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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16. 2023

수상한 책방 41.

마들렌과 커피, 길냥이와 함께 하기


 영화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드물다. 마블 영화나 블록퍼스트 영화를 어쩌다 보게 되면 여지없이 본 순간으로 끝이다. 여운이 없다.


 아무래도 나는 영화든 문학이든 대체로 내 삶과 연결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만족한다. 어지간히 시간이 넘쳐흐르던 때는 수능 이후였다. 이십 대 시작이 막 열리던 그 겨울에 흠뻑 빠져든 영화를 요즈음 다시 찾게 된다.


 슬로무비 영화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작품 <<카모메 식당>>을 또 본다. 내가 자주 보는 영화 중 한 작품이다. 원작 도서를 읽으면 영화 주인공이 핀란드로 갈 수 있던 계기와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한 자본금 출처가 나온다.


 역시 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기회조차 자본금 마련 이후 가능한 것이려나. 그럴 때마다 내 가족이 주는 도움에 고마운 마음이 깊어진다. 경제적으로 주는 한시적인 도움에서 진정한 독립까지를 생각하니 갈 길이 멀기는 하다.


 올해 개봉한다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에 신작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가 기대된다. 평생 하고 싶은 무료책방이 이러다 무료한 책방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가끔 두렵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책방으로 다가오는 길냥이들을 보며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도 떠올린다. 빵과 수프만을 파는 작은 식당 주인처럼 되려면 나도 이곳에서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먹을 것을 파는 것과 읽을 것을 파는 일. 하늘과 땅 차이이긴 하다.


 일주일에 세 번 여섯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책방이라... 그저 거주하는 공간으로 생각하려고 시작했음에도 슬금슬금 내가 욕심을 부리나 보다. 무언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건가. 이런 마음이 생길 때 김남복선생님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재인 씨,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거야.

 슬로 시티 지도자 과정에 같이 교육 신청을 하면서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열두 명 정도 이 교육 과정을 같이 한다. 여름이 초록빛을 발산한다. 햇빛을 피하느라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다.


 책방에 있으면 마냥 기운 빠지던 내게 시원한 물 한 줄기가 흐르려나. 문을 열면 바람조차 비껴가 건조한 공기로 계절을 감각하고 있다. 길냥이들도 오늘 같은 날에는 그늘에 몸을 늘어뜨린 채 낮잠을 즐긴다. 커피를 내려 한참을 지나도 변화 없이 뜨겁게 느껴지는 목 넘김에 오히려 몸은 땀을 멎는다.


 슬로 시티를 상징하는 달팽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빠른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거리는 사람 흔적도 없다. 스물일곱에 은둔자처럼 있다. 딱히 나쁠 일도 없는 가운데 어느 순간 다른 우주로 와 있다는 착각도 한다. 지역에서 만나는 이 한가로움은 너무도 느긋하기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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