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우 Feb 27. 2023

수상한 책방 48.

혼술


 역시 기네스가 좋다. 책방에서 왕복 5분 거리에 밤새 환한 편의점이 들어섰다. 이후 한여름 밤 책방 혼술이 시작되고 있다. 혼자 지내던 스물에 한밤중 쳐들어오던 친구들이 문득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 모두 다른 장소에서 각자 방식대로 살아가고 다. 오늘은 서쪽 나라로 움직이고 있다는 재현이 보낸 그림엽서가 도착하면서 술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 중인 그가 낮술을 즐기고 있다는 글자가 흔들린다.


 책방을 열고 그 흔한 맥주를 마시지 않은 것은 귀찮음 때문이다. 마트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가야 하는데 술을 사기 위해 움직이려다 보면 술 생각이 사라지고는 한다. 이제 가까운 곳이라 후다닥 다녀온다. 


 빼놓지 않고 가져온 바이젠을 꺼내 초콜릿빛으로 내려앉은 흑맥주는 매력적이다. 마시고 나서는 한 곳에 빈 캔을 쌓아놓기 시작한다. 이곳으로 와서 나는 중심을 찾았다. 바글바글한 빌딩과 사람 머리만 보이는 거리에 나는 없었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었다.


 여기는 사람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냥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태평하게 돌아다닌다. 반듯하지 않은 길을 설렁설렁 걸어도 그만이다. 혼자 마시는 술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적은 양이어도 취기가 빠르다는 점이다. 거품이 걷히기도 전에 유리잔은 빈다.


 음악과 가끔씩 들려오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무성한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그것들과 알코올은 쉽게 섞인다. 내 안에 고스란히 들어차는 벅찬 기운들. 오랜 기다림이라는 느낌은 실상 나만 느끼는 마음이다. 외국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닿으려면 그만큼은 소요될 시간.


 문틈으로 밀어놓은 그림엽서를 발견하면서 이 여름날 짧은 밤이 아쉽다. 언제인지 기억도 없는 날처럼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 줄 것만 같다. 알루미늄 캔 맥주를 마시기 싫어하는 나를 기억해 종이컵을 챙겨주던 재현. 그리고 그림자처럼 곁에 있던 우주.


  긴 세월이다. 부르면 튀어나와 같이 마시던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해야 연락을 하던 정윤이 발동을 걸어놓고 훌쩍 가버렸다. 가을에나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적한 휴가가 너무 좋았다나. 바글바글거리는 해수욕장을 피해 바다를 바라보고 횟집에서 막 잡아 올렸다는 회를 먹는다. 


  그가 몰고 온 도시 냄새는 회색빛이다. 스트레스가 켜켜이 내려앉아 숨을 깊게 내쉬어야 살겠다는 직장에서 겪는 부조리. 매일이 투쟁이라며 6개월 채우고 끝. 몇 번을 강조하며 들이붓는 소주잔이 너무 작아 보였다. 그에게 이제 혼술은 일상이란다.


 술은 즐거울 때 마셔야 해독이 가능하다는 말. 내 몸속 간은 묘하게도 정신 감정에 민감하다나.  쓸데없는 소리. 연애를 안 해본 사람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특성을 내가 거의 다 갖고 있다고 하던 정윤이 목소리가 알코올 기운에 내 안으로 번진다.


 정윤은 크게 오해하고 있다. 그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도 내게는 없다. 나 자신과 사귀고 있는데 연애를 안 해 보다니.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현재 진행형으로 나는 연애 중이다. 어쩌면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이해한다? 가능하지 않은 해석이다.


   이재인은  무언가와 싸우는 것 같다고 할까. 무언가는 스스로 알아낼 일이지. 고르디우스 매듭은 평생 붙들고 있어도 풀리지 않아.



 우주가 마지막으로 내게로 던진 말이다. 뒤돌아 가는 그에 뒷모습이 아직도 날카롭게 다가오는 밤이다. 자른 매듭은 언제고 그 매듭으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 아닐까. 냉방을 끄고 이미 환하게 열리는 새 날을 끌어안고 잠드는 내가 어째 중독자가 된 기분이다.


 혼술이 주는 효과는 늘 비슷하다. 내가 나를 삼켜 먹으려고 들러붙는다. 슬픔이 바닥까지 눌러붙게 만든다. 뭐가 슬픈지도 모르는 정체 불명의 슬픔이다. 몸이 아니라  생각들로 머리가 무겁다. 무거운 머리를 이고 혼술한 날은 춤을 추고 있는 내가 있다. 이런 이런.





 


이전 07화 수상한 책방 4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