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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21. 2023

수상한 책방 42.

다음 소희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책방에서는 영화 보기를 시작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감상 후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주제를 '노동과 인권'으로 정하고 찾은 작품은 <<다음 소희>>.


 지난 2월 개봉 당시 개봉관에서 마지막 상영 시간에 본 후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 처지에 놓인 적이 없던 내가 다음번 차례일 수 있다는 마음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포기.


 노동권이 무엇인지 노동에 관해 배운 것이 별로 없다. 12년 교육과정과 덤으로 받은 4년까지 합해도 내 인생 거의 대부분 시간인데도 헛수고였다.


 막연하게 사회 시간표대로 살아오지 않은 나는 도시와 다른 삶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다시 쓰고 있다.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면 하늘빛이 다시 드리울 때까지 나에게 묻는다.  지금처럼만 살아낼 수 있겠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아직도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에 덩그마니 놓인 나를 본다. 공간이 주는 위안이 임대 기간만 유효하다는 사실은 2년 후까지 생각이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일까.


  노동과 인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족이야기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인권과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당한 성역할을 해야만 했던 시절 이야기가 엄마 세대로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가 내세우며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는 대부분 무조건 수용은 어려운가 보다. 어릴 적에는 강요로 가능했을지 몰라도 성인 이후 늘 덜그럭거리는 갈등 요인은 삶에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인가 싶다.


 부모는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나라일수록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으로 삶을 이루어나간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나라다.


 결국 가족을 더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만든다. 저출생은 그런 의미가 담긴 지표는 아닐까. 정치적 올바름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 입으로만 가능한 사회제도 변화는 선거철에만 유행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소희 처지는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이다. 소희가 마주한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만나는 낯선 감정이다.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놓은 사회경험자만이 찾아낼 것 같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학벌 사회였고 인맥과 돈으로 나뉜 계급사회였다. 그뿐인가. 어디에 사는가에 따라 삶의 형태도 관심도 소비도 다르다. 도시와 지역의 불균형은 개인의 미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는 불신과 착취, 불공정이 되풀이되는 피로사회라는 것을 막연하게 책으로 알아차린다. 다음 소희가 되지 않으려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게 더 쉬웠으니까.


 나만이라도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살아보겠다는 게 너무 처절할 뿐이다. 나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은 가능하지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동네 책방이라는 막연한 실험으로 멈출 수도 있다.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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