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우 Feb 26. 2023

수상한 책방 47.

매운 잡채


 자동차로 십분 정도를 달리면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작은 도시다. 이름이 좋아서 찾아갔는데 맛도 음식 양도 서비스와 가격까지 모두 좋다는 식당을 간다. 자동차가 없는 내가 그곳을 다녀오려면 가고 오고 2시간이 소모된다. 지역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이동거리만큼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느리게 살고 싶다면 시간이 넉넉해야 가능하다. 도시에서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여기서도 자동차 없이는 한계가 확실하다. 휴가라며 정윤은 랜트카로 왔다. 왕복 대중교통비와 편하게 움직일 자유로움 역시 돈으로 얻어지는 즐거움이다.


 집에서는 자주 먹을 수 있던 좋아하는 잡채를 책방에 거주하면서는 굶었다. 이것만으로도 어쩐지 슬퍼진다. 이웃 작은 도시 재래시장을 지나다가 매운 잡채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잡채가 맵다고? 정윤과 식당으로 들어가 그야말로 나는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맵다, 매워. 우와 혓바닥이 얼얼해.


 매운맛으로 잡채를 망쳤다. 고소하고 개운하게 먹었던 잡채가 몹시도 그리운 날, 기꺼이 만들어 주시던 엄마표잡채 생각으로 몽롱하게 하루가 지나고 있다. 한 번은 먹었지만 두 번 먹을 잡채는 아니다. 숙박은 허락할 수 없지만 끼니는 제공하려고 장을 본다. 그가 먹고 싶다는 음식 재료는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얻어먹는 입장에서 요리해 주는 사람 마음대로라는 것을 정윤도 알고 있다. 라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정윤이지만 멀리서 온 손님이니 뭐든 만들어 주고 싶어 진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에 친구들과 찾아갔던 매운 상하이볶음우동이 생각난다. 좋아한다고 잘 먹는 것은 아님을 다시 확인한 날이다.


 그가 매운맛을 좋아한다니 더위를 제대로 지켜낼 이열치열 음식으로 육개장을 만든다. 엄마표 육개장은 이름과 모양만 같지 맛은 달랐다. 소고기에 우엉과 고사리, 숙주가 많이 들어가고 표고버섯까지 뭉텅 넣어 끓인다. 우리 집에서는 마지막 그럴싸하게 치장한 것이 달걀 1개였다. 엄마표 음식들. 내가 엄마 손맛을 닮은 지도.


 매운 음식에는 소주라는 정윤과 차가운 얼음맥주여야 한다는 나는 괜한 차이로 서로를 몰아세운다. 아무려면 어떤가. 너는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시면 그만이지. 여름밤이 좋은 이유 또 하나는 하늘이 빨리 열리는 일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다가 어느새 열리는 하늘빛 서늘한 기운에 마음이 시리다.


 천국으로 변한 책방은 연애하기 딱 좋은 공간이 되어 버린다. 스물, 가만한 시절부터 코로나19를 겪어내고 조심스러운 자유가 허용되는 지금까지. 이십 대는 휘청거리면서 흐느적거리는 푸념으로 채워지나 보다. 정윤은 나아갔다가 다시 후퇴하는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할지 고민이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사회제도는 크게 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세대마다 원하는 게 다른데 그나마 변화 가능성을 바라볼 정치세력화는 먼 얘기 같다. 기본이 되어야 할 민주주의는 절반에 해당되는 제도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 소수 의견은 늘 부정적으로 띄우는 뉴스로 접한다. 그 소수 의견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좋은 방법이어도 거부당한다.


 국가라는 공동체 의미를 현실에서 잠시라도 실감할 수 있는 게 가능했던 코비드 19 팬데믹 선언이었다. 

내부에서 번져 나오는 공공선이라는 힘이 아니라면 선언이 유효한 시기는 짧게 끝난다. 시작은 인명과 건강이었지만 이것이 경제 문제로 변하기 시작하면 다시 효율성과 합리주의를 들먹이며 더 나은 변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라는 시작점은 출렁이다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정윤과 나는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게 실현되기 어려운 정치적 구호 같다는 공통의견을 만들고 허탈하게 잘 버텨내기로 눈인사를 나눈다.







이전 06화 수상한 책방 4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