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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24. 2023

수상한 책방 45.

 천국이 된 책방


 이 더위에 나는 얼어버린다. 때로 투덜거리는 일도 필요하구나ᆢ 힘들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법을 잊고 살았다. 가족과 친구, 주변인에게 내 상태를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왔나 보다.


   천국이 따로 없네.


 혼자 중얼거린다. 더위에 등줄기 땀과 선풍기, 마실 이유가 없던 아이스커피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찜통이 되어 버린 책방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쯔쯧거리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가득하다. 그날로부터 드디어 냉난방 겸용이라는 엄청난 기계가 책방으로 배달되어 설치 완료된 날이다.


 엄마는 다가올 가을 내 생일 선물을 미리 주는 것이라며 설치비까지 다 해결해 준다. 에어컨이 일상으로 열리던 도시에서 여름은 제 계절이 아니었다. 잠시 거리에 있는 동안만 계절을 실감할 뿐 공간에 들어서면 다시 잊힌다. 태어나서 실시간 이토록 여름을 더운 계절이라고 생각하는 첫여름이었다.


 살아온 환경에 지배를 어찌 받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한숨 쉬며 나를 책망하기까지 이 여름 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에어컨이 책방에 놓이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냉난방 겸용이라 다가오는 겨울나기도 안심이 된다. 일단 지불할 전기요금은 생각하지 않는다.


 편리함은 결국 돈과 연결되는 일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누리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 다를 뿐이다. 내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일에 최적화되었는지를 마주한다.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말이 되던가.


   때로 삶을 대하는 네가 가진 진지함이 부러워.


 현실 타령을 하면서 금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투쟁하는 자신이 견디게 된다는 모호한 말을 들을 때면 덜컥 겁이 난다. 나 같은 사람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책을 너무 읽은 부작용을 생각한다. 경험하지 않은 삶이 대부분인데 누구나 그렇지 않던가.


 문학에서 만나는 서사는 가끔씩 나를 날 서게 만들어 내 안으로 밀어 넣는 일이 반복된다. 공감하면서 쌓이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딘 채로 지나갈 여름이기에는 틀렸다. 여성이 살아온 시대를 감각하게 하는 문학에서 성난 마음이 움틀거린다.


 판타지 장르가 아닌 문학에서 시대 배경은 외면할 수 없는 그 시절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파생되는 소리를 작품 속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대신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전으로 불리고 시대를 이어가며 여전히 서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지독한 여름에 천국이 된 책방에서 다시 책에 흠뻑 빠지기 시작한다. 조금 더 깊이읽기 모임에서 여름 나기로 시작한 고전문학 읽기를 시도한 것은 잘한 일 같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서늘한 마음으로 읽는다. 에어컨 만세다.


 매대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빛을 따라 너울너울 춤추는꽃잎처럼 떠다닌다. 정리할 필요성도 없던 책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천국이 되니 모든 게 또렷해진다. 찜통같던 책방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나 보다. 마치 고서점처럼 켭켭이 책은 먼지와 같이 쌓여만 간다.


 책방이 올가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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