬려서인지, 아니면 하연이 아닌 구루에게 직접 확인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은총을 받고 이 세계에 머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경수의 말에 골반을 튕기는 것을 멈췄다. 일단 가장 작은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구루는 고개를 돌려서 경수를 지긋이 응시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구루는 한 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야.
처음에는 직접 작곡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매번 정해진 곡을 치다가 아예 새로운 곡을 만들어서 쳐야 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하연이 준 가사를 읽어도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지연은 지정된 곡만 계속해서 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건반의 조합을 연주할 수 있는 데서 큰 행복을 느꼈다. 이전에 의도적인 아주 작은 오류로 건반을 치는 행복함을 느꼈던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새로웠다. 자신이 알던 찬송가의 규칙과 다르게 변주해서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게 좋았다. 기존의 세계와 대척되는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기쁨이었다. 단 한 가지 지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작업을 진행하는 공간이었다.
경수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는 예배당에서 작곡 작업을 진행했다. 구루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예배를 진행하는 곳이자, 매달 모든 여자 신도들이 옷을 벗고 기도하는 월간 기도를 진행하는 곳이었다. 경수는 작곡할 때 어느 순간 몸을 벗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벌거벗은 채로 신진리교가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악을 쓰고 고백하는 다른 신도들의 모습도 이내 머리를 스쳤다. 그때마다 경수는 피아노를 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토할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남자는 피아노를 치는 경수 옆에 앉아 자기도 건반을 누르려고 했다. 마치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럴 때마다 경수는 피아노를 멈추고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하다 보면 어느새 구역질이 멈추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옆에서 계속 방해하는 남자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경수는 매번 작곡과 구토, 그리고 명상을 반복했다.
신도들은 경수의 작곡 작업을 질투했다. 예배당은 신진리교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예배가 있을 때나 다른 행사가 있을 때만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기도를 한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작곡할 때마다 예배당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구루의 말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직접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지만, 신도 대부분이 경수가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수가 실제로 2주 만에 완전히 새로운 경건한 찬송가를 만들어내자, 신도들의 불만은 이내 사그라졌다. 경수의 곡을 처음으로 연주하는 첫 전체 예배 때, 경수의 연주 차례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뛰어나기에,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피아노에 앉은 경수를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별로면 바로 구루에게 항의할 정도의 기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구루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 경수가 연주로 모두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경수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사람들의 치켜뜬 눈꼬리가 하나둘 내려갔다. 채 20초가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과 작은 기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수의 곡은 화려하거나 기교가 많은 속주가 있지도 않았다. 아주 간결한 반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곡은 마치 칸예 웨스트의 <GHOST TOWN>처럼 간결한 멜로디와 반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경수가 짧은 연주를 마치고도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이어졌다. 연주가 끝나도 연주가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기도에 열중한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사그라지자, 하연은 신도들에게 가사가 적힌 악보를 나눠주고 찬송가 연습을 진행했다. 구루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연습이 한창 진행되던 와중 자리를 떴다. 신도들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수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한 시간이 넘게 곡을 탐닉하듯이 찬송가를 부르는 데 전념했다.
찬송가 연습이 끝나자, 신도들은 경수의 재능을 알아본 구루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역시 구루님이야.
어떻게 아셨던 걸까?
아직 부족한 우리가 알기엔 너무 대단한 통찰력이지
구루님은 부족한 우리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너무 정확하게 제시해 주셔
아직 수행도 안 했는데, 수행하면 더 좋은 곡이 나오는 거 아니야?
자신의 침실로 가려는 경수를 한 책임수행자가 붙잡았다.
경수 신도.
네.
이제 준비하십시오, 곧 때가 올 겁니다.
나를 조연출로 써줄 수 있니?
영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경수에게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경수의 세계를 가장 처절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었다.
신진리교 영화라서 신진리교가 아니면 안 돼요.
경수는 영근이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치밀한 사람이었다. 모든 정보를 파악해서 그중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에이, 정연씨도 돕고 있잖아.
영근이 예상한 답변이었다. 정연이 없었다면 경수의 말에 이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다 할머니가 자살한 이야기를 여러 취재원들에게 연마하고 갈고닦은 보람을 느꼈다.
신진리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연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냈다는 것도 경수는 예측하고 있었다. 경수가 영화를 만드는 걸 아는 사람은 지연, 정연, 그리고 구루와 그의 최측근 책임수행자뿐이었다. 영근이 접근할 수 있는 건 정연뿐이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정연도 반타 블랙 색의 영근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에이, 경수야. 나 다 알아. 난 진심으로 돕고 싶어서 왔어.
진심이었다. 영근은 경수의 영화 제작을 온 힘을 다해서 진심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영근이 생각하는 경수의 마지막의 필수조건은 경수의 성공적인 영화 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수는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께 저지른 죄를 깨닫고 참회한 뒤에 자신의 최후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저는 신진리교를 진심으로 믿어요.
진심이었다. 경수는 신진리교의 교리에는 여전히 동의했다. 매일 자신을 되돌아보는 참선과 명상을 통해 내일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진리교의 핵심은 아버지의 기독교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럼 안 만들면 되지.
영근은 경수가 아주 잘못된 길로 들어섰지만, 본질적으로 종교인이라는 본질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짙게 악마의 그림자에 잠식당했던 것이라고 영근은 생각했다.
신진리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뿐이에요.
내가 도와줄게.
필요 없어요.
경수는 영근에게 차갑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할 것 같았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영근의 얼굴은 영근이 말할 때마다 남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남자가 말할 때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너무 싫었다.
지연이라는 애 구하고 싶은 거 아니야?
이 말이라면 경수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경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경수야, 그 아이를 신진리교에서 꺼내서 올바른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니? 경수야 이제는 알고 있지? 신진리교는 뒤틀린 집단이야. 하나님이 네가 거기 있는 걸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셨겠니?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자애로우셔서 너를 언제나 다시 받아들이실 거야. 너도 이제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지.
남자가 영근의 몸을 빌려서 이 말을 하는 것을 경수는 견디지 못했다. 경수는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 말을 그 남자에게 듣는 순간의 충격은 경수의 상상을 초월했다.
경수야 괜찮아??
영근은 경수가 갑자기 왜 기절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영근은 경수에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신진리교의 핵심으로 있었다. 그런 와중 정연과 함께 HBC 피디로 일했다. 이제는 신진리교의 악마성을 깨닫고 영화를 만들어 탈출하려고 한다, 신진리교의 악마성을 알았다는 건 당연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과 같은 뜻인데, 왜 충격을 받았는지 영근은 알 수 없었다. 경수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경수는 여느 때처럼 예측할 수 없었다. 영근은 정연이 자신에게 완전히 홀려서 모든 정보를 말했다고 생각했다. 경수가 기절하는 상황은 영근의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카페 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영근에게 쏠렸다. 영근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고 바로 119에 전화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구급차에 경수를 태우고 응급실로 향하면서, 영근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계속해서 대화를 복기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경수를 눕히고 각종 검사를 진행할 때까지 영근은 여전히 경수가 기절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근이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경수와의 마지막 만남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