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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Feb 25. 2023

수상한 책방 46.

밀당


 여행길에 재현이 보내던 그림엽서는 오래도록 도착하지 않는다. 여행길에 변화가 왔는지 그저 그렇게 된 일인지 모른 채 마냥 기다리는 나를 본다. 그의 안부가 염려가 되는데 통화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안 하던 짓.


 그다음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정윤은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다. 지금 자기와 밀당하는 것이라고. 언제 적 유행어를 들이대냐고 반박하지만 그것조차 억지를 부리는 나를 본다.


 나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자극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 아직 그런 대상을 만날 수 없었을 뿐이다. 상냥함이나 관심 주는 것으로 대체 불가하다. 솔메이트. 정윤은 자기 방식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두려워.

   그런 이유로 연애를 하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혼자 있는 게 두렵지 않아.

   알다가도 모르겠다 너는.

   

 이곳에 와서 가장 좋은 일은 편안하게 사람 만나는 일이다. 적어도 책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기에 책을 두고 관계가 형성된다. 공통점이 하나 있는 것으로 대화가 쉽게 풀린다. 책이 사람을 이어준다는 믿음은 내게는 진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각자 읽었던 책과 영화 이야기만으로도 시간 흐름은 빠르다. 헤어질 때면 활짝 웃는 얼굴로 또 만나자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시시콜콜 사생활을 널어놓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다가오는 느낌들이 좋다.


 여름휴가 잡아서 갈 테니 다시 얘기해 보자는 정윤을 생각한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럭저럭 그와 지나온 세월은 적지 않다. 내가 아는 정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지내다 보면 알 수 없는 이 마음에 정체를 알게 될 테니.


 이상기온이라는 이 여름날 하루는 너무 길다. 낮이 길어서인지 쾌적해진 책방을 벗어나기가 더욱 어렵다. 이곳은 늘 비슷하다. 유동인구도 없고 붙박이처럼 지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어둠이 내리기 무섭게 움직임이 없는 거리가 익숙해져 버렸다.


 어둑어둑 해거름에 독서모임 회장님이 손수 텃밭에서 지어 거둔 열무로 만든 김치를 가져오셨다. 꽁보리밥도 안 먹어봤겠지 싶어 한 그릇 덜어 오셨다고. 서울에서는 한여름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로 초장을 넣어 비벼 먹는 게 일탈이다. 냉면 만들어 먹어도 괜찮다는 말씀만 남기고 후다닥 떠나신다.

 

 건강 음식을 가져다주시는 김 선생님과 가끔씩 이렇게 챙겨 주시는 회장님까지 두 어른들이 내 보호자로 있다. 막내딸 같다는 두 분 말씀에 마음이 울렁인다. 책방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하는 밀당은 책방이 지속 가능할까에 둔 마음인가 싶다. 정말 여기에서 계속 살아가게 될까.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다시 겨울이 오고 그렇게 한 번 더 반복하고  다음은 모르겠다. 더 노력하라는 나와 대충 살아가라는 내가 다툼을 하면서 꽁보리밥을 우걱우걱 씹어 삼킨다.


  셰프 해도 되겠는데ᆢ


 누가 내게 했던 말인데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음식으로 충분한 내게 누군가 건네준 친절함이 온몸을 흐느적거리게 한다.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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